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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나무가 건네온 침묵의 언어, 단풍

최종수정 2019.10.29 12:00 기사입력 2019.10.29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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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나무가 건네온 침묵의 언어, 단풍


바람 서늘해진 산과 들녘에서 나무가 사람에게 말을 걸어왔다. 단풍이 절정을 이뤘다. 지난 계절 내내 온통 초록이던 나뭇잎에 오른 단풍은 침묵으로 건네오는 나무의 언어다. 붉은 빛에서 갈색과 노란 빛까지 무한대로 다양한 이 계절 나뭇잎의 빛깔을 온전히 묘사하기란 불가능하다. 나무의 하고한 생명 이야기가 더 없이 풍성하다. 사람들 발길도 따라서 분주해졌다. 단풍 든 나무와 숲으로 향하는 모든 도로는 속도를 잃고, 그 길에 먼 산의 단풍 풍경이 들어선다.


단풍은 나무가 생명을 걸고 다가오는 혹한의 계절을 채비하는 생존 전략이다. 사람의 눈에 들기 위한 빛깔이 아니다. 모든 생명이 갈무리에 나서는 계절, 나무는 봄부터 가을까지 수굿이 여투어온 생명의 양식을 아낌없이 내어준다. 그리고 이제 목숨 걸고 겨울을 채비할 차례다.


시간이 많지 않다. 엄동의 추위를 들녘에 홀로 선 채 살아남기 위해 나무는 우선 광합성을 중단해야 한다. 광합성을 위해 물을 끌어올리다가는 여리고 가는 수관이 얼어 터지고, 급기야 생명까지 잃게 된다. 생명을 부지할 최소량의 수분만 남겨두고 빙점에 이르기 전 제 몸 안에 든 물을 덜어내야 한다. 겨울 채비에 한 점의 허점이라도 남기면 다음 계절을 맞이하는 건 글러먹은 일이 되고 만다.


물이 없어 광합성을 할 수 없게 된 초록빛 엽록소는 힘을 잃고 스러진다. 마침내 엽록소에게 햇살을 양보했던 다른 빛깔들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안토시아닌이 많으면 붉게, 카로틴이면 노랗게, 탄닌이라면 갈색이 짙어진다. 나무 종류마다 머금은 성분이 서로 달라 단풍 빛깔은 한없이 다양하다. 어찌 됐든 초록과의 대비는 드라마틱하다. 초월적인 아름다움이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나무는 단풍 든 잎을 내려놓아야 한다. 나뭇잎은 나무 발치에 떨어져 묵묵히 썩는다. 새로운 세대의 양분이 되기 위해 기꺼이 흙이 되어 사라진다.

나무는 미래에 말하는 방법을 가장 잘 아는 생명체다. 결국 완벽한 단풍은 다가올 봄을 그려내는 나무의 예언이다. 나무는 다시 이 가을의 단풍 빛깔을 통해 수억 년의 장래를 내다본 생명의 지혜를 들려준다. 사람의 곁에서 사람보다 먼저, 사람보다 오래 수억 년에 걸쳐 간단없이 이어온 가을 나무의 생명 활동이다. 나무는 말하지 않으면서 더 많은 말을 하고, 움직이지 않으면서 더 많은 사람들에게 위안과 치유의 존재로 살아남는다. 하늘을 떠받칠 만큼 높이 솟아오른 그의 융융한 몸 안에는 그래서 사람이 가름하기 어려울 만큼의 찬란한 생명의 언어가 웅숭깊이 쌓인다.


그러나 나무와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을엔 껍데기뿐인 말들이 미치광이 춤을 춘다. 말없이 침묵으로 살아가는 나무와 극단적으로 다르다. 잔혹한 언어들은 표현을 바꿔가며 갈수록 극단으로만 치닫는다. 생명의 치열함이나 진정성은 찾아보기 어렵다.


지금은 나무가 가늠할 수 없을 만큼 풍요로운 빛깔로 보여주는 단풍의 계절이다. 단풍 든 숲에 다가가 온갖 빛깔로 생명의 지혜를 전하는 나무의 이야기 앞에 가만히 서 있어야 할 때다. 이 땅에 정의와 평화를 회복하기 위한 진정한 걸음이 되리라.

극언과 언어유희를 내려놓고, 침묵으로 전해오는 나무의 생명 이야기에 다시 귀 기울여야 하는 까닭이다.


고규홍 나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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