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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일본과 독일을 비교하는 또 다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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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을 바라보는 우리의 복잡한 감정은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다. '가깝고도 먼 이웃'이라는 이중적 표현엔 일본을 협력보다는 극복의 대상으로 보는 시각이 담겨 있다. "역사는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말한 역사학자 에드워드 카의 이야기가 무색할 정도로 일본은 전범 국가로서 역사를 반성하지 않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 같은 일본의 모습과 독일의 그것은 사뭇 대조적이다. 독일은 과거사에 대한 끊임없는 반성을 하고 있다. 이 맥락에서 질문 하나를 던져보자. 아우슈비츠를 아시는가? 이곳은 아돌프 히틀러 나치 정권이 150만명 정도로 추정되는 유대인을 학살한 역사적 공간이다. 독일의 끊임없는 과거사 청산 작업의 상징적 출발점이기도 하다. 그런데 아우슈비츠는 폴란드에 있다. 그래서 질문 하나를 더 해본다. 다카우(Dachau), 부켄발트(Buchenwald), 작센하우젠(Sachsenhausen)을 아시는가? 아우슈비츠에 비해 생소한 이름인 이곳들은 독일 영토 내에 있으며 20만명 이상의 유대인이 억류돼 있던 대표적 수용소들이다. 각 수용소에서 사망한 사람이 수만 명에 달한다. 옛 모습이 그대로 재현돼 있어 수많은 독일 방문객이 찾는 장소이기도 하다.

독일에는 이 밖에도 4만2500개 정도의 집단 수용소가 나치 정권기에 있었다. 수용소의 성격이 강제노역장이었는지 학살 목적이었는지, 유대인과 다른 외국인들 혹은 전쟁포로의 비율이 얼마였는지, 전쟁 전 혹은 전쟁 중에 만들었는지에 따라 집계 결과는 다르다. 어쨌거나 독일의 자치단체 수가 1만1000개 정도임을 감안하면 자신의 거주지 근처에 최소 1개에서 최대 4개의 나치 정권 수용소가 있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여기에서 우리가 주목할 점은 지금도 끊임없이 어디에 수용소가 있었는지 찾아내고 역사적 실체를 규명하는 데 집중하는 독일의 모습이다. 유대인뿐 아니라 집시와 장애인, 전쟁포로, 강제로 끌고 온 점령국 민간인을 가두고 강제노동을 시키다 끝내 죽음으로 몰아넣은 장소, 그런 수용소를 하나라도 더 찾아내 지역사회에 알리고 학교 교육 내용에 포함시키며 독일을 방문하는 외국인들에게 소개하는 작업이 지금도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독일인에게 주어진 과제가 하나 있다. 수용소 자리를 어렵사리 찾아낸다 해도 실체적 복원은 어렵다는 점이다. 옛 모습을 섣불리 재현했다가는 당시의 참혹한 상황을 단지 가구와 침구, 건물, 작업장 모습 정도로만 보여주게 된다. 가스실을 재현하고 고문기구를 나열해놓아도 방문객에게는 단지 공간이고 도구로 보일 수 있다. 수십 명을 가뒀던 비좁은 방은 그냥 텅 빈 공간일 뿐이다. 홀로코스트를 상징하는 예술 작품의 추상성은 일반인이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다. 당시 수용소 상황과 공간 그리고 억압받고 죽어간 사람들의 모습을 현재의 방문객들에게 생생하게 전달하는 방법을 찾기는 쉽지 않다는 것이다. 그래서 독일인들은 설명한다. 그러면서 끊임없이 또 현장을 찾고 역사를 전달하는 방법을 고민한다.

마지막으로 중요한 모습 하나가 더 있다. 현장을 방문하는 유대인ㆍ폴란드인ㆍ네덜란드인ㆍ프랑스인ㆍ룩셈부르크인ㆍ벨기에인 등은 자신의 역사를 설명하는 독일 안내인으로부터 사과도 함께 받게 된다. 그 안내인은 지역에 살면서 역사를 되새기고 사는 주민이며 자원봉사자들이다. 모든 지역사회에 이런 사람들이 있다. 일본에 가면 역사의 현장에서 우리는 어떤 모습을 볼 수 있으며 어떤 설명을 들을 수 있는가? 일본을 방문하게 된다면 꼭 살펴보고 그들에게 질문해보길 바란다.


정재훈 서울여자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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