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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무이야기] 신탁제도의 활성화, 세제정비에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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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흠 김앤장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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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농림축산식품부 발표에 따르면 5가구 중 1가구가 반려동물과 생활하고 있다고 한다. 반려동물을 가족으로 여기는 '펫팸족(Pet+Family)' 100만명, 반려동물 1000만마리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2016년 기준 반려동물시장 규모는 2조원대를 넘어섰고, 2020년에는 6조원대로 전망된다. 1700억원을 상속받아 가장 부유한 동물로 등극한 독일 셰퍼드 군터 4세 스토리도 이제는 낯설지 않은 얘기다. 일찍이 일본에서는 반려동물을 위한 각양각색의 상품이 등장했는데, 그 중 주인사망 등으로 홀로 남겨지는 반려동물을 위한 케어서비스가 있다. 반려동물을 위해 일정 금액을 예탁하면 돌봄업체가 주인 없는 상황에서 사전에 지정된 방식으로 반려동물을 보살펴 주는 상품이다.


펫상속과 펫케어의 이면에는 신탁제도가 있다. 재산소유자가 제3자의 이익을 위해 자기재산을 관리자에게 이전해 관리ㆍ사용하도록 하는 제도가 '신탁'이다. 법률용어로 설명하자면 반려동물 주인이 '위탁자', 돌봄업체가 '수탁자', 반려동물이 '수익자'가 된다. 다소 복잡한 제도이지만 신탁의 역사는 유구하다. 중동 이슬람지역의 '와크프(waqf)'에서 기원을 찾는 견해도 있으나, 학계에서는 중세 영국에서 탄생한 '유스(use)'를 신탁의 시발점으로 보고 있다. 유스란 '~를 위하여'라는 의미의 라틴어인 'od opus'의 파생어로, 형식적으로는 위탁자가 재산을 수탁자에게 양도하지만 수탁자는 위탁자가 지정하는 목적에 따라 재산을 관리ㆍ처분할 의무를 부담하는 계약을 말한다. 중세 영국에서 유스가 유행한 이유는 12세기 십자군 전쟁으로 성인 남성이 장기간 참전하게 됨에 따라 그 기간 동안 재산을 신뢰할 수 있는 누군가에게 안전하게 맡겨 두어야 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도 17세기에 신탁과 유사한 '투탁(投託)'이라는 제도가 있었다. 투탁은 소유자가 자신의 토지를 안전하게 보호하기 위해 궁방(宮房)에 이전하고 약간의 궁세(宮稅)를 부담하면서 그 토지를 계속 사용ㆍ수익하는 것이었다.

오늘날에는 다양한 신탁제도가 마련돼있는데 그 중 활용도 높은 신탁의 하나가 '부동산신탁'이다. 토지개발을 위해 토지소유자가 개발업체에 토지를 신탁하고 개발업체는 자금의 조달, 건축물의 건설ㆍ임대ㆍ분양 등을 행하는 '토지신탁', 토지 소유자가 자금을 융통할 목적으로 토지를 증권사 등에 이전하는 '담보신탁' 등이 대표적이다. 또한 신탁제도는 그 신탁재산이 수탁자의 고유재산과 엄격하게 구분된다는 도산절연의 특성 때문에 집합투자기구를 통해 자산유동화를 하는 데에도 긴요한 수단이 된다. 대규모 자금의 차입ㆍ조달 수요가 있을 때 다수의 은행이 대주로 참여하는 신디케이티드론에서는 '담보권의 신탁'이 이용되고 있다. 작금에는 재산관리의 전통적 기능을 넘어 자본시장의 중요한 법적 도구로도 활용되고 있는 것이다. 그에 발맞추어 영국은 2000년 수탁자법을, 미국은 2000년 통일신탁법을 제정했고, 일본은 2006년 신탁법을 대폭 개정했다. 범세계적으로 통일적 신탁법 적용을 위해 마련된 1985년 헤이그국제사법회의의 '신탁의 준거법과 승인에 관한 협약'이나 1999년 유럽연합(EU)의 신탁법리 통일을 위한 '유럽신탁법원리' 발의도 같은 맥락이다. 우리나라의 신탁법도 1961년 제정된 후 2011년 전면 개정돼 세계적인 추세와 보폭을 맞추고 있다.


최근 신탁제도는 금융권에서의 활용을 넘어 재산승계 또는 성년후견제도의 보완책으로도 각광받고 있다. 유언장 작성보다 절차가 간단하고, 본인뿐만 아니라 상속인의 사망 이후까지도 대비할 수 있는 '유언대용신탁'이나 '수익자연속신탁'이 주목받고 있다. 이들 제도를 통해 "재산을 배우자에게 넘겼다가, 배우자가 사망할 경우에는 자녀, 자녀 사망시에는 손자에게 넘겨라"는 식으로 여러 세대에 걸친 재산분배가 가능하다. 일본에서는 2007년 이후 10만건 이상의 유언대용신탁 계약이 체결됐다고 한다. 한편 2013년 도입된 성년후견제도에 대한 보완책으로 신탁제도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자는 견해도 있다. 피후견인의 재산을 믿을 만한 개인이나 법인에 신탁해 관리하도록 함으로써 이해관계인에 의한 재산의 침해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함이다.


기실 세금은 삼라만상과 연관돼있어 신탁도 과세제도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다. 또한 그 과세 규모도 중요재산 관리에 신탁이 이용되는 점에 비추어 거액일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신탁세제는 단촐하다. 소수의 규정이 소득세법 등 개별세법에 산재해있고 대부분은 실질과세원칙의 해석론에 의지하고 있다. 신탁의 독특한 구조와 성격으로 세법의 영역에서는 신탁을 독립적 과세단위로 취급해야 하는지에 대한 '신탁도관설'과 '신탁실체설'이 대립하고 있는데, 이는 해석론의 불확실성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이다. 그 결과 사안에 따라 수익자나 위탁자가 납세의무자가 되기도 하고, 수탁자가 과세단위로 취급되기도 한다. 한편 대법원은 최근 신탁재산의 처분에 따른 부가가치세 납세의무자를 수탁자라고 판결해 그 분야에서 명확한 해석론을 제시하기도 했다.

오늘날 신탁이 수행하는 기능의 중요성을 감안해 신탁이라는 사법관계에 대해 세법이 보다 명확한 이정표를 제시해야 한다는 견해가 설득력을 얻고 있다. 미국은 신탁구조에 따라 단순신탁, 복잡신탁, 위탁자신탁으로, 일본은 수익자과세신탁, 집합투자신탁, 법인과세신탁으로 각 분류해 과세단위에 대한 분명한 규정을 두고 있다. 신탁제도가 유용하지만 세무상 리스크 때문에 내국인들과 해외 투자자들로부터 외면받을 개연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신탁거래의 예측 가능성과 법적 안정성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미국, 일본과 같이 신탁세제의 구체적 규정을 마련하는 것이 절실하다. 공들여 마련한 신탁제도의 이용을 활성화하고, 해외투자자본을 유치해 우리나라가 동북아시아 금융허브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진지하게 신탁세제의 정비를 고민해야 할 '골든타임'이다.


백제흠 김앤장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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