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두 사람을 사랑했고 두 사람도 우리를 사랑했다. 우리는 자주 만나 그들의 사랑을 확인했다. 그 만남은 불같은 정열과 차가운 지성 사이에서 외줄을 타는 두 사람을 지켜보는 시간이기도 했다. 즐겁고 유쾌했지만 한편 애처롭고 조마조마한 시간들이었다. 친구는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 뒤 착하고 말수 적은 아내를 맞았다. 여자 친구의 소식은 한참의 시간이 지난 후 끊어졌다. 이제 우리는 어쩌다 만날 수밖에 없게 됐다. 구릿한 입 냄새를 풍기는 중년돼 만난 우리는, 그러나 추억보다는 꿈을 말하려 든다. 세상 모든 사나이에겐 숨겨두고 싶은 추억이 있다고 한다. 하지만 어디 사나이뿐이랴.
우리 내면의 해저에는 또 하나의 세계가 있다. 기억은 거듭 쌓여 단층을 이루고 우리는 순간마다 영겁을 가로질러 한 시대의 기억 속을 여행한다. 그곳이 어디인지 알지 못하는 채. 하지만 기억은 분명 우리 몸이 일부가 돼 짜릿한 쾌감과 아련한 슬픔을, 전기에 감전된 듯한 충격을 선물한다. 눈을 감고 떠올려 보라. 당신의 시간 어느 곳을 저며 그 절절한 정서를 돌이켜 보라. '하늘나라에 가 계시는 엄마가 하루 휴가를 얻어 오신다면 … 숨겨놓은 세상사 중 딱 한 가지 억울했던 그 일을 일러바치고 엉엉 울겠다'던 정채봉처럼.
2016년 7월1일, 나는 '마라의 죽음과 생식기'라는 제목으로 이 글을 쓰기 시작했다. 남루한 조각배에 독자 여러분을 태우고 어디로 흘러갈지 알지 못한 채. 우리의 몸을 더듬어 때로는 은유로, 때로는 현실로 풀어낸 나의 이야기들, 추레한 나그네의 길이었다. 연재는 다음 주로 마친다. 우리는 이제 각자의 길을 가리라. 매 순간이 운명일 수밖에 없는 체험과 심연과도 같은 망각, 그리하여 영원의 지층으로 잠복하고야 말 온몸에 새긴 시간의 문신, 그 행간 속으로. 그때 고백했듯 여전히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꼭 봐야할 주요뉴스
"한국 없으면 안돼" 외치는 전세계 어부들…이유 ... 마스크영역<ⓒ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