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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무이야기] 손흥민은 세법상 축구선수인가 축구왕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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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세무 행정에서 '왕(王) 시리즈'가 유행한 적이 있다. 선박왕, 완구왕, 구리왕 등이 바로 그것이다. 이런 왕들의 공통점은 해외에서 빈손으로 출발해 자수성가한 그 분야의 입지전적인 인물이라는 점이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과세 관청에서 '역외탈루세금 1조원 확보' 작전이 시행됐고, 이들은 하루아침에 탈세 혐의자로 몰려 곤욕을 치렀다. 세법상 국내 거주자인데 비거주자라고 속였다는 것이다. 소송이 뒤따랐고 일부는 국가가 패소했다.

문제의 출발은 세법의 모호함이었다(지금도 그러하다). 세법은 납세 의무자를 거주자와 비거주자로 나누고 전자에게는 국내와 국외 소득 모두, 후자에게는 국내 소득에 대해서만 납세 의무를 부과한다(소득세법 제2조).


이때 거주자 여부 판단은 ①국내에 '주소' 또는 ②183일 이상의 거소 유무를 기준으로 한다. 이때 주소란 '국내에서 생계를 같이하는 가족 및 국내에 소재한 자산의 유무 등 생활 관계의 객관적 사실'에 따라 판정한다(소득세법 시행령 제2조).


그런데 생활 관계 판단은 그야말로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으로 해석될 여지가 많다. 당사자들은 종종 국내에서 살고 있는 부모를 방문했다. 해외에서 번 돈 중 일부를 국내에 재투자하기도 했다. 이를 유심히 살펴본 과세 관청은 이들의 생활 관계가 국외보다는 국내에서 더 밀접하다고 보아 거주자로 판단하고, 국외 소득을 미신고했다는 이유로 탈세 혐의 처분을 했다.

그러나 소득세 과세 단위는 개인이므로 거주자 판단도 당사자를 기준으로 판단해야 맞다. 여기에 가족을 들먹이는 것은 논리적이지도, 합리적이지도 않다. 자칫 세법이 부모에 대한 효도 및 자식의 공부나 국내 투자를 막을 수도 있다.


그리고 국내 체류 일수가 많다고 하여 거주자로 보는 것도 매우 경직된 기준이다. 사업상 법적 분쟁 조정이나 가정 문제 해결 등 어쩔 수 없는 사정으로 국내에 체류하는 기간이 길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선진국일수록 이런 판단 기준은 투명하고 명확하다. 영국의 경우 납세 의무자 '본인'만의 영국 체류 일수나 주거 보유 및 근로 제공 여부 등의 지표만을 판단 기준으로 삼는다. 그 기준이 명확해 본인 스스로 영국 거주자인지를 판단할 수 있다.


지금 영국에서 빼어난 실력을 발휘하고 있는 손흥민을 보자. 그는 영국에서 주로 돈을 벌고 1년의 대부분을 영국에 머물기 때문에 영국 세법상 영국 거주자다.


그런데 그가 영국에서 번 돈을 국내에 재투자하거나 그의 부모가 국내에 체류하고 그가 결혼해 가족 중 일부가 국내에 남아 있으면 그의 생활 관계 중심지가 한국일 수 있다. 또한 국가대표로 계속 뽑혀 국내에서 전지훈련을 하는 시일이 많아진다면 체류 일수 기준으로도 한국 거주자로 판정될 가능성이 있다.


그렇다면 손흥민은 세무 행정상 역외탈루세금으로 왕 시리즈에 축구왕으로 등극할 수도 있다. 손흥민 선수 말고도 아프리카 등지에서 국위를 선양하는 한국인들이 적지 않다. 이들 역시 이런 문제로 전전긍긍한다.


문제의 역외탈루세금 1조원 확보 작전이 있고 난 뒤, 상당수 왕은 국내 재산을 정리하고 국내에는 아예 발을 끊고 산다. 소탐대실이 아닐 수 없다. 국가가 '세금 전투'에서는 이겼는지 몰라도 '글로벌 경제 전쟁'에서도 이겼는지는 의문이다.


세법 규정이 명확하지 않으면 납세 의무자는 불필요하게 과세 관청의 눈치를 보고 경제활동은 위축된다. 합리적인 방향으로 고쳐야 한다.


안창남 강남대학교 경제세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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