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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비비] 검찰개혁의 현주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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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석진 법조팀장(부장)

최석진 법조팀장(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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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초부터 문재인 정부가 추진해온 여러 검찰개혁 방안들이 본격적으로 시행되며 국가 형사사법시스템에 큰 변화가 생겼다. 검경 수사권 조정으로 검찰의 직접 수사권이 대폭 축소되고 경찰에 대한 수사지휘권이 사라진 반면, 경찰은 광범위한 수사 권한과 함께 1차 수사종결권까지 갖게 됐다. 지난 1월 출범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는 최근 ‘1호 사건’ 수사를 시작했다.


이처럼 외형적 측면에서는 어느 정도 검찰개혁이 마무리 단계에 접어든 것 같지만 ‘과연 더 나아졌는가’라는 질문에는 선뜻 답하기가 어렵다. 당장 고소·고발 사건이 몰린 경찰의 사건 처리 속도가 더뎌지고 검찰의 기소 건수가 현저히 줄어든 것은 제도 정착 초기의 불가피한 과도기적 현상이라 칠 수 있다. 하지만 경찰 국가수사본부를 중심으로 대규모 정부합동 특별수사본부가 구성된 ‘LH 사건’ 수사에 ‘검찰의 적극적인 수사 참여’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까지 주장했던 여권에서 먼저 나온 건 웃픈 현실이다.

검사 출신을 기피하다 보니 처장도 차장도 수사 경험이 거의 없는 판사 출신이 임명된 공수처는 출범한지 100일이 넘도록 수사처검사·수사관 정원을 못 채웠고, 그나마 선발된 13명의 수사처검사 중 수사 경험이 있는 검사 출신은 고작 4명뿐이다. 법무연수원에서 한두 달 속성교육을 받는다고 난이도 높은 사건을 수사할 수 있는 역량이 금세 갖춰질지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더 심각한 문제는 첫 수사를 개시하기도 전에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에 대한 ‘황제 에스코트’ 논란으로 정치적 중립성에 치명타를 입었다는 점이다. 국내 최대 검찰청인 서울중앙지검을 이끌고 있는 이 지검장이 검찰 대신 공수처에서 수사를 받고 싶다고 목소리를 높인 건 그야말로 코미디다. 검찰의 ‘표적수사’를 주장했던 이 지검장은 일반 시민들로부터도 ‘당장 기소해야 한다’는 판단을 받고 결국 재판에 넘겨지는 신세가 됐다.


검찰 내부의 상황은 더 심각하다. 특수통 출신 ‘윤석열 라인’은 대부분 한직으로 밀려났지만 대신 ‘추미애 라인’, ‘이성윤 라인’ 등 새로운 라인들이 생겨나 요직을 꿰찼고, 정치적으로 민감한 여러 중요 사건 수사가 몇 개월째 뭉개지고 있다. 법무부가 검찰 내 형사부·공판부를 늘리고 인지수사 부서를 대폭 줄이다 증권범죄합동수사단마저 없애버리니 당장 금융범죄가 활개를 쳐도 신속하고 효율적인 수사가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아무리 정부가 추진하는 정책을 뒷받침하기 위한 목적이라도 경제성 평가를 조작해선 안 될 일이고, 감사원 감사를 피하기 위해 자료들을 폐기하면 처벌받아 마땅하지만 ‘월성 원전’ 사건을 검찰이 수사하자 여당 대표와 법무부 장관의 입에선 ‘검찰권 남용’, ‘편파 수사’, ‘검찰의 폭주’라는 말이 나왔다. 추미애 전 장관이 서울남부지검장으로 영전시키며 ‘라임’ 사건을 맡겼지만 장관이 내린 수사지휘의 부당성을 지적하며 사퇴한 박순철 전 검사장이 남긴 “정치가 검찰을 덮어버렸다”는 말 속에 현재 검찰의 실상이 함축돼 있다.

검찰개혁의 요체는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과 독립성이 지켜질 수 있는 수사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검찰이 갖고 있던 수사권을 경찰로 넘겨주고, 공수처라는 새로운 수사기관을 만드는 것만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 권력을 쥔 통치자의 결단이 필요한 일이다. 제도를 아무리 바꿔도 권력자가 검찰을 장악하고 싶은 욕망을 놓지 못하는 한 검찰개혁은 공염불이 될 수밖에 없다. 정권 관련 수사를 하면 좌천 인사를 당하고 친정부 성향을 보이면 요직으로 승진시키는 인사 풍토에서 검사들에게 공정한 수사를 기대한다는 건 욕심이다.


2019년 문무일 당시 검찰총장은 기자간담회에서 검찰의 정치적 중립에 관한 질문을 받고 갑자기 양복 상의를 벗어 흔들며 “뭐가 흔들립니까. 옷이 흔들립니다. 흔드는 건 어딥니까?”라고 물었다. 문제는 흔들리는 양복이 아니라 양복을 흔드는 손이다.




최석진 기자 csj040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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