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문학에 대한 '순정'을 느낄 수 있어 좋았습니다. 글쓰기에 대한 애정과 시와 한몸이 되어보려는 희망이 가득한 교실이었습니다. '초심(初心)'으로 세상 끝까지라도 가보려는 눈빛들이었습니다. 덕분에 그분들과 함께 하는 점심밥이 입에 달았습니다. 야생화가 아름다운 카페에서의 시간이 행복했습니다.
다행히 윤필암은 그리 멀지 않았습니다. 날은 흐리고 길은 구불구불했지만 마음은 마냥 부풀었습니다. 사진으로만 보아오던 여인을 만나러 가는 사내처럼 설레었습니다. 전설의 성을 찾아가는 소년처럼, 가슴이 뛰었습니다. 핸들을 잡은 손에 자꾸 힘이 들어갔습니다. 비와 안개가 온 산을 휘감았습니다.
오히려 잘됐다고 중얼거렸습니다. 절 구경은 사실 쨍한 날보다 흐리거나 비오는 날이 훨씬 더 좋습니다. '사람과 하늘'이 더 가까워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화가 '임옥상(林玉相)'씨도 엇비슷한 생각을 했더군요. 일찍이 이 절을 드나들며 윤필암 그림 전시회까지 열었던 화가들이 엮은 책('사불산 윤필암')에서 읽었습니다.
저 역시 흡사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절하고 싶어야 절이다." 윤필암 '사불전(四佛殿)'에 들면 절하고 싶어집니다. 불상이 없는 법당입니다. 부처가 앉아있어야 할 자리에 창문이 있을 뿐입니다. 창밖으로 맞은편 산꼭대기 '사면불(四面佛)'이 보입니다. 사방에 부처가 그려진! '삼국유사'에도 나오는 설화 속의 돌입니다.
"죽령 동쪽 1백리가량 되는 곳에 높이 솟은 산이 있었는데, 진평왕 9년 정미(丁未)에 갑자기, 사면이 한 길이나 되는 큰 돌이 하나 나타났다. '사방여래(四方如來)'의 상이 새겨지고, 모두 홍색 비단으로 싸여 있었다. 그것은 하늘로부터 그 산꼭대기에 떨어진 것이다. 왕은 그 말을 듣고 그곳에 가서 쳐다보고 절하고는…."
아쉽게도 왕이 절을 하게 만든 그 돌은 보이지 않습니다. 사면불은 지금 안개에 싸여 있습니다. 하릴없이 저는 산에 대고 절을 합니다. 아니 숲속에 무릎을 꿇리고 허공에 이마를 댑니다. 저 유리창을 낸 이의 뜻도 어쩌면 불상 대신 나무와 구름을 보라는 것인지 모릅니다. 구름을 몰고 오는 바람을 보라는 당부일 수도 있습니다.
이런 법당은 여기 말고도 여럿 있습니다. 이른바 '적멸보궁'이라고 일컫는 곳들입니다. 부처의 진신(眞身)을 모셨는데 무엇하러 허깨비를 받들겠습니까. 논산 '관촉사' 생각도 납니다. 최근에 그 절 미륵불이 보물에서 국보로 승격되었지요. 모자를 쓴 얼굴이 엄청나게 큰 고려의 돌부처 말입니다.
그 절 '미륵전'에도 여기처럼 불상이 없습니다. 정면 벽에 커다란 창문이 나 있지요. 그리로 미륵부처님 커다란 상호(相好)가 보입니다. 저는 그것 또한 돌로 된 형상을 보라는 뜻은 아닐 거라 믿습니다. 생각건대 거기에 자신의 얼굴을 비춰보라는 주문일 것만 같습니다.
며칠 있으면 '부처님오신 날'. 그분께서 세상에 나오자마자 외쳤다는 말씀의 의미도 멋대로 새겨보고 싶어집니다. '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 唯我獨尊)!' 저는 이 말을 '인간의 존엄성 선언'으로 이해합니다. '오직 '나 홀로 존귀하다'의 '나'는 '싯다르타'가 아니고 '석가모니'도 아니다. 인간이다.'
마치 입학식이나 운동회 같은 데서 대표자가 선서를 할 때 따라 하는 이들 모두 각자의 이름을 넣어서 같은 다짐을 하는 격입니다. 덧붙이자면 이런 문장과 같은 의미지요. "(나, 싯다르타가 모든 인간을 대표해서 이르노니) 하늘 위에도 하늘 아래에도 '인간(홍길동ㆍ성춘향…)'만큼 존귀한 존재는 없다."
'사불전' 유리창 너머 푸른 산을 봅니다. 제 얼굴이 비칩니다. 얼굴을 비춰주는 것이 유리창인지, 안개인지 잘은 모르겠습니다. 그저 자꾸 절하고 싶을 뿐입니다. 지금 저는 부처님 손바닥 안에 있습니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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