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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준영의 도시순례]초라한 도시, 천박한 도시

최종수정 2020.07.31 13:14 기사입력 2020.07.31 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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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준영의 도시순례]초라한 도시, 천박한 도시

부산은 엉뚱한 도시다. 운전을 하다 보면 어느 순간 차로가 없어졌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골목길이라고 생각하던 곳에서 뜬금없이 튀어나오는 시내버스를 만나게 된다. 주차장인 줄 알았는데 지붕이고, 막다른 골목일 줄 알았던 곳은 끝없이 계속 이어진다. 밤에 부산역에 처음 내리는 사람들은 초고층 빌딩의 불빛에 놀라고, 다음 날 아침 그 건물이 산 위에 솟아 있는 아파트라는 사실에 다시 놀란다. 바다를 가로지르는 거대한 다리, 초고층 빌딩과 더불어 거의 100년이 다 되어가는 목조주택들이 같이 존재하며, 조선소와 철공소 그리고 해수욕장이 공존하는 곳이다. 한때 대한민국 제2의 도시로 불리던 도시였지만 인구도 기업도 빠져나가는 처지가 되었고 '초라한 도시'라는 이야기를 듣게 됐다.

'초라한 도시'부산?
1960년대 공업화 급성장
인구·기업 몰렸다 빠져나가

여의도에서 한강 유람선을 타면 1970년대부터 2020년대까지의 아파트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다. 한강 양쪽을 포위하듯이 둘러싸고 있는 아파트들과 한강을 따라 경계선을 만들고 있는 왕복 8차로의 강북강변도로와 올림픽대로는 철조망처럼 느껴진다. 조금씩 강가에 나무들이 늘어나고 있지만 콘크리트 제방으로 만들어진 강변의 풍경은 삭막하게 느껴진다. 압도적이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우아하지도 않은 아파트들로 둘러싸인 한강의 모습은 분명 누군가에게는 '천박한 도시'라고 느껴질 수도 있다.


1988년부터 해외여행이 자율화되면서 많은 이가 해외, 특히 유럽으로 여행을 떠나기 시작했다. 10일 정도 일정으로 10개국을 돌아보는 여행을 다녀온 사람들은 하나같이 유럽 도시의 우아함과 아름다움을 이야기했다. 도시를 가로지르는 하천을 유유히 떠다니는 유람선에서 보이는 성당과 왕궁들의 세련됨, 고층 건물 없이 잘 구획된 가로와 튀지 않고 조화를 이루는 주택들의 모습은 성숙되고 문화적인 도시의 모습이었다. 천박하고 초라한 대한민국의 도시와는 차원이 다른 도시였다.

서울과 부산은 대한민국의 건국 그리고 발전과 함께해온 도시들이다. 일본과 연결되는 가장 주요한 통로이던 부산은 일제강점기 중국과 만주까지 이어지는 철도망의 출발점이기도 했다. 경성, 평양과 같이 전통적인 도시 위에 생겨난 도시가 아니라 인천과 원산, 대만의 가오슝, 만주의 다롄 등과 같은 도시처럼 부산은 새롭게 계획적으로 만들어진 도시였다.


항구 도시로 조성된 부산의 운명은 1950년 한국전쟁으로 순식간에 뒤바뀌었다. 전쟁을 피해 전국에서 몰려온 피난민들은 조그마한 틈만 있으면 집을 짓고 험난한 세월을 버텨내기 시작했다. 평소라면 사람들의 거주지로 활용되지 않았을 급경사 지역에도 그렇게 사람들은 빼곡하게 들어찼고, 먹고살기 위해 시장과 노점은 커져갔다. 1960년대부터 시작된 공업화는 부산에 성장의 기회였다. 항만을 보유한 부산은 수출의 전진기지가 되었고 합판, 신발 등 많은 사업체가 부산에 자리를 잡았으며, 사람들은 직장을 찾아 부산으로 몰려왔다. 차분하게 계획하고 방향을 설정하기 이전에 도시와 공간과 인구는 급속히 팽창했다. 도시계획은 미래를 내다보는 것이 아니라 당장 코앞에 현실로 닥친 도로를 만들고 주거지역을 확보하고, 학교를 지을 땅을 마련하는 데 집중될 수밖에 없었다. 당장 문제가 생기지 않으면 놔두고 문제가 등장하면 임기응변으로 대응하면서 부산은 모든 것이 정신없이 뒤죽박죽인 도시로 변화했다.

'천박한 도시'서울?
전쟁에 도시계획 파괴되고
한강변 메워 시가지 만들어

서울 역시 마찬가지였다. 일제강점기에 수립된 경성 도시계획은 1940년대 들어 유명무실해졌으며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처참하게 파괴됐다. 충분한 자본과 인력이 있었다면 전후 복구를 통해 새롭게 변화했겠지만 그렇게 하기에는 모든 것이 부족했다. 몰려드는 사람들로 빼곡한 도시에서 체계적이고 장기적인 계획은 사치일 수밖에 없었다. 땅이 없었기에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한강변을 메워 아파트라는 새로운 주거 공간을 만들기 시작했고, 그것도 모자라 한강 건너편에 새로운 시가지를 만들었다. 황량하고 삭막하던 한강변으로 사람들을 움직이는 수단은 '집'이 유일했다. 한강변 아파트는 주거의 제공이자 동시에 전시를 대비한 방어진지 역할도 해야 했다. 압구정동 현대아파트에 총안구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별로 없을 것이다.


최준영 법무법인 율촌 전문위원

최준영 법무법인 율촌 전문위원


초라하고 천박해 보이던 대한민국의 도시에 언제부터인가 전 세계 사람들은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관광객이 증가하고 서울이라는 도시는 유명한 곳이 됐다. 복잡하기만 하고 여름 해수욕장과 회 빼고는 먹을 것도, 볼 것도 없다고 하던 부산에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골목 구석구석을 찾아다니고 시장 뒤켠의 허름한 음식점들을 찾아내기 시작했다. '뭐 볼 것 있다고'라는 인식과 달리 사람들은 서울과 부산에 열광했다. 사람들이 부산과 서울을 좋아하게 된 것은 공 들여 잘 정비한 문화재나 전시 공간 때문이 아니었다. 정신없고 복잡하고 예측불허인 공간들 그리고 그곳에 빼곡하게 들어찬 사람들이 정신없이 만들어내는 움직임의 에너지가 사람들을 불러오고 흥미를 불어넣었다.

'뒤섞임'의 매력이 포인트
대한민국 건국과 함께 발전
체계적 신도시는 재미없어
관광객 늘고 전 세계 관심

싸우면서 건설해온 대한민국 도시가 가지고 있는 매력은 '뒤섞임'이다. 주거와 상업, 업무와 생산이 어떤 곳은 적당히, 어느 곳은 마구 섞여 있다. 서로 다른 활동이 좁은 공간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면서 만들어내는 에너지는 매력이 돼가고 있다.

우리는 도시계획에 따라 조성된 도시들이 좋은 도시라 생각해왔다. 용도지구는 세분화되고, 지구단위계획으로 내려가면 건물의 외관이나 색깔까지 지정한다. 그 핵심에는 공간의 분리가 있다. 그렇게 만들어진 대표적인 도시들이 2기 신도시인데 다들 재미가 없고 활력이 없다. 공간별로 쪼개고 나누고 분리시켜놓으니 활동의 융합과 시너지가 나타나지 않는다. 심심하고 재미없는 공간이 된다. 세종도 그렇다.

대한민국의 도시들은 수백 년 동안 착취와 전쟁을 통해 쌓아올린 부로 만들어진 유럽의 도시들을 기준으로 본다면 천박해 보이고 초라해 보일 수 있다. 그렇지만 누군가에게는 천박함과 초라함으로 느껴지는 그 무엇이 대한민국 도시가 가진 매력 포인트이고 강점이기도 하다. 천편일률적이고 창의성이 없다는 비판을 받아오던 K팝이 한순간 다양함과 넘치는 에너지로 세계인들을 열광시키듯이 천박하고 초라해 보이는 우리의 도시에 세계인들이 열광할 순간이 머지않았다. <최준영 법무법인 율촌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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