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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비 오래 온다고 괴로워만 할 것인가(久雨何須苦)'

최종수정 2020.08.10 11:08 기사입력 2020.08.10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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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비 오래 온다고 괴로워만 할 것인가(久雨何須苦)'

[아시아경제 명진규 기자] 여름철 여러 날 내리는 비를 일컬어 장마라고 한다. 길게 내리는 비라는 의미에서 한자 길 장(長)자를 차용했지만 순우리말이다. 한자어로는 오랜 비라는 의미로 구우(久雨), 그치지 않는 비라는 의미로 임우(霖雨), 평상시보다 2배 이상 내리는 비라는 의미로 적림(積霖)이라고도 불린다. 매실이 익을 무렵에 내리는 비라는 의미로 매우(梅雨)라는 말도 자주 쓴다.


2009년 기상청은 장마예보를 중단한다고 밝힌 바 있다. 과거와 달리 일정 기간 다량의 비가 오던 장마가 아열대성 국지성 호우에 가까워져 예보 자체가 큰 의미가 없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이를 방증하듯 2010년 후반에는 마른 장마, 반쪽 장마 등이 나타나며 수년간 가뭄에 시달리기도 했다.

올해 장맛비는 10일 현재 48일째다. 유난히 강수량이 많았던 1974년 45일을 이미 넘어섰고 역대 최장기간 장마로 기록된 2013년 49일째에 육박하고 있다. 예보대로라면 50일을 넘길 것으로 예상돼 사상 최장 기간 장마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 장마는 한반도 강수량의 약 30%를 책임지는 비다. 때로는 반갑지만, 강수량이 많다 보면 홍수와 산사태 등 자연재해가 발생해 수많은 이재민들을 만들어낸다. 강수량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기간이다.


일조량이 부족하다 보니 각종 식물들은 광합성을 못하고 성장을 멈춘다. 세포 조직에 과도한 수분이 유입되며 삼투압을 견디지 못하고 터져버리는 경우가 다반사다. 흔히 우리가 '채소가 녹는다'고 말하는 현상이다. 달달한 여름철 과일 역시 수분에 당분이 희석돼 싱거워진다. 물에 약한 고추, 토마토는 아예 죽어버린다.


긴 장마기간은 가을, 겨울까지 영향을 미친다. 고랭지 배추의 생산량이 급감하고 질이 나빠져 김장철 배추값이 급등하는 것은 물론 애써 담아 놓은 김치가 내년 봄이 되기 전 물러진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농산물유통정보에 따르면 지난 6일 기준 청상추, 양배추, 배추 등 대표 채소 도매가격이 1개월 전보다 60~107% 올랐다. 소매가격의 경우 대형마트들이 가격 방어에 나서고 있지만 이번 주부터 급등이 불가피하다. 상반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으로 장사를 망쳤던 유통업계도 울상만 짓고 있다. 연초에 예고됐던 찜통 더위를 기대하고 잔뜩 바캉스 용품들을 만들어 놓았는데 고스란히 재고로 남게 됐다.


지금까지 보고된 이번 비 피해로 인한 사망자는 모두 31명, 실종자는 11명에 달한다. 이재민은 3500여가구, 6000명에 육박하고 시설 피해는 1만3000여건, 농경지 피해는 2만여㏊에 달한다.


상황이 이러한데 정치권에서는 해묵은 4대강 논쟁이 벌어졌다. 이명박 정부 당시 4대강 사업이 진행된 한강, 금강, 영산강, 낙동강 등이 상대적으로 홍수 피해가 적었고 섬진강 인근에는 유독 피해가 많았다는 야당과 낙동강 합천창녕보가 붕괴되자마자 '4대강 사업이 물난리의 원인'이라고 나선 여당의 공세가 낯뜨겁다. 한마음 한뜻으로 수해 복구 지원과 물가 안정 등 서민 경제에 신경써야 할 때에 해묵은 네탓 내탓만 되풀이하고 있다.


조선 시대도 이와 다르지 않았나 보다. 다산 정약용은 낙향 후 지은 문집 여유당전서(與猶當全書)에 장마를 주제로 한 시 구우(久雨)를 지었다. 장마철 서민들의 가난하고 힘든 살림살이와 글 짓는 일 외에 아무 일도 할 수 없는 자신에 대한 안타까움을 그렸다. 마지막 구절이 가슴을 울린다. '비 오래 온다 해서 어찌 괴로워만 할 것인가(久雨何須苦), 날 맑아도 또 혼자서 탄식할 것을(晴時也自歎).'




명진규 기자 aeo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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