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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경영] 일제는 정말 기름이 없어서 패망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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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일본 영화 '남자들의 야마토(男たちの大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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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름이 없다(油がないんだ)"


1941년 진주만 공습 이후부터 일본 해군을 지휘했던 야마모토 이소로쿠(山本五十六) 사령관은 일제가 패망한 원인을 이 한마디로 압축한 바 있다. 이 말은 그가 1943년 과달카날에서 패배를 인정하고 철수 명령을 내렸을 때, 수하들이 결전을 주장하며 항명하자 직접 한 말로 알려져 있으며 오랜기간 회자됐다.

기름이 없다는 말은 전후 일본은 물론 우리나라에도 전해졌고, 일제 패망 이유는 결국 자원부족 문제 때문이라는 단순한 논리를 만들어냈다. 하지만 실제 전황을 들여다보면, 일제가 단순히 석유가 부족해서 패망한 것은 아님을 알 수 있다. 일제는 전쟁 당시 2년치의 비축유를 저장했고, 1942년까지 동남아시아의 주요 석유생산 지역이었던 네덜란드령 동인도, 인도차이나 반도, 말레이반도 유전들을 별 피해없이 점령했다. 적어도 아시아 지역에선 미군보다 석유 자원량에서 월등히 앞섰다.


그런데도 전선이 확대된 1942년부터 일본군은 만성적인 기름 부족에 시달리게 됐다. 석유자원 확보에만 열을 올리느라 정작 어떻게 수송할지 전혀 생각하지 않았던 탓이다. 당시 일제가 보유한 유조선은 다 합쳐 고작 100척 정도로 하루 48만톤(t)을 겨우 수송할 수 있었다. 전쟁 전까지 석유는 물론 유조선까지 대부분 미국 민간업체들에 의존했기 때문이다. 48만t은 당시 일본 해군 입장에서 턱없이 모자란 양이었다. 사령관이 탄 기함인 야마토(大和) 1척이 일본에서 동남아 전선까지 항해하면서 들어간 기름만 60만t이 넘었다.


일본 해군에선 이미 전쟁 전부터 유조선 부족 문제를 제기했지만 군 수뇌부는 동남아 유전들만 점령하면 석유문제는 다 해결된다고 결론을 내버렸고, 모든 문제 제기는 항명이라고 쏘아붙였다. 석유가 아무리 많아도 가져오지 못하면 아무소용이 없다는, 초등학생도 생각할법한 단순한 문제를 대충 뭉개버린 결과는 너무나 참혹했다.

결국 "기름이 없다"는 말은 기업이든 국가든, 경제정책이든 외교정책이든 간에 과도하게 한가지 목표에만 매몰됐을 때 얼마나 위험한지 보여주는 사례로 남았다. 현실성을 고려치 않고 일단 목표만 달성하기 위해 다른 모든 것을 희생시킬 정도로 시야가 좁아지면, 정작 가장 단순하고도 중요한 것을 잊어버릴 수 있다는 교훈을 남긴 셈이다.




이현우 기자 knos8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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