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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태형의 객석에서] 올해도 멈춤 없었던 예술의전당 '교향악 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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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시작…올 21회 공연 온오프 생중계
과천시향 '마탄의 사수' 서곡 등 최고의 무대
서울시향 '핀란디아' 세심했지만 뚝심 아쉬워
경기필, 수준높은 연주…자네티 존재감 부각
공연 전 프로그램 설명·즉석 신청곡 등 눈길
22년간 단독후원 한화 메세나 정신도 높이 살 만

류태형 음악칼럼니스트.

류태형 음악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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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데믹 겪으며 집적된 공연계 노하우

올해 교향악축제는 3월30일 성남시향의 연주로 개막해 4월22일 KBS교향악단의 연주로 막을 내렸다. 지난해 팬데믹 여파를 보상이라도 하듯 대규모로 치러졌다. 21회 공연 중 10회 공연이 매진됐다. TV나 스마트폰으로 실시간 공연을 관람한 시청자는 15만명에 달했다. 팬데믹의 한가운데서 살얼음 위를 걷는 긴장감 속에 치러졌던 지난해의 실험적 노하우가 완전히 정착한 느낌이었다.


7시30분 시작하는 공연 전 교향악축제에 출연하거나 예술의전당에서 공연을 앞둔 아티스트들이 직접 출연해 당일 프로그램에 대해 설명하는‘릴레이 렉처’도 흥미로웠다. 음악을 사랑하고 평생 업으로 삼는 연주자만이 감지할 수 있는 신선한 느낌. 청중은 귀를 쫑긋 세우고 들었다. 청중의 신청곡도 받았다. 로비 창에는 듣고 싶은 오케스트라곡과 협주곡을 적은 쪽지들이 가을 단풍잎처럼 빼곡하게 붙었다. 올해 객석에서 지켜본 교향악축제 무대 가운데 인상적인 공연 몇 편을 반추해본다.

3월31일 김대진이 지휘한 창원시향은 코플란드 애팔래치아의 봄 모음곡 ‘마사를 위한 발레’를 피아노가 포함된 소편성으로 연주했다. 목가적이면서 넓은 풍경은 영화 ‘늑대와 춤을’을 연상케 했다. 모차르트 플루트 협주곡 2번을 협연한 김유빈은 부드러우면서 견고했다. 현악기처럼 자연스런 연주를 선보였다. 호흡으로 인한 이물감을 거의 느낄 수 없어 솔기 없는 옷처럼 고왔다. 닐센 교향곡 4번 ‘불멸’은 현과 관이 풀 톤으로 소리 내는 가운데 두 대의 팀파니가 작열하며 여러 층의 음이 번득이는 순간들을 만들어냈다.


3월30일부터 4월22일까지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2021 교향악축제'에서 과천시립교향악단이 연주중인 모습.

3월30일부터 4월22일까지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2021 교향악축제'에서 과천시립교향악단이 연주중인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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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2일 서진이 지휘한 과천시향의 공연은 이번 교향악축제 최고의 무대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베버 ‘마탄의 사수’ 서곡은 극적인 성격이 입체적으로 부각됐다. 바람에 차례로 풀이 눕듯 관에서 현으로 이동하는 파동을 느낄 수 있었다. 채재일이 협연한 슈타미츠 클라리넷 협주곡 7번은 화사하고 모범적인 연주였다. 2부에서 시벨리우스 교향곡 1번의 경우 두텁고 보드라운 현과 서늘한 금관, 따스한 목관은 드론이 담은 피오르드의 장관을 떠올리게 했다. 금관군이 발군이었고 전광석화 같은 팀파니도 후련했다.


4월3일 장윤성 지휘의 부천필하모닉은 리스트 마제파와 바버 바이올린 협주곡(에스더 유), 라흐마니노프 교향곡 2번의 해석 모두 선이 굵고 강했다. 앙코르곡인 생상스 ‘삼손과 델릴라’ 중 바카날의 이국적이고 흡인력 있는 선율이 아직도 귓가에 남아 있다.

4월7일 백진현이 지휘한 경상북도 도립교향악단의 연주도 호연이었다. 투박하지만 자기만의 색채를 발하는 연주였다. 질박하고 독창적이어서 다른 악단은 모방할 수 없는 사운드를 내줬다. 연습도 잘 돼 있는 것 같았다. 트럼피터는 볼이 시뻘개질 정도로 강주를 선보였고 일사불란한 현악주자들은 세상에 하나뿐일 듯한 연주를 선보였다.

림스키 코르사코프 러시아 부활제 서곡으로 출발한 러시아 여행은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1번(박진우 협연)을 거쳐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12번과 앙코르 쇼스타코비치 ‘모스크바 체료무슈키 모음곡’ 중 ‘A Spin Through Moscow’에 이르렀다. 박진감 넘치는 음악여행이었다.


4월10일 서울시향의 공연은 음악감독 오스모 벤스케가 지휘봉을 잡았다. 시벨리우스 ‘핀란디아’는 지휘자와 작곡가가 동향인 만큼 세심한 지휘가 돋보였는데 신중한 반면 뚝심 있게 밀고 나갔으면 하는 점도 있었다. 관악과 현악이 좀 더 두터웠으면 하는 아쉬움도 남았다. 1부의 마지막 윤이상의 체임버 심포니는 여전히 고통과 공포를 떠올리게 하며 감상하기 쉽지 않은 현대음악곡의 이미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브람스 2중 협주곡은 바이올리니스트 크리스텔 리와 첼리스트 요나단 루제만이 협연했다. 얇고 세밀한 바이올린과 섬세한 첼로의 만남이었다. 앙코르 헨델-할보르센의 파사칼리아도 약음에 귀를 기울이게 만들었다.


3월30일부터 4월22일까지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2021 교향악축제'에서 마시모 자네티 경기필하모닉오케스트라 상임지휘자 및 예술감독이 연주단과 연주중인 모습.

3월30일부터 4월22일까지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2021 교향악축제'에서 마시모 자네티 경기필하모닉오케스트라 상임지휘자 및 예술감독이 연주단과 연주중인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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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17일 음악감독 마시모 자네티가 지휘한 경기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연주도 높은 수준을 보여줬다. 김다솔 협연의 프로코피예프 피아노 협주곡 2번은 연주가 진행될수록 예민해지는 감각을 피아니스트와 오케스트라, 청중이 나누는 새로운 경험이었다. 이 곡에서 좀 더 호방하고 큰 연주가 그리웠다. 라벨 ‘어미거위’에서는 원활하게 돌아가는 자연스러움과 윤기 나는 색채감이 아쉬웠다. 하지만 오디오가 모방할 수 없는 실연의 매력을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레스피기 ‘로마의 소나무’ 중 ‘아피아 가도의 소나무’는 애니메이션 ‘판타지아’ 중 고래들이 하늘을 날아 우주로 향하는 장면에서 흐른다. 이 장면이 다시 떠오를 정도로 곡은 거대하게 부풀어 올랐다. 단원들을 끊임없이 독려하며 오늘의 경기필로 만든 자네티의 존재감이 부각됐다. 악장 정하나의 솔로도 탁월했다.


동시대 음악 양과 질 높이고 협연자, 악단 선정 투명 기해야

올해 교향악축제는 한국 클래식음악계를 이끌어가는 동력이 무엇인지 재확인하면서 그동안 간과했던 악단들에 주시하게 만드는 계기가 됐다. 이런 식으로 외연을 넓히는 데 속도가 붙어야 할 것이다.


3주 넘게 월요일을 제외하고 날마다 오케스트라와 협주곡 공연이 열린 예술의전당으로 사람들의 발길은 계속 이어졌다. 공연장에 사람들이 드나드니 숨통이 트이는 것 같았다. 교향악축제는 마스크 착용과 QR코드 등 방역수칙 준수로 모범적인 공연관람 문화를 이끄는 기준이 됐다.


교향악축제를 22년간 단독 후원한 한화의 메세나 정신도 높이 살 만하다. 향후 교향악축제 발전을 위해 고언해본다. 늘 나오는 말이고 어려운 일이지만 프로그램에서 동시대 창작곡의 양과 질을 높였으면 한다. 까다로운 일이지만 참가 오케스트라와 협연자, 프로그램 선정에 투명도를 높이고 트렌드도 발 빠르게 반영하는 쪽으로 진화했으면 한다. 한 번도 멈추지 않았던 ‘봄의 교향악’, 내년에도 기대한다.


류태형 음악칼럼니스트


3월30일부터 4월22일까지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2021 교향악축제'에서 관객들이 공연을 관람중인 모습.

3월30일부터 4월22일까지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2021 교향악축제'에서 관객들이 공연을 관람중인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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