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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임라이트]'소리도 없이' 새로운 표현에 눈을 뜨다

최종수정 2020.10.15 12:57 기사입력 2020.10.15 1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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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소리도 없이' 유아인…순박·천진서 고뇌·갈등으로
기존 이미지 고수하면 양심의 가책 "새로운 나와 만남에 흥분"
대사 없는 연기, 새로운 표현 기대 "한층 자연스러워져"

[라임라이트]'소리도 없이' 새로운 표현에 눈을 뜨다


트럭에서 달걀을 파는 태인(유아인)과 창복(유재명). 단점을 서로 보완하는 사이다. 태인은 말을 잃었으나 힘이 세다. 계란을 나르는 등 궂은일은 한다. 창복은 한 쪽 다리가 불편하지만 능변가다. 짐칸에 앉아 흥정을 벌인다.


역할 분담은 장사를 마친 뒤에도 이어진다. 범죄조직의 요청이 오면 시신을 수습해 마을 뒷산에 매유한다. 접수와 응대는 창복의 몫. 태인은 땀을 뻘뻘 흘리며 땅을 판다. 지켜만 보는 창복은 얄밉게 훈수를 둔다. "고인의 머리를 북쪽으로 해드려야지."

영화 '소리도 없이'에서 두 사람은 악인처럼 보이지 않는다. 모든 일에 성실하고 근면한 모습이 밝은 톤으로 그려진다. 태인은 불쌍한 사람을 보면 도와주는 착한 마음씨도 가졌다. 먹고 살기 급급해 부정을 저지르는 데 익숙해졌을 뿐이다. 그는 조폭 용석(임강성)으로부터 유괴된 아이 초희(문승아)를 떠맡으면서 기존 관념에서 벗어난다. 초희를 새로운 구성원으로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선악의 갈림길에 서 있는 상황을 자각된다.


유아인은 태인이 변하는 과정을 말 한마디 없이 표현한다. 순박하고 천진한 얼굴로 빈틈을 만들고, 그 안에 서서히 고뇌와 갈등을 채워 넣는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느낄 수 있는 실제적 감정들이다. 주위 환경과 부조화를 이루며 유머와 아이러니가 빚어진다. 그의 이전 작품에서는 볼 수 없었던 표현이다. 유아인은 "지루하지 않은 연기를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라임라이트]'소리도 없이' 새로운 표현에 눈을 뜨다


-대중이 익히 알고 있는 이미지로부터 탈피하고자 했나?

▲몇몇 작품에서 보인 연기로 이미지가 강하게 각인됐다. 부정하거나 배신할 생각은 없다. 고정화하길 거부할 뿐이다. 입체적인 이미지를 만들고 싶다. 나 자신이 봐도 지루하지 않은 연기를 하고 싶고. 기존 이미지를 고수해도 문제될 일은 없다. 그런 나를 누군가가 궁금하게 생각하면 배우로 계속 존재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그것에 계속 기댄다면 양심에 가책을 느낄 것 같다.

-'소리도 없이'가 새로운 기대를 충족할 수 있다고 봤나?

▲그렇다. 시나리오를 읽으며 내 얼굴과 몸이 다르게 쓰일 수 있다고 확신했다. 도발적인 내용에서 연기에 자극을 줄 여지가 커 보였다. 홍의정 감독의 첫 작품이라는 점도 좋았다. 신인 감독과 작업하면 기존 감독들의 질서나 규칙에서 보지 못한 새로운 연출을 보게 된다. 그런 경험 속에서 새로운 나를 만나는 것만큼 흥분되는 일도 없다.


-체중을 15㎏ 늘리고 머리는 빡빡 깎았는데….

▲시나리오 속 태인에 대한 묘사는 그렇지 않았다. 이런 이야기에 잘 어울리는 긴 머리와 마른 체형의 소유자였다. 그러나 천편일률적인 이미지에서 탈피하고 싶었다. 외모 변화를 시도해볼 만한 시기라 판단하기도 했고. 식사량부터 늘렸다. 하루 네 끼를 꼬박꼬박 먹으며 게으르게 살았다. 촬영장에선 분장을 하지 않았다. 다듬지 않은 외모와 강한 인상으로 다양한 심리를 전하고자 했다.


[라임라이트]'소리도 없이' 새로운 표현에 눈을 뜨다


-태인은 말을 안 하는 것인가, 못 하는 것인가.

▲과거의 정신적 충격으로 표현을 거부한다고 생각했다. 평범한 사람도 깊은 상처를 받으면 말하기를 꺼리지 않나. 태인은 그런 아픔을 극대화한 배역이다. 표현의 무의미함을 상징한다. 나도 그런 순간을 종종 경험한다. 예의를 갖춰 나눈 대화가 돌아보면 무의미하게 느껴지는 경우가 많다.


-대사가 없다 보니 유재명의 연기에 반응하는 표현이 상당히 많다. 그동안 보여온 주체적 표현과 대조를 이루던데….

▲가공할 필요가 없어 편했다. 분장까지 받지 않다 보니 시공간과 사건, 나와 배역 사이의 차이가 모두 크게 줄었다. 당연히 연기가 한층 자연스러워졌다. 사람들 앞에 서는 일까지 편해진 것 같다. 배우 생활을 하면서 누군가에게 잘 보이거나 실패하지 않으려 안간힘 쓴 순간이 제법 있다. '소리도 없이'를 촬영하며 그런 압박에서 자유로워졌다.


-새로운 표현에 눈 뜨는 계기가 됐다는 말인가.

▲그렇다. 계속 뜨고 싶은데 자꾸 감기는 게 문제지만(웃음). 오래 전부터 의식적이거나 과장된 표현을 배제하기 위해 다양하게 노력해왔다. 몇몇 작품이 그런 기회를 제공했으나 '소리도 없이'만큼 강렬했던 적은 없다. 이제야 표현에 대한 강박을 떨쳐냈다.


[라임라이트]'소리도 없이' 새로운 표현에 눈을 뜨다


-태인처럼 모호한 관념 속에서 알찬 깨달음을 얻은 듯하다.

▲연기만이 아니다. 배우는 의도와 관계없이 영향력을 갖게 마련이다. 그걸 어떻게 사회에 적용할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버리고 싶다고 버릴 수 있는 게 아니니까. 그런 내게 '소리도 없이'는 굳건한 의지를 불어넣었다. 올바른 판단과 결정으로 영향력을 잘 사용해야 한다는 책임이 그것이다.


-'살아있다'에 이어 이번 영화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시기에 개봉하는데….

▲희망을 키워가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일이 없지 않나. 아쉽지만 어려운 상황을 받아들이고 있다. 혹자는 흥행에 실패해도 코로나19 핑계를 대면 된다고 위로한다. 하지만 그런 실패자로 살고 싶지 않다. 설사 관객이 적게 들더라도 더 좋은 영화를 만드는 계기가 됐다고 생각할 것이다.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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