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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포럼]무선청소기

최종수정 2020.02.12 09:44 기사입력 2020.02.12 0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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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포럼]무선청소기


오래 전에 국내 최고 시설이라고 하는 고급 피트니스센터를 몇 달간 자유롭게 이용할 기회를 얻었다. 과연 몇 달 뒤 내 몸이 좋아졌을까. 아쉽게도 혹은 당연하게도 군살이 빠지거나 근육이 생기는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내 몸의 근육 세포는 하나도 변화가 없었지만, 내 눈엔 매우 큰 변화가 생겼다. 평소 안 보이던 것이 보이는 신비한 일을 경험했다.


그 고급스럽고 깔끔한 운동 시설에선 샤워를 하고 나서 수건을 잠깐이라도 허투루 놓아두면 금세 사라졌다. 관리를 잘해서 그런지 언제 어디서 직원들이 치웠는지 모르게 내가 잠깐 돌아서 있다가 눈을 떠보면 모든 것이 깔끔하게 원상복구, 제대로 배열돼있었다.


손에서 떨어진 수건은 어느새 사라지고 흐트러진 드라이기와 용품들은 다시 제자리에 항상 정배열된 모습에 길들여지자 내 눈에 안 보이던 것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 좋았던 몇 개월이 지나 다시 동네 피트니스 센터에 다니게 됐는데, 이번엔 바닥에 있는 수건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드라이기를 엉망으로 놔둔 모습이 거슬리기 시작했다.


중국 동포가 많이 들어와 살고 있는 서울의 어느 동네를 72시간 동안 찍은 다큐멘터리를 보니 거리에 쓰레기가 많이 버려져 있었다. 외부인 빼고는 아무도 지저분하다고 여기지 않았을까. 그런데 한국에서 오래 사신 동포 어르신들을 중심으로 거리를 청소하기 시작하자 조금씩 깨끗이 변하는 모습이 아름답게 담겨있었다.


한국에서 오래 사신 어르신 눈엔 보이는 게 있었던 것이다. 미국으로 이민을 가기 시작한 초창기 우리네 모습도 그랬다고 한다. 도산 안창호 선생님의 청소에 관한 일화도 이와 비슷한 환경에서 일어난 일이 아니겠는가. 선생은 샌프란시스코에서 가정 고용인으로 청소를 하면서 생계를 꾸렸는데, 일을 얼마나 열심히 했는지 "당신은 어느 나라 사람입니까. 당신은 청소부가 아니라 신사입니다"라며 약속보다 많은 돈을 받았다.

청소는 신성한 노동의 시작점이다. 하고 나서 후회가 되기는커녕 바로 행복을 느낄 수 있는 행동이다. 청소는 과학이 실생활에 적용되는 것을 직접 경험할 수 있는 기회다. 묵은 때를 화학작용으로 해결하고, 정전기로 바닥에 있는 먼지와 머리카락을 처리한다.


특히 공기역학으로 새로워진 무선 진공청소기의 위력에 재미를 붙여본다. 깔끔떠는 싱글 남자 연예인들이 무선청소기로 청소하는 모습이 TV에 방영되면서 젊은 남편들이 비싼 무선청소기를 사고, 청소에 참여하는 이도 많이 늘었다고한다. 재미있기 때문이다.


그 재미를 아버님들께 선물하면 어떨까. 부모님 세대는 근대화와 산업화로 우리의 현재를 풍요롭게 일궈놓으셨지만, 청소 등 집안일들을 하찮게 여기고 담을 쌓은 분들이 많다. 나도 학교 다닐 때는 공부를 핑계로, 직장에 들어와서는 일에 바빠서 청소는 오롯이 엄마의 일이었다. 아버지에 이어 나도 열심히 살아왔다고 자부해왔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나는 욕심으로 특정 부분에만 열중하며 살아온 것이다. 어머니야말로 사랑으로 열심히 살아오신 것을, 이제서야 깨닿게 된다. 특히 청소할 때마다 엄마의 사랑을 느낀다. 그런데 그 사랑으로 청소해온 엄마들의 시간은 과학 중에서도 오로지 물리의 힘만 적용되는 고통의 시간이었을 것이다.


은퇴를 하고 심심해하는 아버님들께 무선청소기로 청소의 재미를 알려드리면 어떨까. 청소가 하찮은 일이 아니라 신성하고 재밌다는 것을. 그리고 무엇보다 엄마의 사랑을 느껴보시라고. 지난 겨울에 아버님 댁에 보일러를 놓아드렸다면, 이젠 무선 청소기를 놓아드리자! 청소하는 재미를 선물하자.


서재연 미래에셋대우 갤러리아WM 상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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