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Dim영역

[톺아보기] 예술가의 선물

뉴스듣기 스크랩 글자크기

글자크기 설정

닫기
인쇄 RSS
김보라 관장

김보라 관장

AD
원본보기 아이콘

20세기 초반 유럽은 두 번의 전쟁을 겪었다. 전쟁은 예술가들에게 삶의 근원에 대해 되묻게 했다. 많은 작가는 현실에서 스스로 살아남아야 했다. 자기 작품을 보여주고 그것을 기반으로 생존하는 예술가들에게 지금은 또 다른 전쟁의 시기일지도 모른다.


1964년 프랑스 남부의 중세 도시 생폴드방스에 마그재단미술관이 문을 열었다. 아름답지만 거대하지 않고, 유명 작가들의 작품을 많이 소장한 매우 특별한 미술관이다.

칸의 판화 공방 운영주 에메 마그(1906~1981)는 사업적 성공으로 갤러리도 함께 운영하면서 예술가들과 친분을 쌓아갔다. 그는 자기의 이익보다 전쟁으로 파괴된 예술 생태계에서 떠도는 예술가들에게 자기가 해줄 수 있는 일이 뭔지 찾고자 노력했다. 그래서 조르주 브라크(1882~1963), 알베르토 자코메티(1901~1966) 등 유명하지 않거나 논란의 대상이 되곤 하는 젊은 작가들의 작품을 전시·판매했다. 이들은 훗날 현대미술의 거장이 됐다.


마그재단미술관은 1953년 마그 부부가 어린 아들을 병으로 잃은 직후 친구들에 의해 구상됐다. 크게 낙담한 부부가 삶을 견뎌낼 수 있도록 예술가들은 그들이 수십 년간 부부에게서 받은 값진 도움에 보답하고자 한 것이다.


마그 부부는 페르낭 레제(1881~1955)의 대형 유화를 미국 뉴욕 구겐하임미술관에 팔아 최소한의 자금부터 확보했다. 그런 다음 예술가들의 활약이 시작됐다.

마그재단미술관 설계는 주제프 류이스 세르트(1902~1983)가 맡았다. 숲속에 자리 잡은 분홍빛 건물과 하늘로 향한 반달 모양의 지붕이 남프랑스 대기의 진향을 뿜어내는 듯하다.


호안 미로(1893~1983)는 자기 이름이 붙여진 정원 곳곳에 조각 작품을 설치하고 작품 150여점도 기증했다. 레제와 마르크 샤갈(1887~1985)은 벽돌에 어울리는 부조와 모자이크 야외 벽화를 제작했다. 샤갈은 생폴드방스에서 말년을 보낸 뒤 소박한 묘지에 묻혔다. 그의 삶을 반추하는 대표작 '인생'은 메인 공간에 전시돼 있다.


자코메티는 인연이 더 각별해 마그재단미술관에 '걷는 남자' 등 작품 52점을 기증했다. 이 밖에 피에르 보나르(1867~1947), 앙리 마티스(1869~1954) 같은 많은 예술가가 작품을 기증해 현재 4만여점이 소장돼 있다.


정원에는 마그 부부의 죽은 아들을 위한 작은 예배당이 건립됐다. 미술관의 근원이 되는 이곳에는 브라크의 푸른빛 스테인드글라스가 예수상 위를 장식해 영적인 교감도 제안한다. 숨 막힐 듯 응축된 공간의 아름다움은 이곳의 이야기를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숭고한 예술적 체험이 되곤 한다. 그야말로 예술가들이 함께 만들어낸 미술관이다.


결국 젊은 작가들이 성장해 마그재단미술관의 든든한 뿌리가 됐다. 동시대 창작자들을 아끼고 지지한 한 사람의 열정이 절망적인 시대의 작가들에게 큰 희망이 되었으리라. 그래서인지 여기 그들의 작품에서 강한 생명력이 느껴진다.


가장 중요한 것은 마그재단미술관이 가기 쉽지 않은 한적한 숲속에 자리하고 있지만 해마다 수십만 명이 찾는다는 점이다. 세계 곳곳에 좋은 작품을 소장한 미술관이 많다. 하지만 작품 이상의 가치를 지닌 미술관은 흔치 않다.


마그재단미술관은 지금도 설립자의 뜻을 받들어 동시대 젊은 작가들과 계속 소통하고 있다. 예술이 위축된 요즘 우리에게는 거울 같은 미술관이다. 지금은 예술가들을 조금 더 살펴야 할 때다. 이들은 언젠가 그 누군가의 지친 마음을 치유할 수 있는 값진 선물이 될지도 모른다.


큐레이터·성북구립미술관장








AD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함께 본 뉴스

새로보기

이슈 PICK

  • 6년 만에 솔로 데뷔…(여자)아이들 우기, 앨범 선주문 50만장 "편파방송으로 명예훼손" 어트랙트, SBS '그알' 제작진 고소 강릉 해안도로에 정체모를 빨간색 외제차…"여기서 사진 찍으라고?"

    #국내이슈

  • 美대학 ‘친팔 시위’ 격화…네타냐후 “반유대주의 폭동” "죽음이 아니라 자유 위한 것"…전신마비 변호사 페루서 첫 안락사 "푸바오 잘 지내요" 영상 또 공개…공식 데뷔 빨라지나

    #해외이슈

  • [포토] 정교한 3D 프린팅의 세계 [포토] '그날의 기억' [이미지 다이어리] 그곳에 목련이 필 줄 알았다.

    #포토PICK

  • 제네시스, 中서 '고성능 G80 EV 콘셉트카' 세계 최초 공개 "쓰임새는 고객이 정한다" 현대차가 제시하는 미래 상용차 미리보니 매끈한 뒤태로 600㎞ 달린다…쿠페형 폴스타4 6월 출시

    #CAR라이프

  • [뉴스속 인물]하이브에 반기 든 '뉴진스의 엄마' 민희진 [뉴스속 용어]뉴스페이스 신호탄, '초소형 군집위성' [뉴스속 용어]日 정치인 '야스쿠니신사' 집단 참배…한·중 항의

    #뉴스속OO

간격처리를 위한 class

많이 본 뉴스 !가장 많이 읽힌 뉴스를 제공합니다. 집계 기준에 따라 최대 3일 전 기사까지 제공될 수 있습니다.

top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