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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비비] 지적으로 부지런한

최종수정 2020.11.27 10:24 기사입력 2020.11.27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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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훈 국민대 건축학부 교수

이경훈 국민대 건축학부 교수



도심의 호텔이나 공실이 된 사무실, 상가를 주거로 바꾸어 보겠다는 당국의 발표가 있었다. 이를 야당은 ‘닭장 주거’, ‘고시원’이라며 비하하고 여당은 비판에 움찔한다. 극소량이라는 것이 유일한 변명인 걸 보면 크게 자신 있는 눈치는 아니다. 이어지는 여당 진선미 의원의 ‘아파트 환상을 버려야 한다’ 발언에서는 폭발했다. 댓글과 야당은 현실감 없는 정치인으로 몰아세웠다. ‘지적으로 게으르다’는 모욕적인 조롱까지 등장했다. 아파트만 고집할 것이 아니고 다세대 주택 같은 다양한 주거 형태를 고려해야 한다는 원론 수준의 덕담치고는 심했다.


논란을 지켜보며 도시 주거를 다시 생각한다. 옛말에 ‘산 좋고 물 좋고 정자까지 좋을 수는 없다’고 했다.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다는 뜻으로 쓰이던 말이다. 이 말을 도시에 견주어 보면 산과 물은 자연환경을 가리키고, 정자는 인공의 주거환경이라 할 수 있다. 비슷한 맥락으로 미국의 건축학자 마이클 베네딕트교수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모든 문화에는 두 종류의 이상향이 존재한다고 했다. 친숙한 예로 기독교의 에덴과 천국을 들었다. 인간의 의지와 상관없이 주어진 에덴은 유기적이며 분화 이전의 상태이다. 순수와 지혜의 영역이다. 반면에 천국은 기하학적이며 인공적이고 이성과 지식의 영역이다. 성경에 따르면 인간은 에덴에서 축출되었지만, 에덴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이 향하는 곳은 천국이라는 것이다. 둘의 관계는 자연과 도시라는 상대적이며 이질적인 공간으로 대표된다. 즉 에덴이 ‘산 좋고 물 좋은’ 이상향이라면 천국은 ‘정자 좋은’ 인공의 도시 공간이라는 것이다. 참고로 천국의 영어식 표현은 ‘천상의 도시(Heavenly City)’이다. 둘 간의 우월관계는 없다. 다름만이 있다.

그런데 서울의 아파트는 산도 좋고 물도 좋고 정자까지 좋은 불가능한 욕망을 목표로 한다. 나무가 우거진 정원이 있고 옆 건물과는 충분히 떨어져 있어야 한다. 담장을 둘러 외부인의 출입을 막아야 하며 주차장은 가구마다 세대쯤은 세울 수 있을 만큼 널찍해야 한다. 거기에 좋은 정자의 조건이 추가된다. 교통 좋고 학군도 좋으며 쇼핑도, 병원도 가까워야 한다. 일종의 에덴이요, 무릉도원에 도시적 편익을 결합한 불가능한 형태이다. 소비자도 공급자도 부동산 전문가도 심지어는 정책 당국도 상상하는 이상적인 도시 주거는 여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그러니 다세대 주택이 방이 셋이고 마감재가 훌륭해도 무릉도원이 될 수 없다. 호텔 방을 주거로 만드는 일은 더더욱 상상할 수도 받아들일 수도 없다.


부동산 대책의 방향은 크게 두 갈래이다. 신도시와 도심 재생이다. 신도시는 도심에서 수십㎞ 떨어진 곳에 무릉도원의 욕망을 만족하는 도시를 짓는다는 것이다. 그리고는 수십조원의 예산을 들여 교통망을 건설한다. 자원의 낭비가 심하고 필연적으로 자동차 중심의 비인간적 주거공간이 되고야 만다. 훼손되는 환경의 문제도 있고 인구 감소기에 접어든 나라 사정상 지속가능성에도 심각한 의문이 있다. 그 폐해는 앞선 나라들에서 충분히 입증되었다.


도심 재생은 일종의 정신승리로 일관하는 듯하다. 즉, 불가피하고 옳은 방향이기는 하지만 계몽적으로 강요하고 있다고 본다. 본격적인 도심 주거의 모델이 있어야 설득이 가능한 일이다. 공공에서 공급하는 도심 주거부터 바꾸어 볼 일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동네마다 생활에 필요한 인프라를 제공한다. 수십㎞의 지하철도를 뚫을 예산이면 충분하다. 그리고는 도시에 걸맞은 건축이 필요하다. 전 세대가 남향이라던가 거리로부터 건물을 띄어야 하고 억지로 나무를 심어야 하는 등 시대착오적인 설계조건과 법령을 과감하게 버려야 한다. 녹지와 남향과 자동차 대신 거리의 활기와 소통과 걷기의 즐거움을 보여줄 수 있는 건축과 동네를 만들어 보자. 단 하나의 사례가 실현되고 주민이 몸으로 그 쾌적함을 경험할 수 있다면 무릉도원 대신 도시를 택할지도 모를 일이다. 천국이 이 땅에 펼쳐진 것이 도시라는 사실을 실례로 설득할 수 있다. 그게 지적으로 부지런한 공공이 할 일이다.

이경훈 국민대 건축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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