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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경영] 동장군이 준 면책

최종수정 2021.01.12 12:24 기사입력 2021.01.12 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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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초반 프랑스의 화보신문이었던 '르 푸티 주르날'에서 1차세계대전 당시 추위를 동장군으로 의인화하여 그린 삽화 모습.[이미지출처= 프랑스 국립도서관 홈페이지]

20세기 초반 프랑스의 화보신문이었던 '르 푸티 주르날'에서 1차세계대전 당시 추위를 동장군으로 의인화하여 그린 삽화 모습.[이미지출처= 프랑스 국립도서관 홈페이지]



[아시아경제 이현우 기자] 겨울철 한파가 밀려올 때마다 언론에 흔히 등장하는 ‘동장군’이란 말은 원래 1812년 나폴레옹의 러시아 원정 실패에 대해 보도할 때 처음 나온 단어였다. 당시 영국 언론들은 나폴레옹이 러시아군과의 모든 전투에서 승리했음에도 ‘추위 장군(general frost)’에게 참패했다고 비꼬는 기사를 썼고, 메이지유신기 일본인들이 이것을 글자 그대로 ‘후유쇼군(冬將軍)’이라 번역하면서 우리나라에도 유입됐다.


그러나 일본인들은 이 동장군이란 말을 나폴레옹의 러시아 원정 실패에 면책을 부여해주는 뜻으로 변질시켰다. 러시아의 추위를 몰랐던 나폴레옹과 프랑스군이 전투에 앞서 나름의 계획과 전략, 전술을 입안했음에도 갑자기 몰아친 한파 때문에 졌다는 논리를 만든 것이다. 왕이나 황제의 패전은 천재지변에 의한 천명처럼 돌려서 쓰던, 봉건시대 동양 왕조국가들의 관례에 따른 것이었다.

실제 전쟁사에서 나폴레옹의 러시아 원정을 패배로 이끈 것은 동장군이 아니라 보급 관리의 실패로 지적된다. 1812년 러시아 원정에 동원된 나폴레옹의 70만 대군은 러시아 국경을 넘기 전부터 보급 문제가 매우 심각했다. 오랜 전쟁으로 농토가 감소해 식량이 모자란 상황에서 대륙봉쇄령까지 내려져 경제난이 겹친 와중이었지만, 나폴레옹은 군대가 통과할 주요 지역들에 병사들의 식량을 강제로 조달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나폴레옹의 원래 목표는 추위가 밀려올 겨울 전에 러시아군을 대군으로 짓밟아 전쟁을 마치는 것이었다. 그래서 봄부터 여름까지 전 유럽에서 징집된 70만명에 이르는 청년을 폴란드로 집결시켰다. 하지만 당시까지 경제 기반이 농업이던 유럽에서 농번기에 청년들을 모두 병사로 끌고 나오다 보니 식량난은 더욱 가중됐다.


징집된 프랑스군은 폴란드로 가는 길에 굶주림과 전염병으로 죽어나갔고, 러시아를 침공하기도 전에 이미 전군의 30%가 넘는 24만명이 사망했다. 프랑스군이 정작 러시아에서 동장군을 만난 것은 이 참사를 겪고 6개월이 지난 뒤였다.

동장군의 뒤로 가려진 보급 전략의 실패는 이후 2차 대전에서 무수히 많은 참극을 낳았다. 보급의 중요성을 간과한 일제의 장군들은 늘 천재지변을 핑계로 댔고, 그 사이에 300만명이 넘는 일본 청년만 죽어나갔다.


현재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이라는 천재지변이 모든 국정에 면책을 부여하는 동장군의 역할을 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경제·사회 전반의 문제는 코로나19만 극복하면 모두 해결될 것이라고 각국 정부에서 해명하고 있지만, 코로나19 대유행이 지난 뒤에는 대체 무엇을 핑계로 댈지 궁금하다.




이현우 기자 knos8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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