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위 있는 WHO의 발표에 국내 소비자들도 충격을 받았다. 소시지나 햄을 주식처럼 즐기는 독일 등 서구의 소비에는 미치지는 못하겠지만 반찬으로, 때로는 부대찌개 같은 요리로 적지 않은 양의 가공육을 섭취해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니 건강에 대한 우려가 생기지 않을 수 없다. 당장 이 발표 후 대형마트 등에서 가공육의 매출은 급감했다고 한다.
WHO의 발표와 이를 받아들이는 소비자들의 반응 사이에는 다른 잣대가 존재한다. WHO의 잣대는 암을 일으킬 수 있는 모든 물질을 잰다. 아주 작은 가능성이라도 있으면 발암물질에 포함시킨다. 그러다보니 햇볕이나 여성호르몬도 발암물질에 포함돼 있다. 하지만 이를 수용하는 소비자들의 잣대는 주로 안전한 먹을거리인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래서 WHO에서는 소시지가 암을 일으키는 요인이 될 수도 있다고 발표했지만 소비자들은 소시지를 먹으면 안전하지 않다고 이해했다. 이 사이에서 이 같은 '충격적인 진실'을 자극적으로 부풀려 전했던 언론도 한몫을 했다. 결국 논란이 커지자 WHO 대변인은 "가공육 섭취를 중단하라는 의미가 아니라 이를 줄이면 대장ㆍ직장암 위험이 줄어들 수 있다는 뜻"이라고 해명했다.
지난 10월 말 영국에서 벌어진 '게(crab) 학대' 논란도 먹을거리에 대한 다른 잣대 때문에 벌어진 해프닝이었다. 런던의 한 한인슈퍼에서 산 게를 스티로폼 용기에 넣고 비닐로 싸서 진열하자 영국 소비자들이 게를 학대했다고 항의한 것이다. 슈퍼마켓이 게 판매를 중단하면서 일단락됐지만 신선한 게를 팔려고 했던 슈퍼마켓의 의도와 게의 고통마저 느껴져 살아있는 게가 꺼림칙했던 소비자의 잣대는 분명 달랐다. 먹을거리에 대해 목소리를 내는 일에 앞서 중요한 것은 다른 이의 잣대도 살피는 배려다.
김철현 기자 kc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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