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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비비] 기자의 역할을 다시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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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비비] 기자의 역할을 다시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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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목희 전문위원


직언곡필(直言曲筆). 말은 바르게 하지만 글은 아니다. 직언곡필을 신조처럼 되뇌던 기자가 있었다. 취재원과의 자리에서 그의 말은 신랄했다. 실제 기사는 달랐다. 처음에는 "저럴거면 공무원이 되지 왜 기자 직업을 택했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십수년을 지켜보니 나름 효용가치가 있었다. 기사를 독하게 안쓴다는 믿음을 주면서 취재원이 속내를 털어 놓았다. 가감없이 전해주는 민심을 듣고 생각을 바꾸는 정책 당국자도 있었다.

한국에서 제일 무서운 법은 국민정서법이다. 아무리 의도가 순수했어도, 현행법으로 문제가 없다고 해도 국민정서법의 파도에 속절없이 당한다. 정치인도, 기업인도 국민정서법 파도를 비껴가려 애를 쓰고 있다. 그럼에도 안타까운 대응이 속출하고 있다. 유심히 지켜보니 동종교배 탓이 컸다. 비슷한 배경과 생각을 가진 이들만 모여서는 객관적인 해법을 기대하기 어렵다.


미국 등 서구권 국가들의 대기업은 큰 사건이 발생하면 외부 리스크관리팀을 투입시킨다. 냉정한 시각에서 해법을 찾을 때 요동치는 민심의 바다에 가까워진다. 요즘 우리 기업들도 따라 하는 추세다. 오너에게 쓴 소리를 하기 어려운 한국 문화의 특성도 감안한 것이다. 정치인들은 유권자와 접촉이 잦다. 국민들의 마음을 잘 아는게 당연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 권력의 크기에 반비례하는 사례를 많이 보아 왔다. 정치권에서는 진영 대립 의존도가 커지면서 오히려 동종교배 현상이 더 짙어지고 있다.


스스로 쓴 기사나 칼럼이 정치인들의 생각을 바꾸고, 국가 정책에 반영될 때 희열을 느꼈다. 그런 관점에서 최근의 언론 상황은 안타깝다. 기사나 칼럼의 내용보다 어떤 매체에서, 누가 썼느냐를 먼저 본다. 비판을 위한 비판 기사가 넘쳐난다. 보수를 대표하는 언론사 소속원과 함께 한 자리에서 누가 우스갯 소리를 했다. "기사, 칼럼, 사설로 정권을 연일 비판하는데 소용없어. 당신네들이 잘한다고 칭찬할 때 도리어 정책이 바뀔 가능성이 더 높아."

국민들의 알 권리가 중요하다. 궁극적으로는 공동선을 향해 나아가는데 일조하는게 언론의 본령일 것이다. 그러나 기사나 칼럼을 쓴 뒤 '좌표 찍기' 위기에 처할 때가 있다. 불만스런 진영에 의해 댓글, 이메일 등으로 조리돌림을 당한다. 기사를 떠나 말로 조언하고 민심을 전하는 것도 어려워질 정도로 진영 대립은 심각해지고 있다. 진보, 보수 인사들이 섞인 자리에 가면 분위기가 어색해진다. 상대 성향을 모른채 자기 주장을 하면 언성이 높아진다. 언론인들이나 정치인, 정부 관계자들의 사적인 자리 역시 비슷한 부류끼리 모이게 된다.


십여년전 중견언론인 모임인 관훈클럽 총무를 맡은 적이 있다. 진보와 보수 언론 매체간 대치 전선이 너무 감정적으로 흐르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을 가졌다. 일선 기자들만이라도 서로 소통을 강화하자는 캠페인을 벌였다. '벽을 허물자'는 주제로 토론회도 가졌다. 의제로는 던져봤지만 큰 성과는 없었다. 대부분 언론사들은 대립 정서의 한쪽을 생존기반으로 삼았다. 갈라진 보도와 갈라진 국민정서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악순환을 반복할 뿐이었다.


유튜브로 대변되는 자극적 매체의 등장은 사태를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 언론의 생명인 진실 탐구조차 흐릿해지고 있다. 정의가 무엇인지, 고집스런 주장만 난무한다. 정통 언론인이 설 자리는 점점 좁아졌다. 한가지 위안은 반듯하고 총명한 후배 기자들이 많이 눈에 띈다는 점이다. 언론 환경이 불만스럽더라도 참고 정진하기 바란다. 언론인 생활을 통해 확실히 느낀 것은 굴곡은 있을 지언정 역사는 발전한다는 사실이다. 지금의 혼란상은 정통 저널리즘으로 나아가는 아픈 과정이라고 생각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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