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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칼럼] 공영방송의 품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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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영방송의 품위'.

제목부터 참 고리타분하다. 인터넷 세대들에게 공영방송이 그리 와닿지 않는 건 사실이고, 품위라는 단어도 재미없기는 마찬가지다. 나는 직업상 세미나나 토론회에 자주 간다. 그런데 공영방송의 역할과 기능, 방송의 공익성 등을 강조하기라도 하면 '지금 시대가 어느 시대인데'라는 따가운 눈초리를 받는 일이 잦아지고 있다. '인터넷 시대에 누가 방송을 보냐' '한물간 지상파'라는 비아냥거림도 들린다. 그러나 나는 우리 사회에서 공영방송이 해야 하는 역할이 여전히 있다고 믿고 나처럼 공영방송을 강조하는 언론학자들이 아직은 꽤 존재한다(존재라는 말이 서글프게 느껴지기는 한다).


공영방송이 존재해야 하는 이유는 다양하겠지만 우선 내용적 측면을 들 수 있다. 공영방송은 공정해야 한다. 공정성이란 학술적으로 정의 내리기도, 실천적으로 달성하기도 어려운 개념이지만 세상에 존재함은 분명하다. 사실 공정성은 상당 부분 정확성으로 달성된다. 따라서 그것이 공정한지는 현장에서 기자들이, 제작진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현실적으로 얼마나 실천하는지의 문제일 뿐이다. 또 공정성은 시청자들이, 국민이 평가할 수 있는 영역이다. 그래서 좋은 방송, 좋은 뉴스가 무엇인가라고 물으면 말로는 설명을 못 하더라도 국민이 머릿속에 떠올릴 수 있는 것이다.

공영방송이 소외계층의 목소리를 담아내는 것도 공정성을 실천하는 방법이다. 노인의 목소리, 장애인의 외침, 성소수자의 요구처럼 주류는 아니지만 우리가 귀담아 들어야 하는 소외된 이들이 있다. 공영방송이야말로 힘없는 소외계층의 목소리를 담아주고 사회에서 함께 살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그래서 정부나 여당 못지않게 야당이나 소수 정당의 목소리도 균형 있게 다뤄야 하는 것이다. 공영방송이 보수 정권에서 진보의 목소리를, 진보 정권에서 보수의 목소리를 어떻게 다루는가가 중요한 이유다.


마지막으로 공영방송의 품위는 프로그램의 품질에서 나온다. 프로그램 품질 평가도 다양한 지수로 이뤄진다. 그러나 그냥 직관적으로 한국 방송 프로그램의 수준은 저 정도이구나 하고 측정할 수 있는 기준이 바로 그 나라의 공영방송이다. 한국 다큐멘터리의 수준, 보도나 뉴스의 품질, 드라마의 표준, 어린이 프로그램의 현재 등등이 공영방송에 담겨 있는 것이다.


지난 9일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산하 방송심의위원회가 'KBS 뉴스9'에 대해 의견진술을 결정했다. 얼마 전 공영방송 KBS가 일본 불매운동 관련 보도를 하면서 일장기에 자유한국당, 조선일보 로고가 있는 그래픽을 방송했기 때문이다. 의견진술은 주로 중징계에 해당하는 경우 결정하기 때문에 앞으로 KBS의 심의제재는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일부에서는 이번 사고가 KBS의 고의가 아니라거나 노출 시간이 1초에 불과하다는 점을 들어 관대하게 보는 것 같다. 정당이 주체가 되어 명예훼손이 남발될 경우 언론의 자유가 지나치게 위축된다는 점 등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나는 공영방송 KBS가 고의로 일본 불매운동 보도에 한국당의 로고를 넣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정치적으로 논란이 될 것을 뻔히 알면서 그런 일을 저지를 방송사는 없다. 게다가 수신료로 운영되는 공영방송이 수신료를 결정하는 국회의 제1야당을 대상으로 일부러 모욕했다고 보기도 어렵다. 그러나 고의보다 슬픈 게 과실이다. 얼마나 제작 단계가 허술하고 빈틈이 많으면 이런 사소한 것을 거르지 못한다는 얘기인가. 다른 방송도 아니고 국가 방송의 기준이 되는 공영방송이다. 1초에 불과하다는 것 역시 변명의 여지가 없다. 다른 방송과 전혀 차별화되지 않는데 그저 공영방송의 필요성만을 강조한다면 그건 고리타분한 거다. 언론의 자유 이전에 공영방송의 품위를 생각해볼 문제다.


윤성옥 경기대 미디어영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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