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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비비]봉준호 신드롬 편승하는 뻔뻔한 정치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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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정완주 부국장 겸 정치부장] 봉준호 감독이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4관왕에 올랐다는 소식이 전해진 후 정치권에서는 웃지 못할 '블랙 코미디'가 연출되고 있다.


잘 알려진 대로 봉 감독은 이명박ㆍ박근혜 정권에서 문화계 블랙리스트 명단에 오른 요주의 인물이었다. 그 사유도 지금 돌이켜보면 참담하다. '살인의 추억'은 공무원 비리 집단 묘사가 부정적이라서, '괴물'의 경우 반미 선동과 국민의식 좌경화를 부추긴다는 것이 이유다. '설국열차'는 어떤가. 시장 경제를 부정하고 저항 운동을 부추긴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래서일까. 자유한국당은 봉 감독이 앞서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을 때 별다른 논평을 내지 않았다. 뭔지는 모르지만 여전히 봉 감독에 대한 불편한 시각을 감추지 못한 듯 보였다.


그러던 한국당이 이제는 봉준호 신드롬에 열광하고 있다. 칸 영화제와 달리 이번에는 한국당도 축하메시지를 전했다.


박용찬 한국당 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문화는 국민 모두가 함께 공유하는 국민적 양식이며 산업"이라며 "창작자와 소비자 모두를 행복하게 만들고, 사회 전체를 밝고 건강하게 만드는 힘을 가진 것이 바로 영화이고 문화"라고 밝혔다. 블랙리스트 사건을 떠올리면 정말 격세지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물론 그것에 관한 사과는 일절 없었다.

대구를 기반으로 하는 한국당 의원들은 순발력을 발휘해 '봉준호 마케팅'에 올라탔다. 봉 감독의 고향이 대구인 탓이다. 강효상 의원은 '봉준호 영화박물관'을 건립해 대구를 세계적인 영화테마 관광메카로 만들겠다고 일성을 내질렀다. 박근혜 정부에서 민정수석을 지낸 곽상도 의원 역시 대구 남구에 영화관 등 문화시설을 확충하겠다고 한다.


강 의원과 곽 의원은 이미경 CJ그룹 부회장이 블랙리스트에 올라 경영일선에서 물러나는 과정을 지켜본 당시 여당 의원들이다. 봉 감독과 이 부회장에 대한 한마디 사과도 없이 봉준호 마케팅에 편승하는 모습은 볼썽사납다.


특히 강 의원은 "CJ그룹의 지원이 없었더라면 오늘과 같은 쾌거가 있었을까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고 평가했다. 블랙코미디의 정점이다.


봉 감독에게 묻히긴 했지만 이번 아케데미 수상식에서 남우주연상을 받은 배우 호아킨 피닉스의 수상소감이 귓전을 울린다. 그는 트로피를 받고 "과거의 실수로 서로를 지워버리기보다는 성장을 위해 서로를 도와야 할 때"라고 말했다. 과거의 잘못이나 실수에 대한 반성이 있어야만 발전할 수 있다는 의미다.


블랙리스트라는 음습한 음모를 모두가 기억하고 있지만 세정액으로 소독한 것처럼 그 기억들을 지워버린 정치권의 작태들. 과거의 불편한 기억은 1인치의 장벽을 뛰어 넘지 못하는 것일까.


여당인 더불어민주당도 마냥 환호할 일은 아니다. '기생충'에서 묘사된 한국 사회의 양극화와 계급화의 책임을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 것인가.


특히 '조국 사태'를 돌아보자. 진보진영 자체가 이미 기득권 세력이 된 현실을 애써 외면하다가 역풍에 시달린 것이 바로 엊그제 일이다. '공정'에 대한 비난의 화살이 여권을 향해 뭇매를 든 것을 잊고 블랙리스트 주범이 아니라는 이유로 봉준호 신드롬에 편승할 자격이 없다. '기생충'에서 묘사된 부조리의 대상은 현재의 여권이다. 여권 또한 처절한 반성이 뒤따라야 한다.


외신들은 봉준호 신드롬 현상을 취재하면서 한국 사회의 반지하 주택과 '짜파구리(짜파게티와 너구리)' 조리법을 집중적으로 소개하고 있다. 아직은 봉준호, 송강호, 이미경 등을 둘러싼 블랙리스트 사건이 크게 재조명되지는 않아 다행(?)이기는 하다. 봉 감독이 황금종려상 수상 후 외신 인터뷰에서 받은 질문 중 하나는 블랙리스트 사건이었지만 말이다.






정완주 부국장 겸 정치부장 wjchun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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