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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칼럼] 트럼프 시대의 마틴루서킹 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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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별 뉴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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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금요일, 미국의 수도 워싱턴DC 링컨 기념관 앞에서는 대규모 시위가 열렸다. 인종도, 연령도, 주장하는 바도 다양한 세 그룹의 시위였다. 하나는 미시건주 출신의 원주민 권리를 주장하는 네이티브 아메리칸들, 흑인 유대인의 권리를 주장하는 히브리 이스라엘계 이민자들, 그리고 켄터키주 출신의 가톨릭학교 백인 고등학생들이었다. 각각의 인종들이 제각기 다른 주장을 하며 링컨 기념관 앞에서 뒤섞였다.
그런데 시위 중에 문제가 불거졌다. 네이티브 아메리칸 시위자인 네이슨 필립스가 가톨릭학교 고등학생들과 충돌한 것. 대부분 코카서스계 백인인 이 학교 학생들은 봉사활동 점수를 얻기 위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상징인 '미국을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 모자와 옷을 착용하고 시위에 참가했다. 필립스가 북을 치며 전통음악을 연주하는 도중에, 십대 학생들은 이 시위자를 둘러싸고 조롱했다. 이 중 한 고등학생은 필립스와 대치 상태에 맞닥뜨리기도 했다. 십대 백인 학생들이 네이티브 아메리칸을 조롱하는 이 영상은 소셜미디어에서 공유되며 미국 전체에 격렬한 분노를 불러일으켰다.

이 학생들은 흑인 유대인 시위대들과도 충돌했다. 영상에 따르면 학생들은 "아프리카로 돌아가라!", "국경장벽을 건설해야 한다!"고 소리를 질렀다. 조롱을 들은 흑인 시위대들도 "트럼프의 자식들"이라며 맞섰다.

사태가 커지자 해당 학교는 학생들의 행동이 잘못된 것이라며 사과했지만, 영상에 찍힌 십대 학생과 부모들은 변호사를 고용해 반박하는 자료를 내 더 큰 후폭풍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상황이다. 소셜 미디어의 여론도 둘로 갈라졌다. 십대 학생들조차 버젓이 인종차별을 하는 미국의 현실에 분노하는 사람들과, 다른 시위대가 백인들을 자극했다는 논리를 펴는 사람들로 쪼개져 싸우고 있다.
전날에는 미국 오클라호마 대학에 다니는 백인 여학생 두 명이 얼굴에 검은색 페인트를 바르고 흑인을 비하하는 사건도 발생했다. 이 또한 소셜 미디어를 통해 영상이 급속도로 확산됐다. 이들은 결국 학생회에서 퇴출되고 학교의 조사를 받게 됐다.

아이러니한 점은 일련의 사건들이 모두 미국의 휴일 '마틴루서킹 데이'를 앞두고 일어났다는 점이다. 21일(현지시간)은 인권 운동가 마틴 루서 킹 주니어를 기리는 날이다. 그는 흑인 목사로서 미국 흑인들을 위한 민권 운동에 앞장서 미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로 꼽힌다. 인권과 평등의 가치를 주시하는 미국은 이 날을 연방공휴일로 지정했고, 정부 기관은 물론 은행과 뉴욕증권거래소 등 금융시장도 공휴일을 지킨다. 트럼프 대통령도 이날 워싱턴 내셔널 몰에 있는 킹 목사 기념비를 깜짝 방문했다. 소셜미디어에선 흑인 조롱 영상이 번지는데, 뉴욕 시내에서는 이날을 기념하는 각종 행사가 열리고 관련 기념품을 관광객에게 파는 걸 보니 참 미국도 간단치 않은 나라라는 생각이 들었다.

미국의 중요한 가치로 꼽히는 다인종, 기회의 균등과 다름을 인정하는 분위기는 트럼프 당선 후에 급격히 변하고 있다. 대놓고 드러내지 않던 인종차별주의자들이 얼굴을 드러내고 있고, 이를 부끄럽게 여기지 않는다. 미국 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증오를 드러내는 것이 부끄럽지 않은 세상이 돼 가고 있는 것 같아 우려스럽다. 마틴 루서 킹 데이를 맞아 그의 유명한 발언을 생각해 볼 때가 아닐까. "증오를 증오로 갚아주는 것은 증오를 증폭시키고, 별이 없는 밤에는 더 깊은 어둠을 더한다. 어둠은 어둠을 몰아낼 수 없고, 증오는 증오를 몰아낼 수 없다. 빛과 사랑만이 증오를 몰아낼 수 있다."




뉴욕 김은별 특파원 silverstar@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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