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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톺아보기] 상식적인 세상에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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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혜리/언론인·문화비평

[톺아보기] 상식적인 세상에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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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손이 잡히지 않아 한참을 서성거렸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가 여전히 수그러들지 않아 뒤숭숭한데다 전해지는 뉴스들 때문에 마음이 심란했다. 밝혀지지 않은 진실은 무엇인지, 뭔가 거대한 음모가 있는 것은 아니었을지 의구심이 고개를 드는 것은 갑자기 벌어진 이 모든 일들이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목숨을 귀하게 여겨야 한다고 우리는 배웠다. 남의 목숨도, 나의 목숨도 귀하기는 마찬가지다. 그런데 많은 유력 정치인들이 극단적 방법으로 세상을 등졌다. 죽은 자는 말이 없으니 그들이 목숨을 던진 정확한 이유를 알 길은 없고 진실은 묻혀 버린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코로나19 대응과 부동산 시장 안정화대책 등으로 분주하게 일했던 박원순 서울시장이 극단적 선택을 했다는 소식은 국내 뿐 아니라 해외에도 큰 충격을 안겼다. 앞서 박 시장이 전 비서로부터 성추행 혐의로 형사 고소당했다는 뉴스도 너무나 충격적이었다. 이 사건이 그를 죽음으로 내몬 직접적인 원인이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지만 충분히 받아들여지지는 않는다. 그에 대한 지지여부를 떠나 인구 1000만, 예산 40조원 규모의 서울 시정을 책임지고 있던 차기 대권 유력후보가 배낭하나 메고 집을 나가 세상을 등진 것을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어떻게 납득할 수 있겠나.

그는 여성계에서 유명한 페미니스트로 알려졌고, 시장이 된 후에도 여성친화적인 정책을 적극적으로 펼쳐왔다. 시민운동가, 인권 변호사 출신이라는 타이틀이 따라 붙었던 그가 성추행 혐의로 도덕성에 타격을 입게 될 것을 자명하다. 그럼에도 그렇게 죽음으로 모든 것을 덮어버리는 것은 아무리 좋게 생각하려해도 용납이 되지 않는다. 여비서는 2017년부터 성추행을 당했다는데 왜 이 시점에 그것을 세상에 들춰내는가도 납득이 가지 않는 부분이다. 시시비비를 따져 보고 잘못을 했다면 응당 살아서 죄 값을 받아야 마땅하다. 자살률 세계 1위라는 오명에 정치인들이 성추행으로 낙마하는 일이 빈번한 이 나라의 수도 서울을 책임진 시장이 성추행 혐의를 받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는데 서울특별시장(葬)을 하며 온 세상에 알리는 것이 과연 상식적인 판단이었는지 숙고해 봐야한다.

박 전시장의 주검이 발견된 날 정부는 스물두 번째 부동산 대책을 발표했다. 혼란스러움을 가중시켰다. 곧 또 바뀔 것이니 굳이 내용을 알고 싶지도 않지만 요약하면 보유세인 종합부동산세와 거래세인 취득세와 양도소득세를 한꺼번에 끌려 올려 실주거 목적이 아닌 주택의 구매와 소유를 원천 차단한다는 것이다. 양도세 중과 시점을 내년 6월로 유예하긴 했지만 종부세와 양도세를 한꺼번에 올리면 매물이 잠길 것이라는 것쯤은 예측가능하지 않았을까.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은 자신의 페이스 북을 통해 “투기수요를 근절하고 실수요자를 보호하며 맞춤형 대응을 하겠다는 기조가 흔들림 없이 구현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지금까지 현 정부가 내 놓은 부동산 정책이 오히려 서울의 집값 상승을 부추긴 상황에서 그의 다짐이 실현되리라고 기대하기도 어렵다.

정부가 지금껏 내놓은 부동산 정책 실패의 원인은 단순하다. 상식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시장자본주의를 채택하고 있는 대한민국에서 시장원리를 배제하고 징벌적 세금을 부과하면서 가진 것을 내 놓으라고 윽박지르는 형국이다. 여기저기 채찍만 들이대고 있으니 정책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다주택자와 법인 보유 주택 등에 대한 종부세율 인상으로 더 걷히는 세수가 1조원을 훨씬 넘을 것으로 추산되지만 정부는 아니라고 잡아떼고 있다. 세 살 어린아이도 아는 것을 무조건 잡아뗀다고 될 일인가. 추가 세수를 어떻게 잘 사용할지에 대한 해답을 내놓는 게 국민들이 바라는 바이다. 임대 시장을 양성화하면서 양질의 임대주택을 공급한다는 취지로 마련한 등록 임대사업제도에 대한 대응도 상식 밖이다. 당초 목적에서 벗어나 세금회피와 갭 투자의 수단으로 악용된다는 지적이 제기되자 잉크도 채 마르기 전에 사실상 정리 수순에 들어갔다. 이렇게 즉흥적인 것을 정책이라고 할 수 있을까.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을 합리적인 동물이라고 정의했지만 작금에 우리 사회에서 이어지는 일들을 보면 모순과 역설이 뒤엉켜 혼란스럽기만 하다.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예측 가능한 사회에서 살고 싶다. 그것이 어렵다면 좀 더 현실적인 주문을 해 본다. 상식선에서 이해 할 수 있는 수준이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박 시장의 서울특별시장(葬)을 취소하라는 청원에 응답한 국민 수십만 명도 이 나라의 정치와 행정을 책임진 이들이 ‘상식’을 지켜주기를 바라는 마음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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