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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 저출산은 저출산이고, 저출생은 저출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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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2월 말 당시 행정자치부는 '헛발질'을 했다. 243개 기초 지방자치단체의 '임신·출산·보육 지원 현황' 정보를 제공한다면서 이른바 대한민국 출산지도를 공개했다. 그런데 결혼·임신·출산 관련 10년간 통계치에 근거한 지자체 간 순위까지 매겼다. 국가가 여성을 아이 낳은 존재로만 대상화한다는 비판이 당장 일었다. 그리고 출산의 책임을 여성에게만 미루는 저출산 대신 저출생을 용어로 사용하자는 움직임까지 일어났다.


2018년 7월 여성주간을 맞이할 즈음 서울시가 '성평등 언어 사전'이라는 자료집을 냈다. '생활 속 성차별 언어' 개선 맥락에서 '유모차→유아차, 여직원→직원' 등으로 하는 것처럼 저출산도 저출생으로 바꾸자는 제안이었다. 저출산은 '아이 낳지 않음의 책임이 여성에게 있는 것으로 오인될 수 있는 개념'이라는 이유였다. 그후 대부분 언론에서 저출산을 저출생으로 대체하는 제목의 기사를 내기 시작했다. 지자체들도 저출산 대신 저출생을 사업 용어로 사용하는 경향이 확대되고 있다.

그런데 질문 하나를 던져본다. 저출산을 빼고 저출생으로 바꾼 지자체들 사업이 이전에 비해 성평등적으로 바뀌었는가? 출산을 출생으로만 바꾸었지 '저출생 극복'을 위한 청년남녀 만나기(결혼지원) 행사를 개최하는 모습에는 변함이 없다. 시월드·독박육아·경력단절·성별임금격차 등 제도로서 결혼이 가져오는 성차별 때문에 비혼 경향이 증가하고, 이에 따라 출생아 수가 줄어드는 경향에 대한 문제인식이 바뀌어 간다는 조짐은 찾아보기 어렵다.


[광장] 저출산은 저출산이고, 저출생은 저출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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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보니 "초저출생 현상의 기준이 되는 1.3명 이상으로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는 문서를 지자체 연구원에서 생산해낸다. 1.3은 출생률이 아닌 출산율을 의미하는 개념이다. 출생률 관련 개념으로는 조출생률이 있다. 인구 1000명당 출생아 수다. 합계출산율이 처음으로 1.3 이하의 초저출산율을 보였던 2001년 당시 조출생률은 11.7명이었다. 합계출산율이 다시 한 번 1.3을 기록한 2012년 조출생률은 9.6명이었다. 2001년과 2012년 출산율은 같았지만 인구 1000명당 출생 아이 수는 두 명 이상 차이가 났다. 합계출산율과 조출생률은 반드시 일치하는 개념이 아니다. 합계출산율은 여성 1명이 평생 낳은 자녀 수를 기반으로 산출하고, 조출생률은 인구 1000명당 출생아 수로 나타내기 때문이다.


가임여성 숫자가 적으면 1명당 출산아 수가 많아도(출산율이 높아도) 출생률은 높지 않다. 현재 일부 지역에서 출산율은 높지만 출생아 수가 지속적으로 줄어드는 경향이 그 예다. 출산율은 낮고 출생률은 높은 경우도 있다. 1990년대 합계출산율이 1.4 수준까지 낮아졌다. 그러나 한 해 거의 100만명 가까이 태어났던 베이비붐 세대가 출산을 했다. 그래서 출생아 수는 60만~70만명 수준을 유지할 수 있었다. 출산율과 출생률이 동시에 높은 상황도 있다. 과거 1960~1980년대가 그랬다. 지금은 출산율과 출생률이 모두 낮은 상황이다. 그러나 1980년대생보다 숫자가 많은 1990년대생들이 출산을 하기 시작하면 출산율은 낮지만 출생률은 다시 높아질 수 있다. 이때 이른바 저출생 극복 사업의 성과를 자축할 것인가? 그럴 수 없다. 가임여성 규모 변화에 따른 결과일 뿐이기 때문이다.

여성 1명의 선택에 맞춘 정책과 태어난 아이 수에 기반한 정책의 결이 같을 수 없다. 모성을 도구화·대상화한 과거가 있었다. 그러나 저출산ㆍ고령사회위원회는 2018년 7·5 대책과 12·7 로드맵 제시를 통해 성평등을 통해서만 저출산 현상을 돌이킬 수 있음을 인정했다. 출산 주체로서 여성과 가족이 아이를 낳아서 기를 수 있는 사회적 조건을 개선하되, 출생은 개인적 선택의 결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인식의 변화다. 이때 여성 개인이 아이 낳지 않는 이유를 성평등 관점에서 들여다보기 위해 저출산은 필요한 개념이다. 남들이 성평등, 성평등하니까 영문도 모르고 저출생으로 모두 바꿀 것이 아니다.


정재훈 서울여자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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