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래 섬이 아니었다고 한다. 곶(岬)처럼 한강으로 돌출되어 신선이 노닐 만큼 경치가 좋았던 선유봉은 시인묵객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았고 권력자의 정자가 세워졌으며 화가의 작품배경이 되었다. 하지만 일제강점기와 6.25 전후에 군사적으로 필요한 시설을 보강하면서 암석과 모래를 여기서 채취했다. 인정사정없이 파다보니 어느 새 인위적인 섬으로 바뀐 것이다. 용도가 다해 버려진 섬은 산업화 시대를 거치면서 다시 필요에 의해 시멘트 구조물이 더해졌다. 도시민에게 수돗물을 공급하는 양수장으로 변신한 것이다. 한강이라는 물 위에 떠 있는 섬이지만 그 섬이 다시 물을 담게 되는 또 다른 순환적 모습으로 바뀌었다. 인근의 밤섬 역시 여의도 개발을 위한 골재조달을 위해 없어지다시피 했다. 하지만 다시 그 자리에 자연스럽게 강물을 따라 온 모래와 흙이 퇴적되면서 수십 년 만에 본래보다 더 큰 섬으로 회복되었다. 지금도 계속 넓어지고 있다고 한다. 섬도 자생력을 지닌 말없는 생명체인 것이다.
취수펌프장을 재활용하여 만든 카페의 창가에 앉았다. 삐죽한 낡은 기둥이 강바닥까지 맞닿아있다. 청계천을 복원하면서 기념비 삼아 남겨 둔 몇 개의 시멘트 교각을 생각나게 한다. 눈을 돌리니 한강너머 높다란 빌딩들이 그리는 스카이라인 뒤편 북한산이 미세먼지 속에서 흐릿하게 보인다. 섬에서 섬을 보기도 하지만 섬은 육지를 보기 위한 장소도 된다. 젊은이들에게는 강 건너 있는 대학캠퍼스에서 순위를 다투는 공부전쟁과 치열한 취업경쟁에서 한 발자국 비켜서서 잠시나마 마음을 추스르고 스스로의 긴장감을 내려놓을 수 있는 공간이 될 것이다.
바다에도 섬이 있지만 강에도 섬이 있다. 바다의 섬은 나름의 독자성이 강하지만 강 속의 섬은 늘 육지와 함께 한다. 예전에 정치적인 이유로 유배를 당할 때 바다의 섬보다 육지의 섬이 더 선호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바다 섬보다는 육지섬이 돌아올 확률이 훨씬 높고 유배기간이 짧았기 때문이다. 물론 죄의 경중에 따른 결과이기 때문에 선택의 여지는 별로 없었다. 탱자나무 숲으로 두른 땅을 섬 삼아 가두어두는 위리안치(圍籬安置)는 육지 속의 심리적 섬이라 하겠다. 오늘날 스스로 ‘방’이라고 하는 섬에 자기를 가두는 ‘방콕족’도 늘고 있다. 그 정도가 지나친 ‘히끼코모리’라는 말조차 이제 낯설지 않는 단어가 되었다. 스스로의 유배를 통한 스스로의 구원방식인 셈이다.
원철스님 조계종 포교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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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 빼려고 맞았는데 아이가 생겼어요"…난리난 '... 마스크영역<ⓒ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