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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준영의 도시순례] 글로벌 밸류체인의 변화 그리고 지방쇠퇴

최종수정 2019.12.27 11:59 기사입력 2019.12.27 1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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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 이후 인터넷 등 발전
자급자족식 제한적 생활에서
국가 간 상거래 통한 역할분담
일하는 '방식'의 변화 불러

대규모 투자로 中생산력 커지자
미국 제조업 근로자ㆍ임금 급감
한국도 경쟁력 잃고 기반 축소

지방 '일자리 감소→인구 유출'
예산만 늘려선 악순환 못 멈춰
전세계적 관점 필요한 때

일러스트=이영우 기자 20wo@

일러스트=이영우 기자 20wo@



[최준영의 도시순례] 글로벌 밸류체인의 변화 그리고 지방쇠퇴

1990년대 우리나라의 대기업들은 해외로 본격적인 진출을 시작했다. 당시 뉴스를 통해 지켜보던 해외공장 준공식에는 빠짐없이 해당 국가의 대통령, 수상 또는 국왕이 참석했다. 모두들 투자에 감사하며, 일자리가 새롭게 만들어질 것이라는 내용의 축사를 했다. 그런 뉴스를 보면서 "'일자리'가 그렇게 없을까?"라는 생각을 하곤 했다. 1990년대 초반 호황을 구가하던 대한민국의 20대 청년으로서는 당연히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이후 30년의 시간이 지나면서 대한민국의 최대 화두는 일자리가 됐다. 과거에 상상하지 못한 규모의 예산을 투입하고, 각종 제도를 통해 더 많은 일자리를 만들어내기 노력하지만 성과는 기대에 못 미치고 있다. 그나마 만들어지는 일자리는 대부분 단기간 노동을 전제로 하는 불안정한 경우가 많다. 사람들이 당연하게 생각해왔던 오랫동안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는 자리는 점점 찾아보기 어렵게 돼가고 있다. 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에 입사해 꾸준히 근무하면서 적절한 부를 축적해 결혼과 자산을 확보하는 모습은 과거가 됐다.


특히 지역적으로 서울과 수도권 지역을 제외한 많은 지역들은 괜찮은 일자리의 감소, 그리고 이로 인한 인력의 유출이 반복되는 악순환을 거듭하고 있다. 왜 이런 현상이 생겨났을까. 높아지는 임금, 경직된 고용구조, 증가하는 저임의 외국인 등 여러 가지 이유들이 꼽히고 있지만 실제 원인은 더 멀리, 더 높은 곳에 있다.


오랫동안 사람들은 자급자족적인 생활을 해왔으며, 상거래는 일반적인 현상이 아니었다. 국가 간 무역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던 과거에는 생산과 소비가 한 공간에서 이루어졌다. 이러한 구조는 19세기 들어 본격화된 산업혁명과 제국주의 흐름에 따라 변화됐으며, 2차 세계대전 이후 국제교역이 대폭적으로 증가하면서 본질적으로 변화했다.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은 제조업을, 중동, 남아메리카 등은 농산품 및 각종 원자재 등을 공급하는 구조였다. 컨테이너선을 비롯한 운송수단의 발달에 따라 과거에 비해 대폭 하락한 운송비는 이제 한 국가라는 제한된 공간에서 묶여있던 생산ㆍ소비 구조를 지구적으로 점차 확대시키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 시기까지의 교역품목이나 목적은 어디까지나 '최종재를 소비를 목적으로 교환'하는 데 있었다. 공간의 범위가 넓어졌을 뿐이지 근본적인 흐름은 과거와 동일했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 인터넷으로 대표되는 정보통신기술의 발전은 많은 것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켰고, 그것은 '일하는 방식'의 변화였다.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간의 물리적 거리로 인한 원활하지 못한 의사소통이 원활해지면서 더 이상 제조업은 특정 국가에 고정된 존재가 아닌 것으로 변모하기 시작했다. 선진국은 디자인, 연구개발(R&D), 마케팅 등 서비스 관련 업무를 담당하고 개도국은 조립, 중간 부품조달 등의 역할을 담당했다. 이런 구조 속에서 선진국ㆍ개도국뿐만 아니라 개도국 간에도 세분화된 역할분담이 발생했는데 유형의 부품과 재료들을 모아서 조립해야 하기 때문에 이런 현상은 지리적으로 인접한 국가 간에 발생했다. 이런 과정을 통해 가장 큰 이득을 누린 국가들은 최종 조립 역할을 담당한 중국, 그리고 중국에 중간재 소재와 부품들을 공급한 대한민국이었다. 우리는 단순하게 '수출이 과거에 비해 많이 늘었다'고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전 지구적으로 벌어진 거대한 변화의 물결을 잘 올라탔던 것이다.

중국은 1986년 관세무역일반협정(GATT) 재가입을 신청했으며, 2001년 12월 정식 세계무역기구(WTO) 회원국이 됐다. 대규모 외국인직접투자(FDI)의 유입과 국내 저축을 통한 최대 국내총생산(GDP) 대비 48%에 이르렀던 중국정부의 대규모 투자를 통해 중국은 엄청난 생산력을 확보하게 됐고 세계의 공장이 돼갔다. 초기에 단순반복 조립에 치했던 중국은 외국기업의 진출이 급속히 확대되면서 2000년대 들어 점차 고도화ㆍ복잡화된 산업과 생산구조로 전환되기 시작했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2010년을 전후해 선진국은 중국쇼크를 겪기 시작했다. 1980년 1950만명에 이르던 미국의 제조업 근로자 수는 2019년 1300만명으로 25% 이상 감소했다. 과거 비교적 낮은 생산성에도 괜찮은 수준의 임금을 받을 수 있던 자동차ㆍ전자 부문의 제조업들이 해외로 이전하면서 이들 분야의 일자리는 급속히 감소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줄어든 일자리는 단순히 '양'의 문제뿐만 아니라 양호한 일자리의 감소라는 질적인 문제를 동시에 가져왔다.


대한민국은 이러한 상황 속에서 오랫동안 숨겨진 승자로서 역할을 해왔다. 1980년대까지는 선진국시장에 대한 직접적인 상품수출의 거점으로서, 1990년대 이후부터는 중국을 통해 최종조립 부문을 이양함으로서 대규모의 중간재 수요처를 확보하고 비용 및 질적 측면에서 국제시장에서의 한 단계 높은 경쟁력을 갖추게 됐다. 국내적으로 보면 이 시기를 전후해 서해안 지역이 본격적으로 대중국 수출 거점으로 자리 잡게 됐으며, 포항에서부터 여수에 이르는 남해안 지역의 전통적인 산업단지들 역시 안정적인 성장을 거듭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점차 중국이 성장하면서 이러한 분업구조는 다시 변화를 겪게 됐다. 일정 수준 이상의 기술력 및 대규모 자본투자가 필요한 부문을 제외한 나머지 분야의 중간재들은 중국이 자체적으로 생산하게 되면서 경쟁력을 잃게 됐다. 기술적 측면에서의 차별성이 약화되면서 그동안 용인됐던 높은 수준의 임금은 지속될 수 없었으며, 이에 따라 기업들은 다시 한번 눈을 해외로 돌리게 됐고, 중국보다 임금 수준이 낮은 베트남을 비롯한 동남아시아로 이전하게 됐다. 이 과정에서 국내 제조업 기반은 지속적으로 축소됐으며, 그동안 제조업이 책임지고 있던 양호한 일자리는 급속히 사라지게 됐다.


우리 사회가 현재 겪고 있는 서울과 수도권 집중, 그리고 지방의 쇠퇴는 단순한 수도권 성장에 따른 부작용이 아닌 수십 년 동안 지속되고 있는 전 세계적인 생산구조의 변화로 인한 결과물이다. 이러한 상황을 정확하게 인식하지 못하고 수도권에 대한 억제를 강화하고, 지방에 대한 정부 예산투입을 늘린다고 해서 일자리 창출과 인력의 유입이라는 선순환 구조가 형성될 수는 없는 것이다. 당장 눈앞의 문제 해결을 위해서 더 크고 더 멀리 볼 수 있는 관점이 필요한 순간이 찾아오고 있다.


법무법인 율촌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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