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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진석의 몸으로 쓰는 이야기]놀라운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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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진석 문화부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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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고 아버지, 여태 눈을 못 뜨셨소. 인당수 풍랑 중에 빠져 죽던 청이가 살아서 여기 왔소. 어서 어서 눈을 떠서 저를 급히 보옵소서.' 심황후가 울부짖으니 심봉사가 어쩔 줄을 모른다. "내가 지금 죽어 수궁에 들어 왔느냐. 내가 지금 꿈을 꾸느냐. (중략) 내 딸이면 어디 보자. 어디 내 딸 좀 보자. 아이고, 내가 눈이 있어야 내 딸을 보제. 아이고 답답하여라. 두 눈을 끔적하더니만 눈을 번쩍 떴구나. 이게 모두 부처님의 도술이것다."

심봉사의 개안(開眼)은 심청의 지극한 효성에 부처의 자비가 더해져 가능하였다. 맹인의 고통이 어떤지 성한 사람도 알았기에 고대(古代)의 인식은 그토록 가혹했으리. 예수 시대의 이스라엘도 예외 없었다. '요한복음'에는 예수가 '태어나면서부터 눈먼 사람'을 고쳐주는 장면이 나온다. 율법을 엄격히 지켜야 한다고 믿는 바리사이 사람들은 예수가 기적을 안식일에 행하였으니 죄인이라고 소란을 피운다.
예수가 기적을 행하기 전에 제자들이 묻는다. "저 사람이 소경으로 태어난 것은 누구의 죄입니까?" 예수가 대답한다. "누구의 죄도 아니다. 다만 저 사람에게서 하느님의 놀라운 일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다." 예수를 구세주로 믿지 않아도 양심이 있다면 장애에 대한 2000년 전 그의 인식이 오늘의 우리를 압도함을 인정하리라. 우리는 장애아들을 위해 학교를 짓는데 부모가 무릎을 꿇고 빌어도 될까 말까한 나라에 살고 있다.

'하느님의 놀라운 일'은 현실에서 발견할 수 있다. 레이 찰스, 스티비 원더, 호세 펠리치아노 같은 대중음악 스타들과 성악가 안드레아 보첼리를 보라. 1970년대의 명가수 이용복 씨도 시각장애인이다. 그는 여덟 살 때 사고로 시력을 잃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데뷔해 처음엔 장애인이란 점 때문에 주목받았지만 결국은 실력으로 일류 가수가 됐다. 기타 연주가 뛰어나 양희은 씨가 '아침 이슬'을 녹음할 때 반주를 맡기도 했다.

스티비 원더가 잠시라도 자녀의 얼굴을 보고 싶어 개안 수술을 받았지만 실패했다는 주장이 있다. 1999년 존스홉킨스 대학 연구진이 시력 회복과 관련된 기술을 개발했다는 소식을 듣고 스티비가 연락하기는 했다. 검사 결과 스티비는 시세포가 모두 상해 수술할 수 없다는 진단을 받았다. 그는 2005년 새 앨범을 발매하러 영국 런던에 갔다가 기자회견에 참석했을 때 "의사들을 만나긴 했지만 수술하지 않았다"고 확인했다.
장애 예술가들의 천재성은 심안(心眼)에서 나온다. 진실을 보는 눈은 곧 진실 자체다. 예수가 "나는 못 보는 사람은 보게 하고 보는 사람은 눈멀게 하러 왔다"고 하자 뜨끔했는지 바리사이 사람 몇이 "우리 눈이 멀었단 말이냐"며 대든다. 예수가 꾸짖는다. "차라리 눈이 멀었다면 죄가 없겠지만 눈이 잘 보인다고 하니 너희 죄는 그대로 있다."

삶과 역사를 바라보는 눈도 다르지 않다. 우리는 사흘 전 제주 4.3사건의 희생자들을 추모하였고, 오늘 전직 대통령에게 내려지는 선고를 기다리고 있다. 법원 앞에 태극기가 꽃무리를 이루었다고 한다. 역사는 유대인의 신처럼 냉정하고 무자비하다. 그들의 신이 예고하였다. "가라지를 먼저 뽑아서 단으로 묶어 불에 태워버리게 하고 밀은 내 곳간에 거두어들이게 하겠다."

문화부 부국장 huhb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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