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r_progress

아시아경제 최신 기획이슈

[전쟁과 경영] 잘못 알려진 '조총' 신화

최종수정 2019.11.05 06:30 기사입력 2019.11.05 06:30

댓글쓰기

(사진=강화전쟁박물관)

(사진=강화전쟁박물관)



임진왜란을 배경으로 한 사극이나 영화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소품이 '조총(鳥銃)'이다. 조선군은 조총이란 신무기에 놀라 제대로 싸우지도 않고 도망쳐 연전연패했다는 것이 조선시대 이후 현재까지 내려오는 조총에 대한 신화다. 이 신화는 개항기까지 이어져 서구로부터 신기술을 빨리 받아들인 일본은 이겼고, 그렇지 못한 우리는 졌다는 기술만능주의와도 연결된다.


하지만 실제 임진왜란을 들여다보면, 왜군은 조총이란 신기술 때문에 이긴 것이 아님을 금새 알 수 있다. 왜군이 첫 당도한 1592년 음력 4월 중순부터 평양성이 함락되는 음력 6월까지 한반도 지역은 장마기간이었다. 당시 조총과 화약은 습기에 매우 취약했기 때문에 조선군이 연전연패한 전쟁 초기 왜군의 조총 사용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또한 왜군은 조총을 많이 갖고 있지도 못했다. 일본은 당시까지 화약무기 제조기술이 빈약해 대부분 수입에 의존하다 보니 총기 1정에 병사 6년치 봉급일 정도로 엄청나게 비쌌다. 그래서 전체 군 병력의 10% 정도만 조총으로 무장했다. 사실 왜군의 승리는 조총이란 신기술보다는 오랜 전란으로 단련된 병사들의 높은 훈련도와 사기, 그리고 기초 무장이 우수한 글자그대로 '기본기'가 탄탄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사실 임진왜란 초기 조선군은 조총이 없어도 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징병 대상자들은 모두 차명으로 기재돼있었고, 무기고와 군량 수치들도 전부 허위로 조작돼있었다. 일단 전투에 나가 제대로 싸울 병력 자체가 없었던 셈이다. 그럼에도 조선의 위정자들은 전후 적극적인 병력관리나 감사체계를 만들기보다는 자신들의 잘못을 덮어줄 '조총 신화'를 만들어낸다. 군의 고질적 병폐는 아무것도 해결되지 못하고, 조총 생산에만 열중했다. 결국 조선의 조총 보급률은 75% 이상으로 높아졌지만, 군대 관리는 여전히 엉망이었다. 그 결과 임진왜란이 끝나고 불과 30여년만에 조선은 정묘·병자호란이란 수모를 또다시 겪게 된다.


본질적인 체질 개선에는 눈을 감고, 무조건적인 신기술에 대한 숭배와 도입, 눈에 보이는 수치상 성과에만 급급한 모습은 400년전 만의 모습은 아닐 것이다. 신기술 도입 하나가 모든 혁신을 몰고 올 것이라는 안이한 기술만능주의에서 탈피하지 않는다면, 역사의 오류는 계속해서 반복될 수밖에 없다.



이현우 기자 knos84@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간격처리를 위한 cla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