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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드B]"화장실 몰카 찍은 사장은 그대로, 내 꿈만 사라져" 몽골 여성의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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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당한 소수 더나은 비주류 세상

외국인고용허가제, 희망 품고 한국 行
재입국특례제도 요건 충족 위해
사업주 성희롱·성추행 시달려도 참아

화장실 변기 속 몰래카메라 발견 후
경찰에 신고 했지만
사업주 처벌 안 받아

위 사진은 기사와 관계 없음. /문호남 기자 munonam@

위 사진은 기사와 관계 없음. /문호남 기자 munon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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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이현주 기자] "국적을 따지기 전에 우리는 똑같은 사람이에요. 후진국에서 왔다고 해서 수모를 당하고 있어야만 하는 건 아니잖아요…. 이 나라에서 한 개인으로서 저는 법을 어긴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잘 살아야 할 권리도 있고, 인권을 보호 받을 권리도 저에게는 있어요. 여성으로서 인권 침해를, 더 이상은 당할 수 없었기에…. 용기를 내게 되었습니다."


몽골 국적인 에르(가명·31)씨는 외국인고용허가제로 한국에 왔다. 입국 전 설레던 마음은 아직도 잊혀 지지 않는다. 한국에 가면 행복하게 살 수 있고 돈도 많이 벌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한국은 선진국이자 외국인들이 일할 수 있는 나라이기 때문에 법과 좋은 제도가 갖춰져 있으리라 믿었다. 어린 아들을 친정 엄마에게 맡기면서도 그는 2년이나 기다려야 하는 구직 등록을 마다하지 않았다. 몽골에서 석사 과정까지 마친 그는 한국어 공부도 열심히 하며 언젠가 아들이 한국에서 공부하는 날을 꿈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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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부천의 한 제조업체에서 일을 시작했다. 기계로 자수 놓는 업무를 하는 작은 공장이었다. 취업했다는 기쁨도 잠시 '사장님'이라고 불리는 사업주는 부적절한 신체 접촉을 일삼기 시작했다. 뽀뽀를 요구하는 등 성추행까지 자행했다. 도저히 참을 수 없었던 그가 여러 번 거부 의사를 강하게 밝혔지만 "그래봤자 너만 손해"라는 식의 대답만 들었다.


"하도 제 허락 없이 제 몸에 손을 대니까 너무 스트레스를 받았어요. 2018년도 즈음에 다른 사업장으로 가겠다, 퇴사 신고를 해 달라고 했더니 그럼 나는 너를 이탈 신고하겠다 하시는 거예요. 저를 몽골로 보내는 신고를 하겠다는 거죠. 너무 두려웠어요."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한국에 온 이상 이대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매일 밤 보고 싶은 어린 아들의 미래를 생각하며 나만 참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조금만 더 견디면 4년10개월을 채워 재입국특례제도 요건을 충족할 수 있었다. 특례제도를 받게 되면 출국 3개월 후 재입국이 가능하며 4년10개월 간 연장해 근무할 수 있게 된다.

요건을 충족할 수 있는 취업 활동 기간 만료를 2개월 앞두고 에르씨는 충격적인 사건과 마주하게 된다. 화장실 변기에서 몰래카메라를 발견했던 것이다. 이 화장실은 에르씨를 포함한 공장 여자 직원들과 사업주가 함께 쓰고 있었다. 너무나 무섭고 떨렸다. 감당할 수 없는 수치심이 밀려왔다. 경찰에 신고를 했다. 신고를 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참을 수가 없을 것 같았다고 했다. 경찰에 따르면 사업주는 카메라를 설치한 사람이 본인이라고 시인했다.


그 때부터 에르씨는 공장에 일하러 나가지 못 했다. 그러나 해당 사업주는 어떠한 처벌을 받지 않은 상태다. 경찰은 몰래카메라 속 영상이 하나 밖에 없다는 얘기를 덧붙였다고 한다. 공장은 버젓이 운영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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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도 많이 힘든 상황인데, 사장님은 그냥 예전처럼 돈을 다 벌고 있어요. 잘못은 그 사람이 했는데...."


그가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외국인 여성, 외국인 근로자는 한국에서 약자입니다. 한국어를 잘 못 하고 한국 문화도 잘 모르니까요. 사업주는 내가 데리고 온 사람이니까 마음대로 하면 된다는 식의 행동을 하는데, 정말 말이 안 돼요. 한국 여성이 거기서 일했다면 함부로 몸을 만지거나 급여를 제대로 안 줬을까요? 한국은 대통령도 평화적으로 탄핵하고, 다 같이 협력해서 일어설 수 있는 나라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나 봐요."


몰래카메라를 발견한 그 날만 떠올리면 아직도 속이 울렁거리고 눈물이 난다고 했다.


친정엄마와 아들 한국에 왔지만
사업주 허가 없어 휴가 못 써
휴가 가라고 한 날은
결근으로 다음달 월급 차감

재입국특례제도는 장기간 안정적인 고용이 가능하다는 측면이 있지만 이를 악용하기란 어렵지 않다. 제도를 인정받기 위해선 우선 4년10개월 동안 사업장 변경을 한 번도 하지 않아야 하고 재입국해서도 1년 이상은 종전의 사업장에서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사실상 노동자는 사업주에게 예속되는 관계로 전락한다. 지금 제도 아래에선 에르씨가 재입국특례제도를 인정받는다 하더라도 불법 촬영을 했던 사업주의 공장에서 최소 1년은 더 일해야 한다.


"법을 지키지 않고, 법을 업신여기는 사람이잖아요. 호기심이라고 말하며 불법카메라까지 일을 벌이고도 돈을 잘 벌고 있어요. 참 아이러니해요."


엄마가 보고 싶어 한국에 왔던 아들과 제대로 된 여행 한 번 못 가 본 것도 그의 마음에 맺혀 있다. 에르씨가 일하고 있을 때 아들과 친정엄마는 2번 한국에 왔다.


"사장님께 아들이 친정엄마랑 같이 한국에 온다고 하는데 일주일만 휴가를 주시면 안 되겠냐고 했는데…, 안 된다고 해서 시간을 내지 못 했어요. 사장님도 아들이 있으니까 이해해줄 거라고 생각하고, 그럼 3일만 달라고, 그 때 당시에 일이 없으니까 들어줄 거라고 생각했는데 안 된다고 해서 너무나 슬펐어요."


그가 원할 땐 쉴 수 없었지만 갑작스럽게 사업주가 쉬어도 된다고 한 날은 결근을 한 것처럼 계산돼 다음달 급여에서 공제가 됐다. 그가 공장에서 받지 못한 돈이 수백만원에 이르지만 사업주는 "절대로 줄 수 없다. 만약 사실이 아니라면 소송을 하겠다"며 엄포를 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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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자 만기를 앞두고 이런 일이 벌어져서 안타깝지만 저 하나로 인해서 거기에 있는 또 다른 노동자 분들이 똑같은 피해를 입지 않았으면 좋겠고, 상처 받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서 시작한 일이에요. 다른 동료들에게 자신에게 피해가 온다면 거부할 수 있는 권리를 주장하라고 얘기해주고 싶어요. 그리고 사업주가 처벌을 받으면 그 주변 회사들도 외국인에 대해서 함부로 해서는 안 되는 거라는 걸 깨닫지 않을까요?"


인터뷰 중 자주 눈물을 보였던 에르씨. 이번 사건으로 본인 뿐만 아니라 친정 식구들, 남편까지 상처를 받아 미안한 마음이 크다고. 남편과 행복했던 시절로 되돌아가고 싶다고 했다. 그가 다시 예전처럼 웃을 수 있을까.


"쉽게 잊혀 지지 않을 사건이고, 평생 저를 괴롭힐 것 같긴 해요. 하지만 처벌이 제대로 이뤄진다면 여성으로 인권과 명예가 다시 회복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현주 기자 ecolhj@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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