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3년 관동대지진땐 조선인 학살
2016년 서남부 구마모토 지진때 조차
조선인이 우물에 독 살포 유언비어
95년 전 관동대지진은 사망자와 실종자만 10만명 이상, 피난자는 100만명이 넘는 비극이었지만 지진 뒤 자행된 조선인 학살의 실태는 더욱 처참했다. "처음에 구니미쓰가 깔끔하게 단번에 머리를 잘랐다. 두번째는 게이지가 휘둘렀는데 이때는 반밖에 잘리지 않았다. 세번째는 다카하루였는데 목이 조금 남았다.(중략) 구덩이 안에 넣어 파묻고 피곤하다는듯 모두 여기저기 누웠다가 밤이 되자 또 각자 담당한 곳에 보초를 서러 갔다." 이 기록은 당시 지바현 일대 한 주민의 일기로 이 지역의 학생들이 1970년대 향토사 인터뷰를 수행하면서 알려졌다. 일본 정부는 당시 학살에 관한 진상을 규명하기 위해 공식조사에 나선 적이 없고, 우리 정부도 요구한 적이 없다.
20세기 초 전쟁을 거친 뒤 인권에 대한 가치, 특히 인종주의는 그 자체로 옳지 않다는 신념이 전 지구적으로 확산됐다고 나는 봤다. 21세기 일본에서 거듭 불거지는 반한감정, 특히 혐한(嫌韓)시위로 상징되는 일련의 행위는 단순히 일부 집단의 퇴행적 행위에 불과한 것일까.
저자는 현 사태의 원인을 명징하게 보여주기 위해 일본이라는 공간에서 조선인에 대한 적대적 감정이 어떻게 구현되는지를 보여준다. 저자 자신이 직접 겪고 보면서 천착한 주제인데도 드라이하게 보여주면서 "왜 발생했는지"에 대한 고민과 그에 대해 자체적으로 고민한 답을 일목요연하게 설명한다. 일본에서는 인종주의를 막기 위한 법적ㆍ제도적 장치로 부를 만한 혐오표현 억제법(해소법)이 2016년 시행돼 오늘에 이르고 있지만, 이 법은 제안 당시에도 이렇다 할 효과를 내지 못할 것이란 전망이 많았다. 겉으론 인종주의를 반대하고 있지만 그에 따른 처벌규정이 없어 선언적 수준에 머물렀기 때문이다. 하나의 법률이 현실사회에서 효과를 내기 위해선 강제성이 필요한데도 그러질 못했단 이야기다.
재일조선인 3세 인종주의 실태 고발
처벌규정 없는 日 정부 대응이 문제
한국사회는 이들과 다를까 의문도
물론 이러한 일련의 과정은 우연의 결과가 아니라 과거부터 일본에서 반(反)인종주의라는 잣대가 없었기 때문이다. 특히 일본에서는 과거부터 지금껏 인종주의 행위가 많은 사람들로부터 허용되거나 지지를 받았고 최소한 묵인됐다. 인종주의를 실제 행동으로 구현한 혐오표현이 나타나도 아무도 말리지 않은 것이다. 이렇게 되면 상부로부터의 제도화, 즉 정치권력은 시민의 여론에 따라 이 같은 현상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나아가 차별을 제도화하는 데도 별다른 거리낌을 느끼지 않게 된다.
상ㆍ하부 구조간 서로 주고받으면서 차별이 정당화되는 구조가 공고화되는 셈. 저자는 "일본은 '구별'과 '차별'을 분석하기 위한 잣대가 존재하지 않는 사회"라며 "선의로 차별에 항의하고 싶은 사람이라도 무엇이 차별이고 무엇이 그렇지 않은지를 자신 있게 판단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인식을 공유한다면, 국가간 축구대회에서 일본 대표팀을 응원하는 자국민이 욱일기를 드는 행위가 유독 빈번한 점이 이해가 된다. 다소 차이는 있지만 과거 나치의 홀로코스트가 전후 법적 처벌의 대상이 되고 유럽은 물론 전 세계에서 반면교사로 삼은 반면, 일본의 만행에 대해서는 그렇게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른바 인종주의에 국한하지 않더라도 오늘날까지도 동아시아 지역의 골칫거리인 일본, 특히 일본 내 보수정치세력을 중심으로 한 시민 상당수에게 역사부정이 자리잡고 있다. 저자가 일본에서 유독 혐오표현이 빈번하게 발발하는 주요 원인으로 반인종주의에 대한 규범이 없는 점, 위로부터 차별선동하려는 압력이 늘고 있는 점과 함께 세번째로 꼽는 원인이다.
지난 5월 열린 유럽축구연맹 유로파리그 준결승경기 당시 관중석에 전범기인 욱일기가 등장했다.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는 AT마드리드 팬클럽에 항의 메일을 보냈다.<이미지출처:연합뉴스>
원본보기 아이콘일본의 전쟁범죄는 독일의 그것과 달리 공적으로 책임을 졌다는 인식이 약한데, 이는 전후 당시의 동아시아 지역을 둘러싼 냉전구조 나아가 미국 주도의 질서재편 등 20세기 중반의 국제정세와 맞물려 오늘날까지 이어진다. 인종주의, 인종차별이 누구도 원치 않았으나 자연스럽게 구현된 게 아니라 특정한 이해관계 속에서 '활용'됐다는 저자의 주장을 따른다면 정치 혹은 경제권력의 입맛에 맞춰 의도화돼 지금에 이르게 된 것으로 볼 수 있는 근거도 충분한 셈이다.
저자는 자이니치에 대한 혐오표현이 인종주의의 연장선에 있으면서도 그에 더해 더 큰 위험성이 내포됐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피해자는 물론 가해자 개인이나 집단, 나아가 민주주의와 사회를 파괴할 가능성도 있다고 내다봤다. 최악의 경우 학살로 이어질 여지도 있는 인종주의에 따른 물리적 폭력을 막기 위해서라도 우리 사회의 근간을 이루는 사회적 조건, 시민 다수의 인식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자이니치 3세 저자는 일본 사회에 골몰하면서 책을 마무리 지었지만 수년 전부터 극우보수 성향의 온라인 커뮤니티가 횡행하는 한국 사회라고해서 크게 다르다고 할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이 들었다. 그렇지 않다고 답을 내리긴 어려웠다.
최대열 기자 dychoi@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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