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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대규의 7전8기]간이하지 않은 간이회생절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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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대규 서울회생법원 부장판사

전대규 서울회생법원 부장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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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이 전 세계를 강타하고 그 충격은 중소기업에 곧바로 미치고 있다. 중소기업의 도산 신청은 경기후행지수이므로 법원에 접수되는 회생ㆍ파산 사건은 외부에서 느끼는 것만큼 급증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머지않아, 이르면 하반기에 가시적인 사건 증가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문제는 법원이나 도산 실무가 악화하는 경제 상황의 변화에 따라 중소기업에 맞는 채무조정절차를 준비하고 있느냐다.


현재 중소기업을 위한 채무조정절차로 간이회생절차가 있다. 통상적인 회생절차는 대규모 회사(기업)를 전제로 한 것으로 비용이 많이 들고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비판이 있어 2014년에 도입한 것이다. 미국이 지난해 중소기업을 위한 별도의 절차를 마련하고 올해 시행한 것에 비하면 이른 시기에 도입한 것이다. 하지만 현재의 간이회생절차나 법원의 실무 운용은 포스트 코로나 시대 중소기업을 위한 채무조정절차로서 여러 가지 부족한 점이 있다.

첫째, 이용할 수 있는 중소기업이 제한적이다. 현재 간이회생절차를 이용할 수 있는 중소기업은 채무총액이 간이회생절차 개시 신청 당시를 기준으로 30억원 이하여야 한다. 채무총액이 30억원을 넘으면 통상적인 회생 절차에 따라 채무조정을 할 수밖에 없다. 채권자 보호나 절차의 신속함을 위해 대상 중소기업을 제한하는 취지도 있지만, 우리나라 경제 규모로 보면 채무총액 기준이 낮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최근 법무부가 신청할 수 있는 채무총액을 50억원으로 상향 조정하는 개정안을 입법 예고한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둘째, 변제 기간이 길다. 현재 실무는 회생계획의 변제 기간을 통상적인 회생 절차와 마찬가지로 10년으로 운영하고 있다. 미국 연방도산법이 중소기업을 위한 회생계획을 3년에서 5년으로 한 것과 비교하면 지나치게 장기간임을 부정할 수 없다. 10년으로 할 것인지, 아니면 5년으로 할 것인지에는 법 개정이 필요 없다. 법원의 전향적인 실무 변화를 기대해본다.


셋째, 간이조사보고서가 간이하지 않다. 간이조사보고서란 간이조사위원이 채무자(기업)의 자산이나 부채 상황, 간이회생절차 진행의 적절성, 회생계획 수행 가능성 등을 조사해 작성한 문서다. 통상적인 회생 절차에서는 채무자의 자산 등을 조사하는 기간도 길고 회계 자료도 방대하기 때문에 100페이지가 넘는 보고서가 작성되곤 한다. 하지만 간이회생절차에서는 신속한 절차 진행을 위해 문서 열람이나 채무자 면담 등을 통해서 얻은 내용으로 간략하게 보고서를 작성하도록 한다. 조사 주체도 주로 법원사무관이나 개인회계사다.

간이회생절차의 도입 취지나 간이조사보고서의 조사 방식에 비춰 간략한 간이조사보고서가 제출돼야 하는데, 현실은 통상적인 회생 절차에서 제출되는 보고서와 동일한 분량으로 제출된다. 이에 기업이나 간이조사위원 모두 불만이다. 중소기업의 경우 회계 처리가 잘 돼 있는 곳이 많지 않다. 회계 자료도 거의 없거나 부실하고 외부감사 대상이 아닌 경우가 많아 제대로 된 회계 시스템도 갖추고 있지 않다. 그럼에도 간이조사위원이 적지 않은 자료를 요구하니 위축될 수밖에 없다. 법원사무관이 아닌 간이조사위원도 불만이다. 비용 절감을 위해 간이회생절차에서는 조사비용으로 300만원에서 500만원 정도를 지급한다. 개인회계사들이 조사한 기간이나 보고서의 분량을 보면 적은 금액이다. 그래서 필자는 수원지방법원 파산부장 시절 10페이지 정도의 간이조사보고서를 제출하도록 한 바가 있다.


간이회생절차는 절차의 간소화를 위해 도입한 것이지만 실무 운용은 결코 간이하지 않다. 주된 이유는 현재의 법이 경제 상황의 변화를 제대로 따라가지 못한다는 데서 찾을 수 있다. 하지만 법을 적용하는 법원의 책임도 적지 않다. 법 해석의 한계를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좀 더 유연하게 제도를 운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중소기업연구원은 일본의 실무를 바탕으로 채권자나 채무자, 법원이 관여하지 않는 제3자 중심의 중소기업 채무조정절차의 도입을 주장하고 있다. 이는 간이회생절차에 관한 법원 실무가 그 속도나 절차 진행 측면에서 중소기업의 요구를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현상이다. 깊이 되새겨볼 일이다. <전대규 서울회생법원 부장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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