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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오늘]올림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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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진석 문화부 부국장

허진석 문화부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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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안전부 국가기록원은 손기정(1912~2002)의 1936년 베를린올림픽 마라톤 우승 82주년을 맞아 다큐멘터리 영화 필름 '민족의 제전'과 베를린 올림픽 우승 상장 등을 복원ㆍ복제했다고 8일 발표했다. 국가기록원은 9일을 손기정이 우승한 날로 보았지만 아주 정확한 판단은 아니다. 베를린올림픽 마라톤 경기는 독일시간으로 1936년 8월 9일 오후 3시2분에 시작됐고 손기정은 2시간29분19.2초만에 결승선을 통과했으니 오후 5시30분이 지났을 때다. 서머타임을 사용하지 않은 시기니까 베를린과 서울의 시차는 여덟 시간. 손기정은 한국시간으로 10일 오전 1시30분쯤 결승선을 통과했다.

민족의 제전은 독일의 영화감독 레니 리펜슈탈이 1936년 베를린올림픽을 소재로 제작한 영화 '올림피아(Olympia)'의 일부다. 올림피아는 '민족의 제전'과 '미의 제전' 두 부분으로 되어 있다. 뛰어난 기법과 완성도, 미학적 성취 등으로 영화사에 길이 남을 유산이라는 찬사와 나치의 선전물이라는 비판을 함께 받아왔다. 우리에게는 베를린올림픽에서 금메달과 동메달을 획득한 손기정과 남승룡의 경기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동영상 자료라는 점에서 대체 불가능한 가치를 지닌다.
그러나 올림피아에는 미리 훈련 장면을 찍어두거나 경기가 끝난 다음 다시 찍은 장면이 많이 섞여 있다. 손기정과 남승룡이 나오는 장면도 마찬가지다. 손기정은 35㎞ 지점 이후 장면에서 실제 경기 번호인 382번이 아닌 381번을 달았거나, 필름이 반전된 모습으로 등장한다. 남승룡도 번호를 상이한 곳에 부착한 두 장면과 훈련복을 입고 달리는 장면 등 세 가지 다른 모습으로 등장한다. 그래서 실제 경기 장면을 가려내서 보아야 한다. 멀리서 찍은 장면 중에 실제 경기 장면이 많고 가까이서 찍은 장면에는 연출된(다시 찍거나 미리 찍은) 장면이 많다.

올림피아는 1938년 4월 20일 아돌프 히틀러가 지켜보는 가운데 우파 팔라스트(UFA Palast)에서 공개되었다. 히틀러는 민족의 제전이 끝나자 박수를 치면서 자리에서 일어나 리펜슈탈에게 "당신은 최고의 작품을 만들었다. 세계가 당신에게 찬사(감사)를 보낼 것"이라고 축하했다. 영화는 발표된 뒤 국제영화제에서 상을 휩쓸었다. 1937~1938년 독일 영화상, 1938년 이탈리아 베네치아 비엔날레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극영화 부문 최고상을 받았다. 1956년 할리우드는 이 영화를 그 시대 10대 영화로 선정했다. 세계 언론의 찬사도 줄을 이었다.

올림피아는 리펜슈탈의 의도가 과도하게 개입돼 기록영화의 기준을 넘나들고, 당시 유럽인의 아시아 이미지를 반영한 면도 있다. 시상대에서 고개를 숙이고 일장기를 외면하는 손기정과 남승룡의 모습은 우리를 비감하게 만든다. 하지만 리펜슈탈은 그 장면에서 '동양의 신비'를 맛본다. 그에게 손기정과 남승룡은 망국의 한(恨)에 사무친 한국인이 아니라 애국심 충만한 일본인일 뿐이다. 리펜슈탈은 자서전(Memoiren)에 이렇게 썼다. "일본 선수들은 월계관을 쓴 머리를 숙이고 종교적인 희열(喜悅)에 빠진 것 같은 모습으로 자국의 국가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문화부 부국장
huhb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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