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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오늘] 유나보머(Unabomber)

최종수정 2020.05.22 10:06 기사입력 2020.05.22 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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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오늘] 유나보머(Unabomber)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은 2007년 3월3일 '세기의 범죄' 스물다섯 건을 선정했다. '린드버그 납치사건' 75주년을 맞아 기획한 특집기사였다. 린드버그 납치사건은 1932년 3월1일 미국의 항공 영웅 찰스 린드버그의 아들이 뉴저지주 하이필즈에서 납치·살해된 사건이다. 타임은 1911년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의 '모나리자' 도난 사건, 1994년 전처 살해 혐의로 재판을 받은 미식축구 스타 심슨 사건, 1997년 패션 디자이너 지아니 베르사체 살해 사건, 1999년 컬럼바인 고등학교 학생 두 명이 교내에서 열세 명을 살해한 총기 난사 사건도 포함했다.


하버드대 출신의 수학 천재 시어도어 존 카진스키가 저지른 폭탄 테러 사건도 빠뜨리지 않았다. 카진스키는 1978년 5월27일부터 1995년 4월까지 17년 동안 열여섯 차례에 걸쳐 우편물 폭탄으로 세 명을 죽이고 스물아홉 명을 다치게 했다. 대학(University)과 공항(Airport)에 그의 테러가 집중되었기에 '유나보머(Unabomber)'로 불렸다.

카진스키는 1942년 오늘 미국 일리노이주 시카고에서 태어났다. 열여섯 살에 하버드대 수학과에 입학해 스무 살에 졸업했다. 미시간대에서 수학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1967년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조교수가 됐을 때는 스물다섯 살이었다. 그러나 그는 2년 만에 물러났다. 1973년에 몬태나주의 숲속에 들어가 오두막에 기거하며 5년가량 문명을 등지고 혼자 살았다. 1978년부터 우편물 폭탄 테러를 저지르기 시작했다.


1995년 카진스키는 '워싱턴 포스트'와 '뉴욕 타임스'가 자신의 기고문을 게재하면 테러를 중단하겠다고 제안했다. 해당 언론사와 법무장관, 연방수사국(FBI) 국장의 결정으로 1995년 9월19일 8개면에 걸쳐 카진스키의 '선언문'이 실렸다. 3만5000여 자에 이르는 선언문에는 반과학·반기술의 격정적 메시지가 담겼다. 카진스키는 현대 산업사회의 병폐를 극복하기 위한 방법은 혁명뿐이라고 주장했다. "기술과 자유 사이의 지속적 타협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기술이 훨씬 더 강력한 사회적 권력이기 때문이다."


카진스키는 1996년 4월3일 체포됐다. FBI는 그의 오두막집에서 선언문 작성에 사용된 타자기와 일기를 발견했다. 제보자는 동생 데이비드 카진스키였다. 데이비드는 선언문의 요지와 문체가 형의 것과 비슷하다고 판단했다. 그는 11월17일자 'US 뉴스 앤드 월드 리포트' 지에 보낸 성명에서 "더 이상의 인명 피해를 막기 위해 형을 신고했다"면서도 "형에게 사형을 구형하려는 정부의 계획에 슬픔을 느낀다"고 토로했다.

1997년 11월12일 새크라멘토 연방지법에서 재판이 시작되었다. 카진스키에게는 살인을 비롯한 10개 혐의가 적용되었다. 카진스키는 '정신이상'을 변론 전술로 삼으려는 변호인단의 의견에 반대했다. 재판에서 자신의 주장을 이성적으로 전개해나갔다. 연방지법은 1998년 5월4일 그에게 가석방 없는 종신형을 선고했다. 카진스키는 최후진술을 통해 "미국 정부가 나의 반기술문명 철학에 대해 거짓말을 했다"고 비난하면서 "유나바머 사건의 진실을 훗날 밝히겠다"고 다짐했다.


카진스키는 잡히기 전과 수감된 뒤에 글을 많이 썼다. 논지는 신문에 기고한 선언문과 비슷했다. 미국 정부가 출간을 막으려 했지만 연방법원은 언론의 자유를 존중했다. 그리하여 책을 내되 인세는 모두 피해자와 유족 보상금으로 쓰도록 판결했다.


허진석 시인·한국체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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