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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임라이트]극한으로 몰아붙인 육체, 그 진정성이 만든 눈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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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레이役 이정재
날카로운 감정 유지하기 위해 엄격한 다이어트
"의상·분장은 물론 단순한 움직임에도 명분 담아"
2012년부터 연출에 관심, '헌트'로 감독 데뷔 준비

배우 이정재

배우 이정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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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한 장례식장. 어느 사내가 저벅저벅 입구로 들어온다. 예사롭지 않은 차림이다. 흰 코트, 올백 머리, 색안경…. 주검 앞에서 애도하지도 않는다. 주위만 쓱 둘러보고는 자리를 뜬다.


영화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의 무자비한 킬러 레이(이정재)다. 그는 피붙이 형의 죽음에 연루된 이들을 잔혹하게 살해하기 시작한다. 얼굴에서 분노나 비애는 엿볼 수 없다. 복수라는 명분 아래 피를 뿌리고 다닐 뿐이다. 먹이를 찾는 맹수처럼 눈을 반뜩거린다.

시퍼런 살기는 태국 범죄조직을 제압하는 장면에서 뚜렷하게 나타난다. 어둠 속에서도 날렵하고 정확한 칼솜씨로 깡패 다섯 명을 순식간에 죽여 버린다. 헝클어진 머리와 피범벅이 된 얼굴. 햇빛에 싸느랗게 반사돼 동물적 야성으로 나타난다. 꿰뚫어 보는 듯한 형형한 눈빛으로 또 다른 피바람을 예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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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재는 야생 본성을 담기 위해 연기는 물론 의상, 분장까지 공을 들였다. 레이의 외형이 곧 그의 이야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레이는 주인공 인남(황정민)보다 출연 분량이 적다. 대사 또한 많지 않다.


그렇다고 절대 악으로만 나타나는 단순 배역은 아니다.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는 킬러 생활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을 준비하는 인남의 여정을 다룬다. 레이는 구원받으려는 인남의 과거이자 그림자다. 여전히 내재된 인남의 정체성으로도 볼 수 있다.

이정재는 "처음 등장하는 모습만 보고도 레이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게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의상, 분장은 물론 단순한 움직임에도 명분을 담으려 노력했다. 작은 차이가 배역에 대한 부족한 설명을 채울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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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등장하는 장례식장 신부터 레이를 냉혈한으로 묘사하던데….

▲레이는 전사(前史)를 알려주는 장면이 거의 없다. 감정을 보이는 장면도 마찬가지고. 관객이 상상할 수 있도록 단서를 제공해야겠더라. 그래서 첫 장면부터 냉혹한 남자라는 인장을 찍었다. 형의 죽음을 애도하기보다 무심한 표정으로 주검을 확인한다는 인상을 남겼다. 그에게 중요한 건 복수가 아닌 사냥이니까.


-그 분위기를 태국 범죄조직을 제압하는 신에서 눈빛으로 이어가더라. 특히 셔터를 밀어 올리고 햇빛을 마주하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계산된 연기였다. 몸을 움직이지 않고 동공만 카메라 밖에서 안쪽으로 움직였다. 여전히 배고픈 맹수의 느낌을 전하고 싶었다. 정적인 화면에 동적인 힘도 부여하고 싶었고. 자세히 보면 동공이 커져 있다. 레이가 얼마나 흥분해 있는지까지 보여주고 싶었다.


-어떻게 준비했나?

▲채소만 먹으며 다이어트를 했다. 배가 고파야 신경이 날카로워진다. 그래야 살기 어린 눈빛이 나올 수 있고. 촬영장에서 급조한 연기로는 절대 표현할 수 없다. 짧게 지나가는 장면에서까지 섬뜩한 느낌이 전해져야 한다. 촬영 기간 내내 예민한 상태를 유지하려 부단히 노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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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와 인남의 대결 구도로 보면 후자에 무게중심이 많이 쏠려있는데….

▲아쉽지 않다. 영화에서 인남이 갈구하는 구원과 부성애가 가장 중요하니까. 레이는 불안감과 긴박감을 유발하는 역할이다. 입체감이 더 부여됐다면 오히려 전체 흐름에 방해가 됐을 수 있다.


-불균형적 조명을 극복하는 데 도가 튼 것 같다. '관상(2013)', '신과함께-죄와 벌(2017)' 등에서도 극 중반에 등장해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과찬의 말씀이다. 비중에 관계없이 잘 해내려고 노력했을 뿐이다. 솔직히 부담은 있다. 잠깐 나오는 배역에도 의미가 있지 않나. 그런데 너무 강한 인상을 심어버리면 전체 흐름을 거스를 수 있다. 얼마나 조화롭게 어우러지느냐가 가장 중요한 것 같다.


-그런 면에서 황정민과 호흡이 잘 맞는 듯하다.

▲그렇게 생각한다. '신세계(2012)'에서는 정민이 형이 정청이라는 배역을 독창적으로 색칠했다. 이번에는 극 전체의 호흡을 책임졌고. 역할이 달라져도 좋은 호흡을 보인 건 우리가 영화의 방향성을 최우선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떤 연기를 해야 가장 도움이 되는지를 두고 많은 대화를 나눴다. 그 과정에서 '이게 더 낫지 않아?'라는 물음이 한 번도 나오지 않았다. 흔치 않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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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영화의 경우 좁은 복도에서 함께 연기한 격투 장면이 오랫동안 회자될 듯하다.

▲태국에 있는 모텔에서 촬영했다. 복도 폭이 좁고 빠져나갈 구멍도 없어 싸움이 치열하게 담길 것 같았다. 답답한 공간 탓인지 연기하면서 뜨거운 감정이 올라오더라. 정민이 형도 그랬던 것 같다. 그야말로 인남과 레이였던 거다(웃음).


-영화 '헌트'로 감독 데뷔를 준비 중이라던데. 언제부터 연출에 관심을 가졌나?

▲'도둑들(2012)'을 촬영했을 때다. 첸을 연기한 임달화 선배가 '어둠 속의 이야기: 미리야(2013)' 연출을 준비하고 있었다. 조니를 맡은 증국상도 '취후일야(2012)' 감독을 맡았고. 틈이 날 때마다 시나리오를 쓴다고 하더라. 다각적인 노력을 엿보며 큰 자극을 받았다. 그들이 배우를 넘어 영화인으로 느껴졌다. 경계를 두지 않고 자유롭게 활동하는 모습이 부러웠다. 그 뒤로 쉴 때마다 시나리오를 썼다. '헌트'의 경우 원작 판권을 사서 각색을 했고.


-쉽지 않은 길일 텐데….

▲아직 제작이 가시화하지 않아서인지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만 든다. 막상 메가폰을 잡으면 다를 거다. 주위에서도 걱정한다. 꼼꼼한 성격 때문에 많이 힘들 거라고.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지레 겁부터 먹고 싶지 않다. 마음은 여전히 청춘이니까.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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