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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우의 경제읽기]유가 폭락, 끝나지 않은 네번째 사이클

최종수정 2020.05.07 11:30 기사입력 2020.05.07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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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發 수요감소로 큰 영향…구조적 하락기 들어간 탓도
한번 대세하락 시작하면 짧으면 15년, 길면 21년간 하락
유가-주가 다르게 움직였지만 당분간 평행곡선 계속될듯

[이종우의 경제읽기]유가 폭락, 끝나지 않은 네번째 사이클

유가가 좀처럼 안정을 찾지 못하고 있다. 그럴만도 한 게 지난달 한때 서부텍사스산원유(WTI) 가격이 -37.6달러까지 떨어지는 일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석유를 돈을 주고 사는 게 아니라 돈을 주고 파는 일이 벌어졌으니 시장이 이를 해석하고 적응하는데 시간이 걸릴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시장에서는 유가 하락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한 수요 감소 때문으로 보고 있다. 중요한 이유이긴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유가가 구조적 하락기에 들어가 있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


1894년 이후 유가는 네 번의 큰 사이클을 겪었다. 첫 번째는 1894년 시작해 1917년 정점을 찍고 1932년 대공황 때 끝났다. 두 번째는 1951년 정점을 찍고 1971년까지 하락했다. 세 번째는1980년에 정점을 지난 후 20년간 약세를 면치 못했다. 이번이 네 번째로 유가가 2010~2011년에 고점을 지난 후 지금까지 하락을 계속하고 있다. 앞서 세 번의 사이클에서 보듯 유가는 한 번 대세 하락을 시작하면 짧으면 15년, 길 경우 21년간 하락했는데 지금 그 상황에 있는 것이다. 석유시장의 토대가 약하기 때문에 코로나19가 발생하지 않았어도 유가가 낮은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것으로 판단된다.

유가가 이렇게 긴 사이클을 가지고 있는 건 공급의 경직성 때문이다. 석유를 비롯한 채광 부문은 처음 자본이 투입되고 경제성 있는 채굴이 이뤄질 때까지 20년 넘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 기간을 최대한 줄여도 15년 밑으로 떨어지지 않는다. 이 사실을 현재 상황에 적용해 보면 당분간 석유가 공급 과잉에서 벗어나기 힘들다는 결론을 얻을 수 있다. 유가가 50달러를 넘었던 2000년대 중반에 유전개발이 시작됐다면 지금은 개발된 석유가 시장에 본격적으로 나올 시점이다. 본격 투자 시기가 유가가 100달러를 넘었던 2008~2011년이었다면 문제가 더 심각해진다. 아직 본격 공급이 시작되지도 않았는데 유가가 급락했기 때문이다.


상황을 지난 몇 년에 국한해 보면 또 다른 모습을 볼 수 있다. 지난 6~7년 사이 국제 유가는 세 번의 반전을 겪었다. 첫 번째 반전은 2014년 10~12월 사이에 일어났다. 배럴당 100달러 정도였던 유가가 갑자기 40달러대 후반으로 떨어진 것이다. 당시 유가 하락은 사우디아라비아가 주도했다. 사우디는 높은 유가가 미국의 셰일오일 생산을 늘리고 대체 에너지 개발을 촉진해 결국 석유 수요가 줄어들 게 만들거라 판단했다. 그래서 공급 과잉이 굳어지기 전에 구조를 바꿔야겠다고 마음 먹고 증산에 나서 유가 하락을 주도했다.


2017년 말에 두 번째 반전이 일어났다. 기존 산유국에 러시아가 추가된 OPEC+(석유수출국기구(OPEC) 회원국과 비OPEC 협의체)가 감산을 통해 국제유가를 60달러 위로 다시 끌어올렸다. 그리고 이 가격이 2년 정도 유지되면서 여러 산유국들이 적절한 이익을 내는 공조 국면에 들어갔다. 국제 공조에도 불구하고 OPEC+ 내부에서는 불만이 커지고 있었다. 산유국들이 희생해 유가를 끌어올렸더니 혜택은 감산에 참여하지 않은 미국 셰일기업들이 보고 있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이는 산유국들이 희생해 미래 경쟁자를 키우는 형태인 만큼 반발이 생기는 게 당연했다. 결국 유가 하락은 시간상 문제일 뿐 일어날 수 밖에 없었다고 봐야 한다.

올해 3월에 세 번째 반전이 일어났다. 아슬아슬하게 유지되던 석유시장의 균형이 러시아의 감산 거부로 깨지면서 가격이 급락했다. 현재 석유시장의 수급 불균형은 코로나19로 인한 수요 감소만의 문제가 아니다. 공급이 오랜 시간 다양한 요인으로 크게 늘어났다는 점이 더 중요하다. 공급이 수요를 압도하는 상태에서 코로나19라는 악재가 더해지자 가격이 빠르게 하락한 것이다.


석유 수급 불균형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골드만삭스는 3월에 중국의 석유 소비가 하루 300만 배럴 가까이 줄어들었다고 추정했다. 평소 수요의 20%에 해당하는 수치다. 미국 등 주요 7개국의 석유 수요가 똑같은 비율로 줄었다면 그 규모가 600만 배럴이 된다. 조사기관들은 코로나19 확산이 4월부터 본격화된 점을 감안해 전세계 석유 수요가 최대 3000만 배럴까지 감소했을 거라고 얘기하고 있다. 이 숫자가 맞다면 지난달 합의된 1000만 배럴 감산은 큰 의미가 없다. 공급이 수요보다 월등히 많은 상태여서 일부 개선만 가지고는 가격 하락을 막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종우의 경제읽기]유가 폭락, 끝나지 않은 네번째 사이클


앞으로 유가가 어떻게 될까? 정확히 예측하기 힘들다. 가격의 변동이 너무 심해 예측에 필요한 안정성이 확보되지 않기 때문이다. 과거 사례에 비춰보면 20달러대에서 상당시간 머무는 형태가 될 가능성이 높다. 원자재는 주식과 달리 실제 수요와 공급이 존재하는 곳이다. 그래서 수급이 한번 어긋나면 가격이 급변하는 대신, 수급이 균형이 맞으면 형성된 가격이 오래 유지되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1984~1999년이 그런 경우였다. 유가가 15년동안 10달러대를 벗어나지 못했다. 이전 두 차례 석유 파동 때 만들어진 생산 과잉으로 가격이 오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최근에 석유 공급 초과가 심해진 점을 감안할 때 이번 균형 가격은 지금과 크게 차이가 나지 않을 것으로 보이는데 20달러대가 그 수준이 아닐까 생각된다.


유가가 떨어지면 기업이 제품을 생산하는데 들어가는 비용은 줄어든다. 우리나라처럼 석유를 수입에 의존하는 경우는 그 효과가 더 크다. 문제는 유가가 조금씩 떨어지는 게 아니라 급락하는 경우다. 유가 급락은 세계 경제의 극심한 침체를 반영하므로 경제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유가 하락으로 디플레이션 가능성이 높아진 점도 생각해야 한다. 2010년 이후 유가와 기대 인플레이션은 높은 상관관계를 보였다. 유가가 원자재를 대표하는 상품이어서 인플레 심리에 미치는 영향이 컸기 때문이다. 인플레 기대가 낮아질 경우 기업은 투자를 꺼리게 된다. 제품가격이 계속 떨어지는 상황에서 투자 집행은 손실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2011년 이후 유가와 주가가 서로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유가 하락에도 불구하고 선진국 주식시장이 상승한 결과인데, 저금리와 유동성 공급이 차이를 만들었다. 경기가 나빠 유가가 떨어지는 동안에도 주가는 유동성의 힘으로 상승했다. 이제 유가와 주가가 따로 움직이는 상황이 마무리되고 있다. 당분간 낮은 유가와 지지부진한 주가가 함께 하는 상황이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송화정 기자 pancak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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