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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오늘]드레퓌스의 벤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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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진석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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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1년, 한 사나이가 파리 몽마르트르에서 포주를 살해한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프랑스령 기아나로 끌려간다. 사나이의 이름은 앙리 샤리에르. 그는 죄수를 태우는 배에 오른 순간부터 탈출을 결심한다. 1934년에 시작된 그의 탈출과 좌절은 이후 11년 간 여덟 차례나 거듭된다. 탈출에 실패할 때마다 그는 더욱 가혹한 형벌을 받았다. 샤리에르는 1941년, 수용자들의 무덤이라는 디아블(악마의 섬)에서 코코넛을 가득 담은 부대를 안고 바다로 뛰어든다. 그의 나이 서른여섯. 그는 1944년 베네수엘라에 정착함으로써 마침내 자유를 얻었다.


샤리에르는 1968년 자신의 체험을 기록한 '빠삐용(Papillon)'을 출간했다. 책은 여러 언어로 번역되어 '불굴의 자유혼'을 상징하게 된다. 1973년, 프랭클린 제임스 샤프너가 같은 제목으로 영화를 만들었다. 하이라이트는 절벽 탈출 장면이다. 빠삐용은 숱한 고초를 겪는 동안 머리가 백발이 되고 이도 모두 상했다. 고문을 받다 뼈를 다쳐 걸음도 절룩거린다. 그래도 꺾이지 않는다. 얼마나 남았을지 알 수 없는 인생을 체념하여 절해고도에서 끝낼 수는 없는 것이다. 바위더미에 걸터앉아 바다를, 그리고 자신의 삶을 바라본다. 그리고 날마다 절벽으로 나가 코코넛 열매를 바다에 던져 해류의 흐름을 살핀다.

빠삐용이 걸터앉은 그 바위더미는 '드레퓌스의 벤치'다. 알프레드 드레퓌스. 1859년 10월 9일 알자스에서 태어나 1935년 오늘 세상을 떠난 프랑스 육군의 장교다. 역사는 '드레퓌스 사건'으로 그를 기억한다. 드레퓌스는 포병 대위로 근무하던 1894년 독일에 군사 기밀을 넘긴 혐의로 체포되어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1896년에 진범이 밝혀졌지만 석방되지 않았고, 1899년 재심에서도 유죄 판결을 받았다. 무고한 그의 고초는 프랑스의 양심을 움직였다. 에밀 졸라는 '나는 고발한다'라는 탄핵문을 남겼다. 드레퓌스는 대통령 특사를 받고 1906년에야 복권되었다. 그의 무덤은 파리의 몽파르나스에 있다. 디아블 시절 그의 생활을 알 수 있는 기록이 전한다.


"오전 5시30분에 일어나 말린 채소를 삶아 아침식사를 했다. 오전 아홉시에 다시 삶은 채소를 먹고 채소 삶은 물을 차 대신 마셨다. 그리고 거처를 청소하고 장작을 패고 빨래를 했다. 일기와 아내 루시에게 보내는 편지를 썼다. 정오가 되면 섬을 한 바퀴 돌고 나머지 시간에는 벤치에 앉아 망망대해를 바라보았다…."


드레퓌스의 이미지는 예술가들의 영감에 불을 댕겼다. 시인 구상(具常)은 '드레퓌스의 벤치에서'를 남겼다. 시는 영화 속 빠삐용의 벗, 탈출을 단념하고 디아블에 남은 드가의 독백 형식으로 이어진다. 그 절창이 마음에 살이 되어 꽂힌다. 림보(Limbo) 또는 회색의 공간.

"…이 세상은 어디를 가나 감옥이고 모든 인간은 너나없이 도형인임을 나는 깨달았단 말일세. (중략) 빠삐용! 그래서 자네가 찾아서 떠나는 자유도 나에게는 속박으로 보이는 걸세. 이 세상에는 보이거나 보이지 않거나 창살과 쇠사슬이 없는 땅은 없고 오직 좁으나 넓으나 그 우리 속을 자신의 삶의 영토로 삼고 여러 모상의 밧줄을 자신의 연모로 변절시킨 자유만이 있단 말일세…."


huhb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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