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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지웅의 석유패권전쟁] 주식·환율보다 유가 예측이 더 어려운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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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의 불확실성과 변동성은 왜 숙명인가

아시아경제신문은 7일부터 격주로 금요일 자에 국제 석유 질서의 변화와 에너지산업의 미래를 진단하는 '최지웅의 석유패권전쟁'을 연재합니다. 저자는 2008년 한국석유공사에 입사해 유럽ㆍ아프리카사업본부, 비축사업본부에서 근무하다가 2015년 런던 코번트리대의 석유ㆍ가스 MBA 과정을 밟았습니다. 지난해 석유의 현대사를 담은 베스트셀러 '석유는 어떻게 세계를 지배하는가'를 펴냈습니다.

[최지웅의 석유패권전쟁] 주식·환율보다 유가 예측이 더 어려운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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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1월 국제 유가는 배럴당 60~68달러 사이에서 움직였다. 이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이 확산하자 지난 3월 중 유가는 반 토막이 돼 30달러대 초반까지 하락했다. 유가 급락은 일반 투자자들의 관심을 끌면서 원유 가격을 추종하는 파생 상품(상장지수증권(ETN) 등)에 대한 투자가 급증했다. 당시 유가는 연초 대비 50% 이상 하락한 상태여서 곧 반등할 것이라는 심리가 있었다. 그러나 그러한 생각을 비웃기라도 하듯 유가는 재차 급락하면서 4월 서부텍사스산원유(WTI) 선물의 월평균 유가는 20달러 이하로 떨어졌다. 특히 4월20일에는 -37.63달러에 거래되며 판매자가 오히려 돈을 주고 팔아야 하는 초유의 상황까지 연출됐다.


농산물 시장과 닮은꼴인 석유 시장…완전경쟁에 가까워
OPEC과 IEA 통해 독점, 담합 유지돼도 급등락 못 피해

주식과 상품의 가격, 금리나 환율 등 경제 지표를 예측한다는 것은 매우 어렵다. 그러나 그 어떤 가격과 지표도 국제 유가만큼은 아니다. 역사적으로 국제 유가는 주식이나 다른 상품의 가격을 압도하는 변동성을 보였다. 이러한 석유시장과 비슷한 변동성을 보이는 시장이 또 하나 있다. 농산물시장이다. 양파 또는 배추 가격은 어느 해에는 헐값이 됐다가 다른 해에는 금값이 되는 현상이 나타나곤 한다. 농산물시장은 석유시장만큼 수급 균형의 일탈을 자주 보여주는데, 두 시장은 중요한 공통점이 하나 있다. 두 시장 모두 다수의 공급자와 다수의 수요자가 존재하는 소위 완전경쟁시장에 가깝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석유시장이 단 하나의 기업에 의해 독점된다면 석유 가격은 안정될 수 있을까? 석유시장에서는 독점을 통해 가격을 통제하려는 시도가 역사적으로 지속됐다. 근대 석유산업이 태동한 19세기 후반 미국에서 존 데이비슨 록펠러는 미국 내 석유산업의 95%를 장악하며 독점적 지위를 확보했다. 그는 석유의 유일한 표준을 지향하며 '스탠더드오일'을 설립하고 경쟁사를 합병하며 석유왕으로 군림했다. 1911년 반독점법에 의해 해체될 때까지 스탠더드오일은 원유 수급을 홀로 장악했다. 그래서 잠시나마 유가의 급락과 급등을 방지하면서 가격을 통제할 수 있었다. 이러한 사례는 훗날 주요 산유국에 벤치마크가 됐다.


1960년대에 최대 원유 공급자가 된 중동과 남미 산유국은 석유수출국기구(OPEC)라는 카르텔을 통해 공급량을 조절하고자 했다. OPEC은 공급량을 통제하면서 1970년대에 오일 쇼크를 일으키기는 했지만 그들의 영향력도 오래가지 못했다. 1974년 국제에너지기구(IEA)가 출범하면서 회원국들이 공동으로 원유 비상 재고를 비축해 독점의 영향을 상쇄했다. 더 중요하게는 OPEC 회원국 간 담합이 제대로 유지되지 않았다. 요컨대 스탠더드오일도, OPEC도 유가를 통제할 수 없었다. 독점은 공격받기 쉬웠고 담합은 깨지기 쉬웠다.


독점 생산자라도 석유 생산량은 몰라
코로나19 같은 경제돌발변수로 수요 예측 못해
원유 페이퍼거래가 실물거래보다 훨씬 많아 변동성 키워

독점과 담합이 제대로 유지된다면 유가는 급등과 급락 없이 안정적으로 유지될 수 있을까? 단기적으로 가능할지 모르지만 장기적으로는 급등락을 피할 수 없다. 그 이유는 세 가지로 볼 수 있다.

최지웅 '석유는 어떻게 세계를 지배하는가' 저자, 한국석유공사 석유정보센터 근무

최지웅 '석유는 어떻게 세계를 지배하는가' 저자, 한국석유공사 석유정보센터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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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석유 생산량은 독점 생산자라도 예측할 수 없다. 현재 기술로도 지하에 얼마만큼의 석유가 매장돼 있는지 정확히 알지 못한다. 역사적으로 석유 매장량과 생산 예측은 번번이 틀렸고, 지금도 탐사 성공률은 보통 30%를 넘지 못한다. 탐사에 성공해 생산 중인 유전이라 할지라도 산유량을 공장의 생산 관리처럼 정확히 조절할 수 없다. 원유 생산에 필수적인 지하 저류층의 압력과 수명은 많은 부분이 사람의 통제 밖에 있다.


둘째, 공급량 조절도 어렵지만 수요도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당장의 코로나19 사태로 올해 2분기 석유 수요는 20% 가까이 감소했다. 이러한 수요 급락은 누구도 예측하지 못한 것이었다. 코로나19라는 예외적 상황을 배제하더라도 석유 수요는 경기 순환과 경제 성장률, 물가, 실업률 등 예측하기 어려운 거시경제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예측이 어려운 경제 환경에 종속된 석유 수요 역시 예측 가능한 영역이 아니다.


마지막으로 석유시장에는 실제 원유가 필요해서 거래하는 시장 참여자보다 거래를 중개하거나 차익을 얻기 위해 시장에 참여하는 거래자가 훨씬 많다. 오늘날 뉴욕과 런던의 상품거래소에서는 실물 원유를 수반하지 않는 페이퍼 거래가 실물 거래의 20~30배 수준으로 발생한다. 투자, 투기, 거래 중개, 가격 헤지 등 다양한 목적의 거래가 유가의 변동성을 키우고 있다. 지난 4월 WTI 선물의 마이너스 가격도 실물 인수를 피하려는 거래자들이 만기일 전에 원유 매수 포지션을 급히 정리하면서 발생했다.


역사적으로 저유가 이후 고유가 일정 패턴 반복
현재는 저유가로 전례없는 투자 감소

수년 후 고유가 재도래 가능성 높여

그런데 예측할 수 없는 고유가와 저유가의 흐름에서 석유업계가 보이는 일정한 패턴은 장기 유가를 전망하는 데 작은 실마리를 제공한다. 보통 고유가는 유전 탐사와 개발에 대한 투자를 증가시켰고 저유가 기조는 그것을 위축시켰다. 그리고 그것은 시차를 두고 수급의 불균형을 야기했다. 1970년대 오일 쇼크와 이어진 고유가는 북해와 알래스카 등의 새로운 유전 개발을 촉진했다. 그리고 그것은 공급량 증가로 이어지며 1986년의 유가 폭락을 촉발했다.


역사는 반복돼 2010년에서 2012년 사이 '아랍의 봄'이라 불리는 반정부 시위가 중동과 북아프리카를 휩쓸면서 고유가 기조가 이어지자 미국 셰일 유전 등에 대한 신규 투자가 활발해졌다. 그리고 그것은 2014년부터 2016년까지 유가의 지속적 하락을 불러왔다.


2020년 현재 상황은 앞에서 언급한 모습들과 정반대다. 유가가 폭락하면서 올해 세계 석유 개발 투자액 규모는 지난해 대비 약 30%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의 일부 셰일업체는 파산보호 신청을 했고, 메이저 석유업체는 투자 계획을 취소하거나 연기하고 있다.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될수록 투자 감소율은 더 커질 것이다. 2014년 이후 최근 5년간 석유 개발 투자액이 감소하는 추세에서 코로나19는 재차 투자를 크게 감소시키고 있는 것이다.


유전 개발은 짧게는 1년, 길게는 10년 이상이 걸린다. 따라서 지금의 투자 부진이 당장은 아니라도 경기가 회복되는 미래의 어느 시점에 공급 부족을 초래할 수 있다. 물론 미래를 단언할 수는 없다. 다만 지금의 전례 없는 투자 감소는 수년 후 고유가 시기의 재도래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특히 유가가 과거에 보여준 압도적 변동성을 생각할 때 더욱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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