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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말'을 정략적 도구로 사용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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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창조의 서사적 설명에 의하면,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말리의 창조설화에서도 우주 창생의 힘을 '말'에서 찾는다. 이른바 말은 베틀의 도르래와 북새통 소리 안에 들어 있고, 그것은 실(絲)로 교직되어 천의 빈틈을 채운다. 여기서 창조는 말의 교직(交織) 과정이다. 결국 말은 우주를 창조하고 또한 인간세계를 창조한다.


무릇 우리는 언어라는 창을 통해 비로소 자연과 사물을 만날 수 있다. 이를테면 말과 글로서의 언어는 빛으로서 어둠 속에 있는 이름 없는 모든 만물을 호명(呼名)한다. 이로써 언어는 해, 달, 별, 새, 숲, 샘물, 구름, 바람을 낳는다. 이렇게 우리는 신성한 말을 통해서 자연을 넘어 문화의 세계를 창조하며 인간적인 삶을 영위한다.

그러나 오늘날 말은 그 창조적 힘을 거세당하고 '정략적 도구'로 오용되고, 남용되고, 탈구(脫臼)된다. 도처에서 팩트를 속이고 은폐하는 정치적 수사, 막말, 실언, 망언, 독설, 거짓 증언이 난무한다. 특히 여야와 진보ㆍ보수를 가리지 않는 정치인들의 막말과 '증오 언설(言說)'은 사회갈등과 정치혐오를 조장한다. 특히 한국과 미국의 정치지도자들이 미디어를 매개로 하여 말을 통한 증오유발 언행을 정략적 도구로 삼는다고 한다. 이것은 인종, 국가, 남녀, 지역, 세대, 계층 간에 상호적 분노와 증오를 불러일으킨다. 모든 정치인은 "상대에 대한 독한 발언을 할수록 지지율이 올라가는 정치적 효능감에 도취되고 있다"는 정곡을 찌르는 혹자의 비판을 겸허히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최근 안보 불안을 불러온 '북한 목선 사건'과 '2함대 사건'과 관련된 미덥지 못한 말들을 통한 변명 그리고 눈속임 발표를 국민들은 심히 우려한다. 그리고 '일본의 경제보복'에 대한 4차원적 설명, 즉 "지금 무대응이지 무대책은 아니다"는 무책임한 정부 관료의 말은 국민의 공분을 사기에 충분하다. 나아가 책임 전가의 유체이탈적 화법, 블랙코미디 같은 언설과 '허위 자수'를 사주해 당면한 현실을 호도하는 임기응변식 말들! 그것들은 진실에 대한 소박한 열망과 나라의 미래를 걱정하는 국민들에게 이유 있는 공분과 큰 실망감을 안겨준다.


우리는 말을 사용함에 있어서 떠도는 유머처럼 말 놓기, 말 더듬기, 말 바꾸기, 말 뒤집기, 말장난하기, 말꼬리 잡기, 말허리 자르기, 말머리 돌리기, 말 뱅뱅 돌리기를 멈춰야 한다. 결코 말은 우리의 소유, 지배, 조작의 대상이나 정략적 도구가 아니다. 모름지기 말은 우리의 도구가 아니라, 우리가 말의 도구인 셈이다. 말이 정략적 도구로 전락될 때 건강한 정치적 공동체는 이 땅에 새싹을 틔우기가 어렵다. 대중적 인기나 포퓰리즘에 기대는 정치적 언설(言舌)은 대증요법일 수 있다. 그러나 현실문제의 근원적 치료와는 거리가 멀고, 도리어 국민의 정신적 공중보건에 해악이 된다. 모름지기 말은 '약과 독'일 수 있기에, 그 위험성과 위력을 동시에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19세기의 정치개혁가 새뮤얼 스마일스는 "생각을 조심하라, 말이 된다. 말을 조심하라, 행동이 된다"고 하면서 정치에 있어서 '말의 중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그 사람의 됨됨이는 언어사용의 품격에서 드러난다. 거짓되고 악하고 추악한 말은 세상을 오염시키고 악취를 풍겨 반감과 증오를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참되고 선하고 아름다운 말은 공감을 불러오는 시가 되고 노래가 된다. 그래서 '인격(人格)은 언격(言格)'인 것이다. 언격을 갖춘 정치인들과 관료들의 시대가 속히 오기를 선량한 국민들은 애타게 기다린다.


강학순 안양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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