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r_progress

아시아경제 최신 기획이슈

[사이드B] "탈시설, 그 후엔 장애인 명칭 사라지길" 노들야학 대표교사 천성호씨 (下)

최종수정 2020.11.21 09:02 기사입력 2020.11.21 08:45

댓글쓰기

당당한 소수, 더 나은 비주류 세상

야학과 함께 한 교육 인생
노들야학 상근활동가로도 활동 중

OECD 평균 만큼만 지원 돼도
장애인 탈시설 가능할 것

노들장애인야학에서 천성호(오른쪽) 대표 교사가 수업을 하고 있다. (제공=노들장애인야학)

노들장애인야학에서 천성호(오른쪽) 대표 교사가 수업을 하고 있다. (제공=노들장애인야학)



[아시아경제 이현주 기자] "계획을 세워 놓고 탈시설을 하는 게 아니고, 탈시설을 먼저 시켜 놓고 계획을 세우는 게 맞다고 봅니다. 계획만 세우다 보면 탈시설이 5년, 10년이 걸릴 지 모를 일이니까요. 야학에서 만나는 학생들을 보면 사람을 만나고 관계를 형성하면서 스스로 배워 나가는 일이 가능하거든요. 시간과 공간이 주어졌을 때 충분히 가능한 일인데, 시설들이 그걸 막아 놓고 있는 거죠."


노들장애인야학에서 상근활동가이자 교사 대표로 근무하고 있는 천성호(49)씨는 대학에서 사회학을, 대학원에서 교육학을 전공했다. 2010년 노들야학과 연을 맺기 전에도 야학 수업을 했다. 주로 할머니들의 문해 교육을 맡았다. 노들야학 상근 활동은 2018년도부터 시작했다.

[사이드B] "탈시설, 그 후엔 장애인 명칭 사라지길" 노들야학 대표교사 천성호씨 (下)


"2010년도쯤 장애인이 지역 사회로 나오기 위한 노력들이 있었고요. 그들과 함께 할 교육 활동이 필요했어요. 노들야학에서는 교육 활동도 하고 장애인 인권 투쟁도 함께 하고 있었는데 뜻이 맞다고 생각해서 참여하게 됐어요."


야학에 오는 학생들은 교실에서 누군가와 자연스럽게 만나고 대화하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되찾는다. 그는 "공부만 하는 것이 아니라 집회도 같이 나가면서 장애인이 사회에 불필요한 존재가 아니라는 걸 깨닫고 한 명의 인간으로 존재하는 의미를 찾아가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또 "공공일자리 연계도 이뤄지는데 노동을 통해서 일을 하고 급여를 받는 과정은 학생들에게 큰 의미"라고 했다.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가 2019년 10월 1일 서울시청 앞에서 서울시 장애인 탈시설-자립생활 권리 보장 2020년 예산 반영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문호남 기자 munonam@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가 2019년 10월 1일 서울시청 앞에서 서울시 장애인 탈시설-자립생활 권리 보장 2020년 예산 반영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문호남 기자 munonam@



보건복지 통계연보(2019)에 따르면 현재 전국의 장애인 거주시설은 1557개소로 시설거주장애인은 2만9662명이다. 천 씨는 "시설에서는 주는 대로 밥을 먹고 어디를 가고 싶어도 마음대로 나갈 수 없기 때문에 사람으로서 제대로 살 수 있는 환경이 아니다"면서 "정부는 예산 문제로 탈시설을 미루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기준으로 장애인 관련 예산이 절반 수준인 2조5000억 규모"라며 "OECD 평균 정도만 지원돼도 당장에 탈시설은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스웨덴은 국가 주도로 탈시설을 추진한 나라 중 하나다. 1997년 시설폐쇄법이 제정된 후 1999년 12월31일 자로 모든 시설이 강제 폐쇄됐다. 스웨덴 정부는 시설을 나온 이들이 살 수 있는 집을 찾아줬다. 또 시설에서 같이 일했던 직원을 배치함으로써 사회적 적응을 도왔다. 우려도 많았지만 20여년이 지난 지금, 스웨덴 길거리에서 장애인을 찾아보기란 어렵지 않다고 한다.


천 씨는 "사회 속에서 사람을 만나고 인간관계를 통해서 우리는 지적 능력을 발전시킬 수 있다"면서 "시설은 사회적 발달을, 인간의 발달을 늦춘다"고 다시 한 번 지적했다. 오랜 시설 생활로 좋고 싫은 감정을 표현하거나 자기 생각을 말하는 것을 어려워 하는 학생들이 많다.


노들야학도 신종 코로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여파를 피해갈 수 없었다. 그러나 정부의 관심 정도는 정규 학교들과 크게 달랐다.


"격리가 되는 상태가 지속되면서 따지고 보면 예전 시설과 다름 없게 돼 버려서 다들 너무 답답해 했죠. 그런데 교육부나 교육청에서는 예방 조치 잘하라는 공문 하나만 내려보내는 게 전부였어요. 실질적 예방 대책을 마련할 수 있는 지원은 아예 없었는데 너무 아쉽죠."


노들야학 학생이 작성한 수기 (제공=노들장애인야학)

노들야학 학생이 작성한 수기 (제공=노들장애인야학)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 되자 노들야학은 학생 절반은 임시수업을 나올 수 있도록 하고 가정 방문을 다니면서 학생들을 만났다. 사회적 거리두기 1단계에도 공간이 충분히 확보되지 않아 절반만이 야학에 나오고 있다. 천 씨는 "성인 장애인에 대한 공적 책임도 정부가 어느 정도 졌으면 좋겠다"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문재인 정부는 탈시설 지원센터 설치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아직은 큰 움직임이 없어 보인다. 탈시설 지원법이 제정되면 지금보다 더 많은 예산이 들어간다. 그럼에도 이 법은 장애인들이 지역 사회에서 '한 사람'으로서 살 수 있는 최소한의 조치다.


천 씨는 장애인이란 명칭이 없어지면 좋겠다고 했다. 그는 "장애인들이 모두 지역 사회에서 한 명의 사람으로 살 수 있는 것이 제 목표인데 저 혼자서는 못 만든다"며 "제도들이 만들어지고 편견이 사라지면 장애인이란 용어도 필요 없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언제가 될 지는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이현주 기자 ecolhj@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간격처리를 위한 cla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