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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칼럼] 일자리보다는 일거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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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독한 취업난이다. 그런데 그리 어렵게 바늘구멍을 통과한 청년들도 별로 오래 다니지 않는단다. 취준생 때 생각했던 일자리가 아니었을 것이다. 의미 있는 자리는 점점 줄어들고 있고, 그나마 다 어른들이 버티고 있다.


자리가 줄어드는 이유는 산업마다 근본적인 구조변화가 일어나고 있어서다. 혁신이라는 성장의 공급원이 변하고 있다. 기성세대의 면접 없이도 누구라도 유튜브에서 끼를 발휘한다. 앱스토어에서 외화를 벌기도 하고, 블로그와 소셜미디어 마케팅은 매체광고보다 낫다. 메이커 운동에서 크라우드펀딩까지 제조업의 아이디어마저 시장과 커뮤니티에서 구체화되고, 오픈소스 활동은 훌륭한 이력이다. 게다가 글로벌이다. 예전 같다면 조직에서 자리 잡지 못하면 혹은 높은 자리의 누군가가 낙점해주지 않으면 꿈도 못 꿀 일들이다. 가치를 세계시장에 내놓는 비용과 절차가 단순해지는 이노베이션의 민주화다.

세상이 이렇다 보니 일거리는 늘어도 조직 내 일자리는 늘지 않는다. 대신 내 인생에 콘텐츠만 있다면 내 한 몸은 먹고 살 수 있는 시대 또한 오고 있다. 그런데 그런 시대를 오게 할지는 우리의 선택이다. 지금처럼 모두가 대기업 정직원이라는 자리를 잡아야만 한다고 생각한다면, 그리고 왜인지는 알 수 없으나 제품과 서비스와 아이디어로 세상을 바꾸려는 이들보다 한 자리 차지한 이들의 목소리가 크다면, 모두들 일단 입학만 하면, 취직만 하면 직함과 감투를 쓰기만 하면, 그러니까 한 자리 잡기만 하면 그렇게 고착된 신분으로 영원하리라 믿는다면 열리지 않을 시대다.


특히나 우리에게는 낯선 시대다. 취직 아니면 실직이라는 이분법의 상식 아래에서 일이란 곧 일자리였다. 명함에 박힌 일자리는 곧 나의 존재였다. 나의 미래를 지금의 일자리가 규정하게 하지 않고 다양한 일거리를 조합해가며 적극적으로 인생을 개척해가는 삶이 아직은 두렵다. 사회적 안전망을 정부나 사회가 아닌 기업에 의지해온 나라이기에, 회사 밖은 지옥으로 보이고 정말 지옥이기도 하다. 자리 잡은 이와 그렇지 못한 이의 신분은 그렇게 달라진다.


일자리는 줄어들되 일거리는 늘어나는 미래. 하지만 혼돈의 미래는 자리에 편히 앉아 있는 이에게는 거북하다. 양질의 일자리가 파괴되고 파편화된 '쪽일'이 대체하는 것 같다. 플랫폼 경제 따위 노동법을 우회해서 돈 버는 일 같다. 그럴 수도 있다. 그렇다면 모두가 노력만 하면 한 자리씩 차지할 수 있다는 명백한 헛말 대신 쪽일을 모아 꿈을 꾸려는 이들을 위한 새로운 노동법과 안전망과 사회계약이 시급하다.

통계적으로도 부업과 프리랜서의 증가는 세계적 현상이다. 잠깐 해보고 싶어서, 용돈이 더 궁해서, 아니면 그냥 궁금해서 일을 더 하거나 낯선 일을 찾는다. 자리와 달리 일거리에는 귀천이 없다. 우연한 쪽일에서 라이프워크를 찾을지도 모르고, 내 사업이 되어 고용을 하기도 한다. 경제의 활력도 새로운 직업도 이 순환이 만든다.


비정규직 문제에서 갑질에 이르기까지 신분제 자본주의의 폐해가 크다. 자리의 특권에 점유된 자원이 일거리로도 흘러야 하건만, 현실은 모두가 양반이 되고 싶어하는 사회. 양반이 무의미해지는 신세계가 곧 개벽할 것이라 말해야 할 때에, 허상의 일자리를 좇지 말고 양질의 일거리를 함께 만들어보자고 해도 모자를 판에, 정치인은 자기 아들 대기업 들어간 것을 자랑이라 설교하고 있다. 부가가치의 원천은 인적자본이 만드는 콘텐츠이지 그 자리가 아닌데, 그저 높은 자리에 있다고 사람들이 관심을 주니 반복되는 악순환이다.


김국현 에디토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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