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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경영] 고문관의 어원

최종수정 2020.02.11 14:51 기사입력 2020.02.11 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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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2년 7월 주한미군사고문단 부대 표창식 모습[이미지출차=국가기록원]

1952년 7월 주한미군사고문단 부대 표창식 모습[이미지출차=국가기록원]




[아시아경제 이현우 기자] 군대에서 흔히 쓰는 은어 중에 '고문관'이란 단어가 있다. 맡은 일을 잘 못하고 어리숙한 사람을 일컬어 고문관이라고 부른다. 주변 사람들을 정신적으로 고문한다고 해서 고문관인 것으로 잘못 알려져있지만, 실제로는 미 군정시기 우리나라로 파견됐던 미군 군사고문관에서 유래한 말로 알려져 있다.


'군사고문관(Military Consultant)'은 19세기 개항기부터 2차대전 이후까지 아시아나 비서구 국가들의 군대 창건이나 현대식 무장, 군사체계 정립 등을 도와주기 위해 서구 국가들에서 파견된 장교들을 의미한다. 우리나라에도 구한말 러시아 군사고문관이 파견됐고, 해방 이후에는 1960년대까지 미국의 군사고문단이 교육훈련과 물자지원 등을 위해 파견됐다.


대단히 전문적인 분야의 종사자임에도 군대의 놀림거리 표현으로 불리게 된 이유는 군사고문관들이 대부분 어리숙하다는 평가를 받았기 때문이다. 한국이란 나라의 실정은커녕 위치조차 전혀 모르고 온 사람들이 대부분이다보니 당시 장교들 입장에서는 어리숙해 보였다는 것이다. 특히 고문관들은 물자 지원에 매우 너그러워서 철저한 감사를 실시하기보다 너무 심각하지 않은 부정과 횡령 등은 대체로 눈감아줬던 것으로 알려져있다. 그래서 더욱 어리숙한 사람을 뜻하는 은어로 굳어졌다고 한다.


그런데 이 고문관들은 우리나라에서만 그랬던 것이 아니다. 19세기 이후 중국이나 일본, 필리핀 등 아시아 전역에 파견됐던 유럽과 미국의 군사고문관들은 대체로 물자 지원에 너그러웠다. 무기나 군수용품은 물론 생필품, 각종 건설장비와 설비들도 아낌없이 지원했다.


당시에는 그저 어리숙한 행동으로 보였지만 이런 아낌없는 지원의 이유는 곧 드러났다. 1860년대부터 독일의 군사지원을 받았던 중국은 1930~1940년대 일본과 전쟁을 치르는 와중까지 독일제 무기를 썼다. 메이지유신기 영국의 지원을 받았던 일본은 지속적으로 영국의 무기와 전함을 구매하고 1904년 영국을 대신해 자국보다 50배나 큰 러시아와 일전을 벌였다. 근대식 군대 창설 초기에 사용된 무기와 군체계, 군사동맹을 쉽게 바꿀 수 없었기 때문이다. 미국의 아시아 동맹국들이 여전히 미국 무기 외에 다른 대안을 쉽게 찾지 못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고문관들은 결코 어리숙했던 게 아닌 셈이다.



이현우 기자 knos8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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