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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포럼] 코로나19와 노인 자격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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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내내 우리나라, 아니 전 세계가 코로나19라는 역병으로 몸살을 앓았다. 아니다, 현재도 매섭게 진행 중이니 ‘앓고 있다’가 옳겠다.


입원 환자 중 80대 후반 할머니, 할아버지 환자가 있었다. 비슷한 시기에 대장을 절제하고 장루를 단 뒤 외과에서 내과로 전과됐다. 두 분 모두 학교에서 학생을 가르치던 선생님이었고 지적이며 자존감 높은 분들이다. 입원치료 자체는 별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코로나19로 가족 면회가 전면 금지된 상황에서의 24시간 병실 생활은 외부와 단절돼 고립된 노인 환자가 적응하기 쉽지 않다.

A 할아버지는 부부 금실이 좋고, 자녀들이 돌아가며 환자를 열심히 챙겼다. 증상이 다소 호전된 이후, 회진 시간에 A 할아버지와 나누는 대화는 주로 음식과 잠에 관한 것이었다. 식사를 정상적으로 할 수가 없는 상황이라, 음식을 맘껏 먹고 싶다는 욕구로 꿈에도 다양한 음식이 출현하곤 했다. 말문을 열 때마다 항상 온 얼굴을 찡그리는 모습은, 그만큼 충족되지 않는 욕구에 괴로운 것일 터였다.


안쓰러운 마음에 환자가 원하는 다른 일이 있는지, TV가 싫으면 라디오나 음악은 어떠한지 물어봐도 다 싫다 하신다. 어르고 달래고 의논해 간신히 새 목표를 정했다. 반듯하게 앉기와 서기 그리고 걸음을 떼어보기. 석 달 동안 침대에만 누워 있던 80대 후반의 노인에게는 참으로 중요한 내용이다. 역시나 마음을 먹으니 엄청난 정신력을 발휘해 이틀 만에 앉고 서고 조금이나마 걸음을 뗄 수 있었다. 아날로그 할아버지 인간승리 만세! 가족들의 전폭적인 지지가 계속되면 퇴원 후에도 나름 독립적인 삶이 한동안 유지되리라.


B 할머니는 10년 전 남편을 먼저 보내드리고 혼자 살던 분이었다. 고운 목소리에 눈이 아름다운 B 할머니는 신문도 돋보기 없이 볼 수 있고 청력이 좋아 대화하기 위해 목소리를 높일 필요도 없었다. B 할머니는 놀랍게도 태블릿PC로 카톡도, 영상 통화도 곧잘 했다. 필자를 만난 지 1주 정도 지난 어느 날 아침 회진 중 할머니는 수줍은 미소를 지으며 목소리를 낮추고 속삭였다. ‘실은 남편을 바로 따라가려 했는데, 이제 한 1년만 더 살고 싶은 맘이 들었어요.’ 삶의 의욕이 돌아왔다니 의사 입장에서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다. B 할머니는 병실에 혼자 있어도 음악 듣기, 유튜브나 영화 영상 보기 등으로 1초, 1분, 한 시간, 하루가 지루한 날이 없었다.

이분을 지켜보며 90세를 앞둔 노인의 남다른 디지털 적응력이 가족과의 소통뿐 아니라 문화적 욕구도 상당 부분 충족시킬 수 있다는 걸 느꼈다. 코로나19 사태로 비대면이 일상화돼버린 지금, 혼자 사는 노인이면 단순 욕구 충족 정도가 아니라 재난 상황에서의 생존 자체를 위해서도 디지털 적응력은 필수다. 인공지능(AI) 스피커를 통한 신고로 119 구조대가 출동해 어르신을 구했다는 미담이 한 예다.


앞으로 홀로 사는 노인이 더욱 많아질 것이니 디지털 적응력이 노인들에게 필수가 될 수 있다. 노인들에겐 디지털 기기와 AI 활용에 대한 교육이 필요하고, 우리 사회는 이에 대한 대비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노인은 나이 들면 흘러 흘러 저절로 되는 것으로 알았다. 포스트 코로나 사회에서는 노인도 사람답게 살아가려면 디지털 적응력 평가 ‘노인 자격증’이 필요한 건 아닌지 모르겠다. 기계치인 필자는 조만간 늘그막에 또 (자격증) 시험을 쳐야 하나 하고 은근히 긴장 중이다.


백현욱 분당제생병원 임상영양내과 바이오메디컬연구센터 소장




김유리 기자 yr61@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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