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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웨이브] 드라페토마니아와 게임이용장애

최종수정 2020.06.30 11:30 기사입력 2020.06.30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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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웨이브] 드라페토마니아와 게임이용장애

1851년 미국 루이지애나의 새뮤얼 카트라이트라는 의사는 '드라페토마니아'라는 새로운 정신 질환을 발견했다고 주장했다. 그리스어로 '드라페테스'는 '탈출', 마니아는 '광기'를 뜻한다. 번역하자면 '탈주장애' 정도가 될 것이다.


카트라이트에 따르면 이 병은 흑인 노예에게서만 발생하는 독특한 정신 질환이다. 그리고 이 병은 노예들을 자비로운 주인으로부터 탈주시켜 재앙을 일으킨다는 병리현상을 가지고 있다. 카트라이트는 이런 설명을 붙였다. "적절한 의학적 자문(치료)을 받으면 많은 흑인이 탈출하는 이런 골치 아픈 사태를 거의 완전히 예방할 수 있다."

'흑인 생명도 소중하다(BLM·Black Lives Matter)'라는 운동이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에서 이슈가 되고 있는 현재의 관점에서 생각해보면 헛웃음이 날 뿐이다. 굴욕적인 생존 조건에서 탈출하려는 인간의 노력을 정신 질환으로 치부한 것이다.


정상과 비정상은 사회문화적 관점이 반영된 평가다. 노예제가 널리 퍼져 있던 시대에 이를 반대하거나 노예의 탈출을 옹호하는 것은 사회적 혼란을 초래하는 비정상적 행동이었다. 현대 인권의 개념에서 보자면 노예제를 옹호하던 사람들이 오히려 비정상으로 보이는 것이 자연스럽다. 이런 점에서 드라페토마니아와 같은 질병의 등장은 그 사회의 가치관이 어떠했는가를 보여주는 사례다.


달리 보자면 사회가 바뀐다는 의미는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가 역전되거나 최소 재설정되는 것이다. 노예를 도망치지 못하게 치료할 것이 아니라 도망칠 필요가 없이 해방을 시키자던 급진적인 사람, 에이브러햄 링컨은 1861년 미국 대통령이 됐다. 드라페토마니아가 나타난 지 딱 10년 후의 일이다. 비정상적인 인물이 권력을 잡은 것이 아니라 비정상이라고 손가락질하던 사람들이 세상의 변화에 뒤처졌음을 보여준 상징적인 사건이다.

노예제도가 폐지되면서 드라페토마니아라는 질병 명칭과 진단 기준도 사라지게 됐다. 참 다행스러운 일이다. 덕분에 미국은 물론 전 세계가 환호하는 마이클 조던, 마이클 잭슨, 오프라 윈프리, 버락 오바마와 같은 영웅들이 나왔으니 말이다. 만일 드라페토마니아가 정신장애로 인정되는 세상이라면 이들은 자신의 재능을 발휘하지 못한 채 비참하게 살았으리라. 이것은 개인적인 불행을 넘어 인류사적으로도 비극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드라페토마니아의 사례를 보면서 '게임이용장애'가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지 선례를 보여준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임으로 현실도피하는 게이머에게 의학적인 치료를 통해 치료와 예방을 하겠다'라는 논리는 170년 전 드라페토마니아와 하나도 다를 바 없다.


'다른 일상생활보다 게임을 우선시한다'라는 진단 기준도 시대적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다. 게임은 남녀노소 20억명 이상이 즐기는 일상생활 문화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그리고 게임 서비스를 넘어 방송, 건축 등의 기술에 접목되고 있으며 BMW, 루이뷔통과 같은 명품들이 게임 속 광고나 캐릭터의 의상으로 진출했다. 게임 속 의상과 똑같은 디자인을 매장에서 판매하기도 한다. 이제 게임은 현실도피가 아닌 새롭게 등장한 또 다른 현실이자 일상이 됐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은 세상을 비대면 사회로 바꿔놓았다. 그 속에서 게임의 역할은 점점 커지고 있다. 게임이용장애의 공식 질병코드화를 의료적 관점에서만 볼 것이 아니라 문화적 환경과 가치 변화의 관점에서도 진지하게 살펴봐야 할 중요한 이유다. 그리 머지않은 미래에 웃음거리가 되지 않으려면 말이다. 드라페토마니아가 딱 그랬던 것처럼.


이장주 이락디지털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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