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 30만 명의 제주도에서 3만 명의 무고한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한집 건너 희생자가 생기지 않은 집이 없었다. 지금도 제주공항 활주로 아래, 정방폭포의 절경 안쪽에는 수습되지 않은 유해가 남아 있을 것이다. 미군의 해안 봉쇄로 고립된 섬 제주도에서 살육의 잔치를 벌인 주인공들은 다름 아닌 이승만 정부의 군인과 경찰이었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게 첫째 의무인 국가가 이런 짓을 했다니 요즘 상식으로 믿어지지 않는다.
사람들은 폭력을 피해 한라산으로 도피하기 시작했다. 1948년 5월 10일로 예정된 남한의 단독선거는 조국 분단을 기정사실로 만들 게 뻔했다. 산으로 간 사람들은 그 해 4월 3일을 무장봉기의 D-데이로 잡았다. “단독선거를 죽음으로 반대한다. 친일파와 민족반역자를 처단하자.” 이들은 11개 경찰서를 습격하여 악명 높던 친일 경찰과 서북청년단원 15명을 죽창으로 살해했다. 제주 4·3, 그 비극의 시작이었다.
무장대의 선제공격이 정당했다고 옹호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진압 과정을 보면 무장대와 민간인을 가리지 않은 일방적 학살이나 다름없었다. 경무부장 조병옥은 “꿩 잡는 게 매”라며 친일 경찰을 대폭 증원했고, “제주도 X들 다 죽여도 좋다”며 토벌을 독려했다. 제주도민 중 무장대의 지인이나 가족이 아닌 사람은 거의 없었으므로 사실상 주민 모두 불온한 인물로 간주됐다. 대대적인 토벌작전이 벌어졌고, 무장대를 도와줬다고 의심받은 사람은 재판 없이 살해됐다.
무장대 지도부 일부가 남로당원이었기 때문에 이승만 정부는 이를 ‘공산 폭동’으로 매도했다. 하지만, 이미 궤멸된 남로당 전라도당은 제주도민들에게 아무 지시도 할 수 없었다. 북한 당국은 무모한 싸움이라고 판단했지만, 말릴 방법이 없어서 나중에 라디오로 지지 방송을 했을 뿐이다. 제주를 진압하러 출동할 예정이던 여수 14연대가 반란을 일으키자 이승만 정부는 크게 당황했다. 하지만 육·해·공군을 총동원하여 반란을 진압했고, 군부내 좌익 숙청 · 국가보안법 제정 · 학도호국단 창설로 반공 독재체제를 오히려 강화하게 된다. 이렇게 보면, 제주 4·3은 제주도만의 문제가 아니라 이 나라 전체의 문제이며, 뒤틀린 우리 현대사의 뿌리임이 드러난다.
문재인 대통령은 ‘완전 해결’을 약속했다. 하지만 70년 세월이 흘러 10살 소년은 팔순, 20살 청년은 구순 노인이 됐다. 이미 오래전 벌어진 비극을 되돌릴 수 없다면 우리가 할 일은 ‘재발 방지’일 것이다. 제주 4·3에 대한 다큐멘터리 <레드 헌트>(감독 조성봉)의 제목은 ‘빨갱이 사냥’이란 뜻으로, 정치적 반대자에게 ‘빨갱이’ 낙인을 찍어서 타자화하고 말살하는 비이성적 폭력을 말한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분단 상황을 악용하고 정치적 반대자에게 종북 프레임을 씌우는 일부 세력의 행태에서 70년 전 제주를 짓밟은 세력의 기시감이 드는 게 나 혼자뿐일까. ‘빨갱이 사냥’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는 세상을 만들려면 무엇을 해야 할지 생각할 때다.
이채훈 한국PD연합회 정책위원, 1999년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제주 4·3’ 연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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