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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한일 치킨게임, 국제중재 수용으로 중단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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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반도체 보복과 우리의 맞대응은 이제 '치킨게임' 양상이다. 한쪽이 게임을 중단하지 않으면 마주 보고 달리는 2개의 폭주 차량이 부딪치는 시점은 8월2일이다. 이날 일본 정부는 각의에서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안보상 수출심사 우대국)에서 제외하는 최종 결정을 내릴 전망이다. 그렇게 되면 지금 보복 대상인 3개 반도체ㆍ디스플레이 소재뿐만 아니라 1000개가 넘는 전략물자의 공급선이 무너지게 된다. 일본이 특정 국가를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하는 조치를 하는 것은 역사상 처음이다. 더 이상 한일 관계가 '정상 관계'가 아님을 세상에 확인해주는 꼴이다.


아베 신조 일본 정부는 이미 차량의 브레이크를 없애버렸다고 봐야 한다. 강제징용 배상 판결 집행에 직면한 일본 기업을 보호하고 한일청구권협정의 준수를 확보하기 위해 무역 보복이란 칼을 먼저 빼든 상황에서 성과 없이 칼을 거두는 것은 정치적 자살 행위이기 때문이다.

우리 정부는 아직도 아마추어적인 국내외 여론전과 심리전에 올인하고 있다. 유명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은 미국을 방문해 '아베 정부가 통상 외 문제의 해결 도구로 통상 보복을 활용하는 위험한 선례를 남기고 있다'라고 역설했다. 또 '일본의 조치가 글로벌 공급망을 왜곡하고 동아시아 역내 안보를 위한 한ㆍ미ㆍ일 공조를 약화시킨다'라고도 했다. 한국 정부 대표는 세계무역기구(WTO) 이사회에서 일본을 '동네 꼬마를 괴롭히는 불량배'로까지 묘사했다. 그러고도 국제 여론이 우리 측에 유리한 방향으로 조성되고 있다고 자평해댄다.


총의제로 의사결정을 내리는 WTO 이사회는 무용지물이니 기댈 곳은 미국의 막판 중재뿐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유의미한 중재자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하는 것은 오산이다. 가뜩이나 현 한국 정부가 그동안 북한 핵 문제와 관련해 워싱턴DC와의 교감 없이 독자적 행동을 보여온 데 대한 견제 심리가 쌓여 있다. 미국 측의 화웨이 보복 요청에 대해 우리가 미온적으로 대응한 것도 불만이다. 그런 마당에 한국 정부가 강제징용 배상 판결 및 강제집행 과정을 정치적으로 유도하며 한일청구권협정 체제를 사실상 무력화하고 있는 상황에 대한 강력한 경고가 필요하다고 판단하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워싱턴 측은 일본의 한국 반도체 보복 계획을 사전에 통보받고도 묵인했을 가능성이 크다. 이런 트럼프 정부에 도대체 어떠한 설득 작업이 통하겠는가.


더구나 그 설득의 논리를 보면 순진한 건지, 아마추어적인 건지 이해할 수 없다. 이미 트럼프 정부 자체가 '통상 외 문제의 해결 도구로 통상 보복을 활용하는 위험한 선례'를 남기고 있지 않은가. 또 글로벌 공급망을 왜곡하고 있지 않은가. 결국 동네 꼬마를 괴롭히는 불량배라 지적하며 일본을 비판하는 우리 통상 대표의 논리가 누굴 싸잡아서 비판하는 소리로 들리겠는가. 문제의 원인인 강제징용 배상 판결 및 집행 이슈에 대해서는 아무런 이야기도 하지 않으면서 말이다.

한일청구권협정 자체가 문제 해결의 방식을 예정하고 있다. 객관적인 국제중재패널 구성을 통해 청구권협정의 해석에 관한 분쟁을 구속적으로 해결하기로 말이다. 바로 오늘날과 같은 사태가 발생할 경우에 대비해서 그렇게 한 것인데 이조차 거부하는 한국 정부의 행태는 국제적으로 비이성적 일탈로 여겨질 뿐이다. 청구권협정상의 중재는 거부하면서 미국에 의한 중재를 요청하는 것은 난센스다. 유엔(UN) 회원국으로서의 기본 의무인 조약 의무조차 인정하지 않고 있는 정부가 이를 응징하기 위해 국제법 위반 여부가 불분명한 형태로 무역 보복을 가하고 있는 또 다른 정부에 대해 벌이는 국제 여론전의 결말은 비관적일 수밖에 없다.


정부는 지금이라도 현실과 한계를 받아들이고 '최소한 국제 중재에 문제를 회부하는 대가로 무역 보복을 중단하자'라는 내용의 진지한 협상을 시도해야 마땅하다. 치킨게임의 파국을 즐기는 무책임한 '사이비 정부'가 아니라면 말이다.


최원목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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