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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 딸깍발이] 빈곤문제 없는 사회 그 시작은 기본소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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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곤과 불안 없는 사회 가능할까, 세계 '기본소득' 실험…복지·조세 제도 전면 변화, 사회적 합의 선행돼야

[아시아경제 류정민 기자] "사람이라면 누구나 국가(지방정부)로부터 기본적인 생활을 위한 현금을 정기적으로 평생 받아야 한다."

누군가가 이렇게 얘기한다면 '황당한 주장'으로 취급받지 않을까. 하지만 상상력의 결과물로 보기는 어렵다. 꽤나 진지하게 이런 주장을 펼치는 이가 있다.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세계적인 유명 인사부터 노벨평화상 수상자까지 이구동성 외치는 더 나은 세계를 위한 해답, 바로 '기본소득'이다.
미국의 인권운동가 마틴 루서 킹 목사가 기본소득의 가치를 전파하고자 애쓰다 당시 기득권 체제의 타깃이 됐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지 않은 내용이다. 제임스 토빈, 프리드먼, 스티글러 등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들도 다양한 형태의 이름으로 기본소득 제도에 힘을 실었다. 국가나 행정 기관이 빈곤 문제 해결을 위해 현금을 지급한 것은 자본주의 경제 구조가 탄생한 2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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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수많은 학자가 기본소득 개념에 힘을 실었다. 20세기 영국 철학을 대표하는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은 1918년 '자유로 가는 길'이라는 글에서 "일을 하든 안 하든 간에 사람은 누구나 적지만 생필품을 구비하기에는 충분한 소득을 일정액 보장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기본소득은 국가가 모든 시민에게 자산 조사나 근로 의욕에 대한 조사 없이 개인별로 현금을 지급하는 제도다. 부자와 가난한 사람을 나누지 않고 지급한다. 평생 현금을 정기적으로 지급하는 게 특징이다.

기본소득의 개념을 처음 접한 사람이라면 황당하게 느낄 수밖에 없다. 일본의 기본소득 입문서 '기본소득이 알려주는 것들'의 저자인 야마모리 도루 '도시샤대 경제학부' 교원도 마찬가지다. "사실 이 책을 쓰고 있는 나도, 1990년대 초반 기본소득을 처음 접했을 때 강한 혐오감을 느꼈다."

물론 도루 교원은 기본소득에 대한 '악담'을 퍼붓고자 책을 펴낸 것은 아니다. '혐오'에서 '희망'으로의 인식 변화, 저자의 생각은 왜 달라졌을까. 세계는 기본소득 제도라는 거대한 실험장이다. 삶의 고민을 해결해줄 해법이 될지 모른다는 생각에 각국의 정치 지도자, 학자, 시민운동가들이 그 실험에 동참하고 있다. 주요 국가는 중앙정부나 지방정부 차원에서 기본소득의 현실 접목을 시도하고 있다.

기본소득은 복지국가의 개념을 바꿔놓는 개념이다. 일을 하고 싶은 사람은 '기본소득+일에 따른 소득'을 받고, 일을 하기 싫은 사람은 기본소득으로 생활하면 된다는 인식이 기본 골격이다. 사회보험이나 공적부조 등 기존의 '사회적 안전망'을 걷어내고 복지 국가를 만든다는 상상, 정말로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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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소득 옹호론자들은 선진국이 추구하는 완전고용의 허구성에 주목한다. 실업률을 낮추고자 불필요한 고용을 확대하는 것은 오히려 경제활동의 건전성을 헤치는 '독'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4차 산업 시대를 맞아 인간의 노동력은 비중이 줄어드는데 일자리 확대를 경제 활동의 목표로 설정하는 것은 엉뚱한 접근법이라는 의미다.

일을 하지 않는 사람에게 평생 현금을 지급하는 게 온당하냐는 물음의 답을 찾으려면 두 가지 문제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우선 '무임승차' 논란에 대한 발상의 전환이다. 가정에서 가사를 책임지거나 아이를 돌보는 행위는 직장에 나가 일을 하는 행위 못지않게 중요한 '노동'이라는 주장에는 크게 거부감이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자면서 몸을 뒤척이는 것도 노동"이라는 장애인 단체의 주장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기본소득에 대한 또 다른 의문은 일을 하지 않아도 돈을 준다면 근로 의욕을 상실하게 될 것이란 생각이다. 이와 관련해서는 "왜 일을 하는지 되물을 필요가 있다"는 게 기본소득 옹호론자들의 논리다.

생존과 가족 부양을 위해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보라는 의미다. 기본소득이 시스템으로 정착된다면 자발적으로 창의적인 일을 찾게 될 것이란 반론이다.

남들이 하기 싫어하는 힘들고 어렵고 더러운 일, 이른바 3D 직종은 어떻게 될까. 일할 사람은 필요한데 하려는 사람이 많지 않다면 자연스럽게 임금이 올라가고 해당 업무를 하려는 사람도 나타날 것이라는 게 기본소득 옹호론자들의 설명이다.

부자와 가난한 자를 나누지 않고 기본소득을 지급해야 한다는 논리의 근거는 이른바 '선별 비용' 절약에 무게가 실려 있다. 혜택을 줄 사람을 나누다 보면 복지의 사각지대가 생기는데 누구나 혜택을 받으면 그 문제를 없앨 수 있다는 의미다.

가장 보편적인 의문은 재원이다. 기본소득이 삶에 필요한 기본 비용 형태로 지급될 경우 재원은 만만치 않다. 세금을 더 걷는 수준이 아니라 세제의 근본적인 개편이 뒤따라야 가능한 일이다. 정률 소득세를 적용하는 방안과 소비세로 세금을 일원화하는 방안 등이 대안으로 거론되고 있다. 소비세 일원화 방안은 소득세 폐지, 법인세 폐지와도 맞물려 있다. 이 밖에 환경세를 통한 재원 마련 주장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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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소득 시대가 열린다면 일과 삶에 대한 인식은 근본적으로 바뀔 것으로 보인다. 불안과 빈곤이 없는 유토피아를 현실에서 구현할 수 있을까. 기본소득 제도의 연착륙까지는 넘어야 할 산도 만만치 않다.

노동과 복지의 기본 개념에 대한 '인식의 벽'을 허무는 것은 물론이고 사회적 합의가 필수적이다. 현행 복지제도, 조세제도의 뿌리를 흔들어야 한다는 부담도 있다. 어떤 제도 하나를 도입하는 문제가 아니라 국가 시스템을 바꾸는 프로젝트가 될 수 있다는 얘기다.

분명 어려운 길이다.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거대한 벽을 마주할 수도 있다. 상상 이상의 시간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세계 곳곳에서 기본소득을 둘러싼 실험이 이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적어도 지금 우리의 삶이 행복하지는 않다는 무언의 공감대, 그것이 더 나은 세상을 향한 제도 변화를 갈망하는 힘의 원천 아닐까.




류정민 정치부 기자 jmryu@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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