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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임라이트]배우의 길, 배우는 길

최종수정 2021.02.04 13:24 기사입력 2021.02.04 1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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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새해전야' 이연희
20대 후반부터 잘 하고 있나 고민, 배우 성장 위해 소속사도 옮겨
"이제는 스스로 헤쳐나가려고요…정체성 찾아가는 '진아'와 닮았죠"

[라임라이트]배우의 길, 배우는 길


옴니버스 영화 ‘새해전야’는 빛좋은 개살구다. 유명 배우가 대거 출연하지만 엉성한 이야기 네 편이 산만하게 엮여 있다. 하나같이 어색하게 갈등을 조성하고 안이하게 풀어낸다. 딱히 관통하는 주제도 없다. 나쁜 일은 빨리 잊어버리고 새로운 각오로 다시 시작하라 재촉할 뿐이다.


배우 이연희가 연기한 진아도 다르지 않다. 남자친구(최시원)로부터 이별을 통보받고 무작정 아르헨티나로 떠난다. 이구아수 폭포에서 고래고래 소리 지르면서 아픔은 말끔히 씻겨 내려간다. 이후 전개에 방황이나 갈등은 없다. 남자친구의 분노는 엉뚱하게 사그라들고, 직장에서 해고될 위기도 열심히 하겠다는 말 한마디로 해결된다. 우연히 만난 재헌(유연석)과 가까워지며 새 출발을 다짐하는 게 전부다.

이연희는 발랄한 연기로 허술한 틈을 메우기 위해 안간힘 쓴다. 꼬일 대로 꼬여버린 상황을 과장된 몸짓과 혼잣말로 일일이 설명한다. 새로운 사랑의 표현으로 ‘베사메 무초’를 부르고 신나는 음악에 맞춰 탱고도 춘다. 20대 시절 수차례 보인 특유 로맨틱 코미디 연기의 연장선이다. 연기력은 한결 나아졌으나 여전히 자기가 만든 틀 속에 갇혀 있다.


‘조선명탐정: 사라진 놉의 딸(2014)’ 뒤 6년간 충무로의 부름을 받지 못한 이유는 여기 있다. 그는 드라마 ‘미스코리아(2013)’와 영화 ‘결혼전야(2013)’로 연기력 논란에 종지부를 찍었다. 그러나 다른 장르로 뻗어 나가지 못해 입지를 위협받고 있다. 이번 영화로 로맨틱 코미디에 머물러 있다는 편견은 더 커질 수 있다.


[라임라이트]배우의 길, 배우는 길


이연희는 자기에게 닥친 위기를 알고 있다. 19년간 몸담은 SM엔터테인먼트에서 벗어나 배우 현빈이 있는 VAST엔터테인먼트에 최근 둥지를 틀었다. 그는 "새로운 변화를 주고 싶었어요"라고 말했다. "애지중지 보살펴주신 분들을 떠나는 게 쉽지 않았지만, 새로운 길을 갈 때가 됐다고 생각해요. 배우로서 성장하고픈 마음도 그만큼 간절하고요."

-새로운 변화라는 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20대 후반부터 배우의 길을 잘 걷고 있는지 의구심이 들었어요. 직업적 고민이었죠. 꽤 오래 빠져 있었는데, 연기 말고는 딱히 할 수 있는 게 없더라고요. 그걸 할 수 있게 도와준 분들에게 감사했어요. 이제는 스스로 헤쳐 나가려고요. 부담이나 위기의식을 내려놓고 연기를 편하게 받아들이고 있어요."


-긍정적인 변화라고 할 수 있군요.

"제가 가진 장점이 무엇인지 자주 생각해요. 지금은 여유인 것 같아요. 어떤 일이든 즐길 자세가 돼 있죠. 무엇이든 열심히 해보려고요."


-연기 폭을 넓히는 게 급선무 아닐까요. 오랫동안 경력을 쌓았지만, 발랄하거나 청순한 배역에서 맴도는 경향이 있는데.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차기작인 노덕 감독의 SF물 ‘만선’이 그 시발점이 되길 바라요. 노덕 감독과 첫 만남이 생각나요. 저의 고정된 이미지를 어떻게 생각하실지 걱정돼 그간 가졌던 생각을 허심탄회하게 털어놓았거든요. 다행히도 새로운 장르에 도전하고 싶은 의지가 커 보인다고 말씀하셨어요. 무언가를 갈망하는 것 같다는 말에 하마터면 눈물을 쏟을 뻔했죠. 그 마음을 잊지 않고 새로운 길을 개척하려고요. 기회가 된다면 미스터리 스릴러도 하고 싶어요. 시사 프로그램 ‘그것이 알고 싶다’를 매주 놓치지 않고 시청할 만큼 관심이 많아요."


[라임라이트]배우의 길, 배우는 길


-정체성을 찾아가는 진아와 닮은 면이 많은 듯하네요.

"맞아요. 시나리오를 읽으면서 주목한 부분도 뭔가 열심히 해도 잘 풀리지 않는 상황이었어요. 진아는 남자친구만 바라보며 열심히 살지만, 하루 아침에 이별 통보를 받아요. 어떤 일도 손에 잡히지 않을 거예요. 어디로든 훌쩍 떠나버리고 싶겠죠. 저도 그런 적이 있어요. 낯선 땅에서 대자연의 풍경이나 타인의 행복한 모습을 넋 놓고 바라보며 복잡한 마음을 정리했죠. 저를 아는 사람이 없으니까 마음이 편하더라고요."


-언제 그런 일을 겪었나요.

"스물다섯 살 때요. 연예계에 발을 담그고 몇 년간 쉼 없이 달렸어요. 어느 순간 지치더라고요. 모든 일이 버겁게 느껴졌죠. 주위 사람들이 저 때문에 고생하고 있어서 힘들다는 말을 꺼낼 수 없었어요. 혼자서 끙끙 앓다 중압감에 짓눌려버리고 말았죠. 그렇게 누군가를 원망하는 제 모습이 무섭더라고요. 그래서 혼자 프랑스로 떠났어요. 지금 생각해도 괜찮은 선택이었어요. 삶을 여유롭게 즐기는 사람들을 보며 좋은 기운을 많이 받았거든요. 인생의 목표도 다시 설정했고요. 코로나19로 여행하기 어려운 시기지만, 꼭 추천하고 싶어요. 마음의 여유를 되찾는 소중한 시간을 가지세요."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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