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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비비] 日 경제보복, 사명대사처럼 대처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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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는 어느 산에 이름 없는 새이기에 감히 봉황이 노는 무리 속에 찾아왔느냐".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먼저 포문을 연다.


조롱하듯 도발하는 쇼군에 맞서 큰스님 사명대사는 즉석에서 붓을 잡고 시문을 써내려간다. "나는 본래 청산에 학이어서 항상 오색찬란한 구름 위에 놀았는데 하루아침에 구름과 이슬이 사라져서 한낱 들새의 무리 속으로 잘못 떨어지고 말았구나."

때는 1604년. 선조 임금은 일본과 강화를 위한 사신으로 사명대사를 임명했다. 그해 8월 1000명이 넘는 수행원과 함께 일본으로 건너간 사명대사는 도쿠가와를 만나 8개월 동안 능숙한 외교 활동을 펼친 끝에 잡혀간 3500명의 동포를 데리고 귀국하였다.


당시 사명대사와 도쿠가와의 첫 만남 문답은 역사가 전해오듯이 종전 이후 협상이 결코 녹록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임진왜란을 닦달한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죽고 전쟁이 끝나자 도쿠가와가 먼저 강화를 요청해 사명대사 일행이 찾아온 건 맞지만 양국 대립은 매 순간 일촉즉발이었다. 불구대천 적의 아가리 앞에 선 절체절명 위기에서 사명대사는 대립과 충돌이 아닌 선린 우호에 입각한 교린을 요구했다. '구름은 푸른 하늘에 있고 물은 병 속에 있으니 저마다 있어야 할 곳에 있으면서 상처를 치유해야 한다'며 일본인들 역시 전쟁의 또 다른 피해자임을 일깨웠다. 오랜 내전과 침략 전쟁은 가지 말아야 할 곳을 넘어선 공멸의 길임을 역설했다.


도쿠가와에 이어 제2대 쇼군이 된 도쿠가와 히데타다는 이러한 사명대사 가르침에 크게 감복해 일본의 해외 진출을 강력하게 통제했다. 그후 일본이 메이지유신을 발발하기까지 약 250년 동안 동아시아의 선한 모범생으로 지낸 것에는 일찍이 사명대사의 평화 사상이 주효했다.

그랬던 일본이 이제 와서 그 수두룩한 죄과들을 잊고 인과응보라는 사명대사의 가르침을 저버리고 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를 보면 임진왜란을 일으킨 도요토미가 부리나케 오버랩된다. "도요토미가 살생을 좋아해 사람들이 보고 들어 그를 두려워했다"는 왜승들의 말을 듣고 사명대사가 지어 보인 인과응보의 지엄한 가르침을 기어이 욕보이는 21세기 동아시아 싸움꾼 요괴 캐릭터로 환생한 게 아닌가 할 정도다.


그러니 일본이 경제전쟁으로 포고했고 아닌 밤중에 일격을 당한 한국이 궁지에 내몰린 작금의 상황은 분명 제2의 임진왜란인 것이 맞다. 선린 우호와 교린, 평화 따위는 휴지통에 쑤셔 버리고 분단된 한반도 남북한을 양 갈래로 찔러가며 행패를 부리고 있는 비뚤어진 골목대장 문제아로서 일본 이미지가 돌변하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일본이 잠가 버린 반도체 공정 필수품 고순도 불화수소(에칭가스) 대안처 확보에 나서고 있지만 안정적인 공급사슬관리(SCM) 체계는 이미 망가져버렸다. 점입가경으로 일본 정부가 안보상 우호국가인 화이트 리스트 대상 27개국에서 한국을 제외하는 추가 경제보복을 기정사실화했다는 비보까지 날아들었다. 삼성만 해도 TV, 스마트폰 제품까지 대대적인 타격을 받을 수 있다고 전한다.


흡사 왜군이 부산진성을 함락하고 이내 동래성까지 도륙한 1592년 임진왜란 초기 전황과도 같은 확전이 시작된 마냥 온통 어질어질하다. 국치가 되풀이될지도 모르는 이 찰나에 문득 사명대사 콘텐츠를 부적처럼 꺼내들고 싶다. 그가 법어로 전한 평화와 선린 우호는 당시 조정의 육식자들(말만 앞세우는 벼슬아치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승병을 일으켜 불가에서 금한 살육까지 감행하면서까지 고귀한 평화를 지키려 했다. 침략자가 제 핏줄과 산천을 유린할 때 힘으로 맞서 싸워 물리치는 기개와 용기, 지략으로 초인적인 힘을 다해 우위를 점해놓고 적장을 갈아 채운 다음에야 비로소 협상에 임했다.


새 인물 도쿠가와와 담판도 조선에는 이미 떼어 놓은 당상이었다. 슈퍼 히어로 사명대사를 열렬히 지지하고 사모하는 든든한 백성들의 위력으로 성공할 수밖에 없는 외교였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가 빼닮아야 할 전법 모델도 구비돼있지 않겠는가? 다음과 같이.


1594년 임진왜란 2년 후 금강산에 들이닥친 일본 지휘관 가토 기요마사가 칼끝으로 위협하며 묻는다. "조선에 어떤 보배가 있는가?" 사명대사가 답하기를 "우리나라에선 당신의 머리를 보배로 여기고 있다. 그러니 보배는 일본에 있다".


잘만하면 2020년 도쿄 올림픽도, 욘사마 뵨사마, K팝으로 휘어잡아 쌓아 놓은 한류도 이 난국을 타개할 진귀한 보배가 될 수 있다. 보배 타령을 하니 보배로 제압하는 대책이다.


심상민 성신여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 한국문화경제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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