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r_progress

아시아경제 최신 기획이슈

[세무이야기] ‘비대면 세무행정’은 아직도 멀었나

최종수정 2020.05.22 13:43 기사입력 2020.05.22 13:43

댓글쓰기

[세무이야기] ‘비대면 세무행정’은 아직도 멀었나


며칠 전 근로소득에다가 강연료 등 다른 소득이 있으므로 종합소득세를 신고하라는 세무서의 편지를 받았다. 급히 홈택스(hometaxㆍ국세청이 운영하는 납세 자동화 온라인 시스템)에 접속했다. 그러나 난해한 세무 용어와 복잡한 구조 때문에 정답을 찾지 못한 채 몇 시간 동안 미로를 헤매다가 길을 잃고 결국 세무서로 향했다.


비가 내리는 오후 3시, 세무서 마당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감염 우려에도 세금 신고를 하러 온 수십 명이 줄을 서 있었다. 1시간쯤 지나 대기 번호표를 받았고, 다시 1시간을 더 기다려 세무서 직원의 도움을 받아 겨우 신고를 마쳤다. 유심히 살펴보니 숙달된 직원도 납부서가 나오기까지 10여분의 작업 시간이 필요했다.

고맙다고 인사하고 돌아 나오는데 '세무서 직원이 신고서 작성에 도움을 주는 경우에도 모든 책임은 납세자에게 있습니다'라고 쓰인 현수막이 보였다. 아뿔싸. 그럼 이것도 끝이 아니라는 얘기인가? 사실 그렇다. 세법의 글귀는 소득세 신고의 최종 책임은 납세자 몫이라고 쓰여 있다.


내가 신고를 하지 않는다면? 세무서는 전산 정보 자료를 이용해 내 소득 금액이 얼마인지를 추려내서 소득세를 추징해간다. 세무서는 이미 '다 계획이 있다'. 그럼 굳이 내가 신고를 해야 하는가? 내가 신고한 답안과 맞춰보려고? 세무서가 그렇게 한가한가? 혹시 세무서 답안의 오류 가능성 때문은 아닌가?


사실 사업자와 세무서는 회계장부를 두고 서로 치고받는다. 정답이 없다. 선수끼리의 영역이다. 그러나 비사업자의 세금은 답이 이미 나와 있다. 내가 신고하지 않으면 세무서가 쥔 답안이 정답인 것이다.

사정이 이렇다면, 세무서의 패를 먼저 납세자에게 보여주고 납세자가 그 패에 동의해 세금 신고를 한 경우 그 신고는 확정적이어야 한다. 홈택스 첫 화면에 "귀하의 소득 금액은 ○○○원입니다. 이에 동의하십니까?"라고 띄우고 이에 납세자가 "예" 하고 동의하면 바로 납부서가 나오도록 하면 된다. 얼마나 간편한가. 이게 코로나19발 비대면(Untact) 사회에 적합한 세무 행정일 것이다. 이에 동의하지 않고 세무서 답안보다 적은 금액을 내려고 하는 자만 세무서 마당에 모이게 하면 된다.


성실 납세자가 세금 신고라는 협곡을 지나가는 곳에 흉물스러운 그물과 올무를 쳐놓는 행정을 굳이 할 필요가 있는가. 세무서 답안이 오답(납세자가 실제 납부할 금액보다 적은 금액)이라고 해도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세무서가 '갑'의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사실 잘 알려지지 않아서 그렇지 ICT를 이용한 우리나라 세무 행정은 일본이나 중국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수준이 높으며 미국이나 유럽과 견줘도 결코 뒤지지 않는다.


그러나 성실 납세자의 하찮은 실수를 상습범 다루듯 하는 점은 아쉽다. 강자가 약자의 실수를 품어주는 톨레랑스(tolerance, 관용ㆍ용인ㆍ환대)적 사고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프랑스 정치사상가 필리프 사시에의 '톨레랑스는 공익의 도구'라는 명제는 세무 행정에도 적용할 수 있다.


사족이지만 세금을 납부하면 휴대폰 화면에 빈말이라도 세무서장의 "고맙습니다"라는 인사가 있었으면 한다. 납세자는 국가의 주인이기 때문이다. 질병관리본부는 그렇게 매일 국민과 소통하고 있다. 세무서도 못 할 이유가 없다. 사소한 몇 가지만 보완한다면 우리나라가 가히 'K방역' 수준의 K세무 행정을 구현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다.


비바람 몰아치는 궂은 날, 코로나19 감염 위험을 무릅쓰고 줄을 서서 세금을 신고하는 국민이 새삼 위대해 보였다.


안창남 강남대학교 경제세무학과 교수




.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간격처리를 위한 cla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