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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무이야기] 세금 앞의 평등 원칙과 노란 조끼 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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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정부 시위 폭력화 우려, 시위 장소 방문 자제 등 신변 유의."

외교부에서 프랑스 체류 중인 한국인에게 스마트폰을 통해 알려준 내용이다. 맞다. 주말마다 노란 조끼를 입은 시위대가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이 시작된 바스티유 광장으로 몰려들고 있다.
시작은 유류세 인상 철회 요구였지만, 정권 퇴진 운동으로까지 번질 기세다. 급기야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지난 13일 공개 서한을 통해 어느 세목을 줄여야 할지를 놓고 '국민대토론'을 하자고 제안했다. 그만큼 위기를 느꼈다는 것이다.

프랑스의 국토 면적은 한국의 5배 정도로 넓지만 인구는 7000만명을 밑돈다. 넓은 국토에 국민이 퍼져서 살다 보니 대도시를 제외하곤 대중교통망이 빈약하다. 자가용 승용차가 서민들의 발인 상황에서 유류세 인상은 이들의 얇은 지갑을 더 궁핍하게 할 수 있다. 게다가 부유세를 폐지한 것은 울고 싶은데 뺨 때려준 격이었다. 이른바 프랑스식 '서민 증세, 부자 감세' 정책에 대한 노란 조끼의 반발이다.

그러나 세금의 눈으로 노란 조끼 시위를 보면 사정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
첫째, 일자리 창출인가 아니면 소득 재분배 강화인가의 우선순위 결정 문제다. 세계화한 기업 환경은 비용(세금 포함)이 적게 드는 곳에 기업의 터를 잡게끔 유도한다. 우리나라 기업이 베트남에 공장을 세우듯, 프랑스에서 보면 세금 부담이 적은 폴란드나 아일랜드가 그리 멀지 않다.

반면 프랑스 대혁명 이후 자리 잡은 '세금 앞의 평등 원칙(소득이 많은 자는 많게, 적은 자는 적게)'이라는 사회적 정의가 일자리 창출이라는 요구에 가로막혀 누진과세 등 소득 재분배 정책의 포기를 강요당하고 있다(대혁명 발생의 주된 원인도 서민들에 대한 부당한 세금 부담 가중이었다).

마크롱 정부는 일자리 창출을 위해 소득 재분배 정책 대신 부자가 내는 부유세를 폐지하고 서민들이나 부자가 같은 세율을 적용받는 유류세 인상을 꾀했다. 이에 노란 조끼를 입은 자들이 '세금 앞의 평등'이라는 프랑스의 헌법적 가치를 동화 속 우화로 만들었다며 분노하고 바스티유 광장에 모이고 있다.

둘째, 과세 관청에 대한 실망이다. 프랑스 재벌이나 정치 지도자 등 사회 지도층들이 조세피난처에 은닉된 계좌를 갖고 있음에도 처벌은 흐지부지됐다. 게다가 작은 정부 구현에 따른 공무원 감축으로 서민들의 민원 창구에서의 대기 시간이 길어졌다. 디지털 기술에 서툴고 대면 접촉을 선호하는 서민으로선 마크롱 정부가 '서민에게는 불친절, 부자에게는 친절'이라는 이중 잣대를 적용한다고 인식할 만하다.

우리나라도 반면교사로 삼을 점이 많다. 일자리 창출이라는 이름으로 헌법이 규정한 공평 과세 원칙을 훼손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부자나 재벌 기업에 대한 세무조사나 처벌을 조자룡의 헌 칼 휘두르듯 하는 것은 아닌지 냉정하게 평가해볼 일이다.

혹자는 서민들더러 세금은 얼마 안 내는 주제에 불평만 많다고 한다. 틀렸다. 서민이 낸 세금 1만원과 부자가 낸 세금 1만원이 같을 수 없다. 성서에서도 '가난한 과부의 돈 두 푼이 어느 부자의 헌금보다 많다'라고 한다. 절대적 공평보다 상대적 공평이 중요하다는 의미다.

세금저항운동은 자칫 사회 체계 전체를 뒤바꿀 수 있는 폭발력이 있기에 유럽연합(EU)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노란 조끼 시위의 귀추를 주목하고 있다. 조선의 멸망을 재촉한 1894년 동학농민운동도 세금 때문에 일어났다. 예나 지금이나 세금 문제는 결코 가벼이 볼 일이 아니다. 철학적 사고가 뒷받침돼야 한다. 국가 재정 건전성 유지와 공평 부담이 가장 중요하다.

안창남 강남대학교 경제세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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