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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임라이트]덤벼라 고난!

최종수정 2021.04.08 13:54 기사입력 2021.04.08 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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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파이터' 배우 임성미…클로즈업 샷에 상실·해체·불안·공포 담아
'탈북 소녀복서' 진아의 한국 적응기…소외·고립·좌절 넘어 연대·통합으로
"어려움 극복하려는 의지, 내게도 충만…힘들 때 꺼내쓰는 상비약 생겨"

[라임라이트]덤벼라 고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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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드백 앞에서 잽을 해보는 진아(임성미). 날카로운 움직임에 트레이너 태수(백서빈)는 놀란다. "복싱할 줄 알아요? 처음 하는 사람 같지 않은데?" "내 군인 출신입니다. 군대에서 이 정도는 다 배웁니다." "아, 그래요? 그럼 싸움 하나는 진짜 잘하시겠다."


그 순간 진아의 표정이 굳어진다. 주먹을 내리고 따지듯 묻는다. "아니, 남조선 사람들은 어째 북조선 사람들을 특공대 출신으로만 본답니까?" "네?" "남조선 영화만 봐도 그렇지 않습니까? 북조선 인민들이 무슨 사람 죽이는 것만 배우는 짐승으로 표현되지 않습니까? (…) 그렇게 말을 막 내뱉지 마쇼."

영화 ‘파이터’는 탈북 소녀의 한국 사회 적응과 치유를 다룬다. 진아는 새로운 삶을 꿈꾸지만, 번번이 실패한다. 단순히 낯선 환경 때문은 아니다. 짐작조차 할 수 없는 고통을 겪으며 트라우마가 생겼다. 가족 상실과 해체, 불안, 공포…. 별 치유 없이 뛰어든 세상에서도 소외와 고립은 계속된다. 주변 사람들이 그를 배제하고 차별해서가 아니다. 동일성에 대한 욕망이 커질수록 좌절감을 맛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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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집단 안에서 타인과 같아지려는 경향이 있다. 이를 통해 안정감이 얻는다. 타자 속에서 자기를 발견하며 존재감을 가지는 것이다. 한국 사람들에게 비춰진 진아의 모습은 그들과 같지 않다. 같은 언어를 쓰나 용어는 다르고 억양에도 차이가 있다. 역사와 문화에 대한 맥락적 이해 또한 다르다.


진아는 자기통합성에 스스로 균열을 내고 분열한다. 윤재호 감독은 처절한 몸부림을 클로즈업 샷으로 담아낸다. 타자의 경험을 욕망하는 진아와 타자에게 비춰진 거울상으로서 진아 간의 어긋남을 보여준다. 해결 수단으로는 복싱을 꺼내 든다. 새로운 삶에 도달하려는 실천 속에서 동일성으로 향해 있던 에너지를 다른 방향으로 돌린다. 미래를 욕망하면서 자아를 갱신하는 치유. 중심에는 배우 임성미의 차갑고도 뜨거운 얼굴이 자리한다. 탈북민의 적응을 넘어 연대와 통합까지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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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즈업 샷과 롱 테이크가 상당히 많더라. 부담이 컸을 듯싶다.

"촬영장에 모니터와 콘티도 없었다(웃음). 윤재호 감독과 즉흥적으로 화각, 길이 등을 정하고 연기했다. 촬영 전 미팅에서 익히 들었던 터라 당황하진 않았다. 준비를 많이 해야 했다. 계산적인 연기보다 배역과 하나가 되려 노력했다."


-1인칭 주인공과 관찰자 시점의 샷들도 이리저리 교차하던데….

"윤재호 감독이 촬영 전 카메라가 진아의 무언가가 될 수 있다고 이야기해줬다. 그래서 진아의 뒷모습 등을 비출 때 내 몸 전체가 진아의 눈이라고 생각하고 연기했다. 그래야 진아의 시선과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대조를 이룰 듯했다."


-북한 말 억양이 상당히 자연스럽더라.

"남한 말과 같으면서 다르지 않나. 이질감을 나타내는 데 주안점을 뒀다. 북한 사람처럼 표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말 하나하나에 분단 현실이 나타나야 한다고 생각했다. 한국에서 고립된 진아를 보여주는 것이 핵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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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민의 삶을 사실적으로 표현했다는 평이 잇따른다. 촬영 전 따로 도움을 받았나.

"탈북민을 만나보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준비할 시간이 45일 정도에 불과했다. 복싱 동작을 연마하기에도 시간이 빠듯했다. 다행히 윤재호 감독의 이야기에서 답을 찾을 수 있었다. ‘마담 B(2016)’, ‘뷰티풀 데이즈(2017)’ 등에서 탈북민의 다양한 삶들을 추적했더라. 이야기에 흠뻑 빠져 간접 경험할 수 있었다. 너무 깊게 생각하지 말라고 만류할 정도였다(웃음)."


-진아에게서 익숙한 감정을 느꼈나 보다.

"비슷한 삶은 아니지만, 삶·경제·육체 등에서 독립했던 순간들이 떠올랐다. 인생의 새로운 장이 펼쳐지는 길목에서 만나 일정 부분 접점을 이룬 듯하다. 마음도 쉽게 열 수 있었고. 온갖 어려움을 극복하고 일어서려는 의지는 내게도 충만하다. 조금 더 깊숙이 사회 안으로 들어가 단단한 배우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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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아는 마지막에 "내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나는 계속 싸울 거다. 끝까지. 넘어져도 다시 일어날 거다"라고 말한다. 배우로서 그가 계속 싸우길 바라나.

"어깨를 토닥토닥 두드려주고 싶다. 계속 싸우겠단 다짐이 세상에 맞서겠단 의미만은 아닐 거다. 열심히 살아보겠다는 각오의 우회적 표현으로 봤다. 그런 그녀에게 백 마디 말보다 따뜻한 온기를 전하고 싶다."


-‘파이터’를 촬영하고 한층 성숙해진 듯하다.

"배우를 넘어 임성미라는 사람의 크기를 확장해줬다. 앞으로 많은 고난과 편견이 기다릴 것이다. 이 영화가 지치고 힘들 때 꺼내 쓰는 상비약이 되길 바란다. 두고두고 힘을 줄 것 같다."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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